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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넓은 검은 빌레(암반지대의 제주도사투리)는 처음 보았다. 제주 해안가는 대부분 검은 현무암이지만, 공천포에 가면 다른 제주 해안가에서 보지 못한 검은 빌레 밭이 펼쳐진다. 물론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바다를 낀 해안절경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 안에서 보는 해안절경은 경승지를 걷는 기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겨울철 공천포 검은모래사장 외로움 즐겨

 

넙빌레에서 이어지는 올레 길은 공천포 검은모래사장 올레다. 제주시에서 남쪽 해안가를 따라 동서남쪽으로 이뤄진 공천포 검은모래사장은 제주도 최남단에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2리 해안선은 '빌레'와 '여'들이 돌출돼 있다. 마을사람들은 바위와 모래 틈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생활용수로 이용했다 한다. 특히 해산물과 어족이 풍부해 지금도 이곳에 가면 싱싱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게 올레꾼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2009년 12월 25일, 겨울 그것도 크리스마스라서 그런지 검은 모래사장을 남편과 나만 걷고 있었다. 검은 모래 사장을 걷는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하얀 포말이 이는 바닷가 쪽으로 내려갔다. 검은 자갈과 모래가 시루떡처럼 범벅이 돼 있었다. 바닷가에 '여'가 많다. 밀려오던 파도가 '여'에 부딪쳐 하얀 포말을 그리며 사라졌다. 겨울 검은 모래사장 올레는 참으로 외롭고 쓸쓸했다. 하지만 너스레를 떨면서 살아온 우리들에게 가끔씩 이런 외로움은 즐길 만 했다.

 

신례2리 공천포 쉼터 올레꾼 초대

 

그 쓸쓸함은 신례2리 마을회관인 공천포 쉼터에서 풀 수 있었다. 사람들은 요즘 세상이 많이 각박해졌다 한다. 그러나 공천포 쉼터에 가보면 요즘 사회가 그리 각박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얀 섀시 문을 열고 공천포 쉼터에 들어갔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올레를 걸으며 피곤했던 다리와 허리, 그리고 피로를 풀 수 있는 마사지기와 안락한 의자, 탁자, 그리고 인터넷 시설까지 준비돼 있었다. 물론 물과 차까지 마실 수 있었으니, 감동받지 않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특히 올레꾼들이 엽서를 쓸 수 있는 올레우체국도 마련돼 있어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공천포 쉼터 쇼파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길을 걷다 마시는 커피의 그 달콤함은 신례2리 마을 사람들 마음처럼 따뜻했다.

 

길을 걷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제주의 길은 자연과 평화, 그리고 공존이 있어 걷는 의미가 특별하다. 더욱이 코스마다 그 지역 사람들이 베푸는 사랑과 정성이 있다.

 

공천포 포구 바다갈매기도 나래 접어

 

공촌포 포구에 다다르자. 마을 어르신들이 방파제에 걸터앉아 여담을 나누고 있었다. 포구가 사랑방인 이곳 사람들은 아마 눈만 뜨면 바다를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 왔수꽈? 쉬엉 갑써 게!"

 

심심하게 걷고 있는 우리에게 어르신들은 말문을 열었다.

 

"예...에! 고맙수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희푸연 하늘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에게 우리는 '고맙다'는 화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공천포 포구 작은 어선은 검은 자갈밭 위에까지 올라와 있었다. 크고, 빠르고, 높고 , 폼나는 것만을 동경하는 요즘, 공천포 포구 자갈 위에 있는 아주 작은 배 한 척은 내 가슴을 문질렀다. 나는 '정지'라는 말이 생각났다. 자투리 시간까지 쪼개가며 허둥버둥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포구의 배 한 척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틈새의 자유를 누리는 곳이라고나 할까.

 

더욱이 방파제와 날아온 바다갈매기도 날개를 접고 있었다. 공천포 포구에서는 사람만이 평화를 꿈꾸는 것만은 아니다. 바다갈매기도 나래를 접는 곳이 바로 한적한 공천포포구가 아닌가 싶었다.

 

공천포, 물맛 좋아 관청 제사물로 올려

 

'물맛이 좋은 샘물을 바친다'는 뜻의 지명인 '공샘이'가 '공천포'로 바뀌었다는  공천포, '물맛이 좋아 관청에서 준비하는 제사에 물을 올렸다'는 공천포. 한때 물이 귀한 섬사람들에게 해안 용천수는 보물이었을 것이다. 아마 이 검은 빌레밭을 여름에 걷는다면 따끈따끈한 온기가 온몸에 전해지리라.

 

 

배고픈 다리, 만조나 너울시 조심!

 

11번길을 따라 세기네 하천에 이르렀다. 일명 '배고픈 다리'처럼 하천으로 이어지는 다리는 만조시나 너울이 심할 때는 하천 위 도로로 걸어야 한다. 이때 내복을 입은 대여섯 살 난 어린아이 두 명이 올레에 서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인사를 받은 우리는 그냥 스쳐 지나 갈 수가 없었다. 그날이 크리스마스날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배낭에 준비한 초콜릿을 아이들에게 전해 주며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검은 빌레 현무암 지구...우주 같아

 

세기내 하천에서 10분쯤 걸었을까. 망장포구 가기 전에 만나는 검은 현무암 빌레는 지구가 검은 현무암으로 뒤덮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드넓게 펼쳐진 나지막한 갯바위는 마치 검은 우주 같다고나 할까. 갯바위 틈새에 바닷물이 고여 있어 이곳에서 다슬기가 살았던 흔적이 있었다. 이곳 갯바위는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갯바위 틈새에서 다슬기 껍데기를 주웠다. 그리고 주저앉아 바다를 바라보니 멀리 지귀도가 보인다.

 

 

'고려말 원나라로 물자와 말을 수송하였다'는 망장포구에 도착했다. 공천포 포구가 가장 때묻지 않은 포구인줄 알았는데, 아뿔싸! 망장포구야 말로 내가 본 포구 중에서 가장 작고 한적한 포구였다. 유배 온 느낌이 들 정도였다. 포구 오른쪽 해송숲에서 나는 새소리가 아니었더라면 망장 포구는 정적이 끊긴 곳이었으리라.

 

넙빌레에서 공천포 검은 모래사장을 거쳐 망장포구까지 걷다보면 해안가 주변에 올망졸망 모여앉은 바닷가 마을의 정취에 빠져든다. 그것뿐이랴!  아기자기한 포구의 한적함에 빠져들어 명상의 기분을 맛볼 수가 있다. 특히 현무암 부서진 검은 빌레를 걷다보면 검은 우주 속에 다녀온 느낌이 든다.   

 

제주올레5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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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덧붙이는 글 | 넙빌레에서 공천포 검은 모래사장을 거쳐 망장포구까지 걷다보면 해안가 주변에 올망졸망 모여앉은 바닷가 마을의 정취에 빠져든다. 그것뿐이랴!  아기자기한 포구의 한적함에 빠져들어 명상의 기분을 맛볼수가 있다. 특히 현무암 부서진 검은 빌레를 걷다보면 검은 우주 속에 다녀온 느낌이 든다


태그:#올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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