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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현관 앞에는 작년 11월, 엄마의 생신 케이크를 사며 무료로 얻어 온 방울토마토 화분이 키를 늘리고 있다. 왠일인지 옆으로 잎을 늘릴 생각은 않고 8개월이 다 되도록 약 30㎝까지 키만 삐죽하게 큰다. 비실비실 서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온도가 낮으면 그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11월에 씨앗을 받아 식구들과 함께 방안에서 겨울을 나게 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닥 소홀히 키운 건 아닌 듯하다.

 

"혹시 병난 거 아이가?"

 

엄마의 말씀이다. 그러고 보니 아랫잎부터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는 게 예사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썩고 문드러진 것은 좀 아파도 과감하게 잘라내야 탈이 없는 법. 노란 끼가 있는 잎들은 매몰차게 손톱으로 끊어줬다.

 

끊어도, 끊어도 조금만 자라면 맨 아랫잎은 노래진다. 다 끊어버려 줄기만으로 광합성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포기하고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혹시 이 토마토 안에는 열매를 맺을 만한 생명의 핵이 없는 건 아닐까.
 
"아득한 옛날부터 농부들은 스스로 씨앗들을 생산해 왔습니다. 그 씨앗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땅과 기후에 완전히 적응했습니다. 오늘날 마치 세뇌라도 하는 것처럼, 많은 광고 문구들은 농부들에게 종자는 제조업체들에게서 사야 한다고 강조해 말합니다. 하지만 업체에서 판매하는 교배시켜 만든 종자들은 해마다 새로 사서 심어야 하고, 필연적으로 비료와 살충제를 많이 사용해야만 하는 씨앗들입니다."
 
미래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 피에르 라비
 
웃자란 나의 토마토가 교배종인지 의심하게 된 이유는 이 책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장 피에르 카르티에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조화로운 삶 펴냄) 때문이다. 그는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태어났다. 자연과 더불어 살려는 마음 없인 살아남을 수 없는 그곳에서, 피에르 라비는 어릴 때부터 농업의 중요성을 피부로 깨닫는다.
 
프랑스인 부부에게 입양된 후, 그도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고향에서 쌓은 자연주의적 세계관과 1960년대 프랑스의 자본주의적 세계관은 항상 대립하면서 그를 괴롭힌다. 결국 그는 아내와 함께 '세상의 끝에 있는 듯한 집'으로 떠나, 자갈 투성이의 땅을 기름진 옥토로 변화시켜 나간다.
 
"태양열만으로도 우리는 우리를 따뜻이 덥힐 수 있고,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또한 자연식품을 재배해 먹고, 물을 재활용하고, 쓰레기를 없앨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매우 훌륭합니다."
 
"역한 냄새가 사라지면 퇴비가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퇴비 냄새는 상쾌하기까지 합니다. 이 퇴비는 박테리아들이 무성한 살아 있는 유기체입니다. 그것은 땅의 생명력을 회복시켜 줍니다. 물론 화학 비료와는 질적으로 다른 자연적인 작용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는 전기 없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 비료 없이 스스로 터득한 방법으로 퇴비를 만들어 쓰고, 나아가 자연과 함께 당신처럼 살고 싶다는 사람들을 도우러 전 세계를 누빈다. 나무 예찬도 끝이 없다. 나무를 '행성에 난 털' '지구 행성의 폐'라고 말하는 그는, 지구가 외부와 소통하는 여러 방법 중 가장 확실한 방법이 나무라고 말한다.
 
"혹시 나무들의 사진집을 낸 사진작가 토마스 후버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그는 사진을 찍기 전에 나무의 둘레를 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나무 주위를 돌면서 나무의 동의를 기다린다고 말입니다. 때론 그 기다림이 이틀을 가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허락할 때 비로소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꿈
 
피에르 라비는 후원자의 힘으로 600헥타르의 땅에서 재래종자를 키우는 한편, 귀농한 젊은이들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
 
'한 가정에 1헥타르'를 제안하는 그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이웃 사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자식 다섯을 모두 길러낸다. 음악, 교육, 농업, 전자 등의 분야로 자신의 개성을 살린 자녀들은 부모의 꿈과 함께 행복하다.
 
"아이들을 살아 있는 세계 속으로 되돌려 보내야 합니다. 자연 속에서, 그 경이롭고 신성한 자연의 품속에서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시를 떠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택하겠느냐'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다. 그만큼 도시에서 누리는 수많은 혜택을 포기하기란 어렵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은 '누구나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지구라는 행성과 더불어 사는 삶만이 미래로 나아갈 길이라고 충고한다.  
 
생명이 고갈될 때까지 지구를 괴롭힐 것인가, 아니면 자연에게 조언을 구하고 함께 협력하는 삶을 택할 것인가. 어쩌면 너무나 뻔한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피에르 라비는 말한다.
 
"인간은 자연의 거대한 흐름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 생존의 조건이다."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장 피에르 카르티에.라셀 카르티에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2007)


태그:#피에르 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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