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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문정전은 임금이 신하들과 어전회의를 하던 곳이다.
▲ 문정전. 창경궁 문정전은 임금이 신하들과 어전회의를 하던 곳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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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는 대소신료와 비국 당상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귀화한 사람을 쇄송 하라는 상국의 뜻에 우리의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으니 과인이 입조하여 대면하고 말한다면 황제의 오해가 풀리지 않겠는가? 지난날 삼전도에서 예를 행할 때도 아무런 위해가 없었으니 지금 입조한다 하더라도 어찌 위태로운 일이 벌어지겠는가?”

대륙의 패권을 놓고 명나라와 청나라가 전쟁을 벌이는 사이 명나라 사람들이 조선으로 흘러들어 왔다. 명나라 조정에서 관직을 맡았던 사람, 군인과 농민들이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피난 온 것이다. 이에 조선은 명나라와의 의리를 생각하여 유민들에게 정착하여 살도록 했고 청나라는 끊임없이 송환을 요구했다.

“저들이 말을 꺼냈으니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우선 칙사 일행을 잘 대우하여 보낸 뒤에 차분히 의논하면서 처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영의정 최명길은 청나라의 압박이 거세어질 것을 우려했다.

“지금 이 말을 듣고 보니 가슴이 찢어질 듯합니다. 저들이 여러 해 동안 대국을 넘보다가 지금 전쟁에서 패배하여 돌아왔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노리는 것입니다.”

병조판서 이시백이 청나라의 진로는 서쪽이 아니라 동쪽이라고 전망했다. 청나라는 금주에 출전한 십왕이 명나라 군의 저항에 부딪혀 군사를 잃고 돌아와 왕위가 삭탈되고 연금 상태에 있었다.

“그럼 저들에게 어떻게 회답해야 하겠는가?”

“상국(上國)의 은혜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비록 이 말이 없었다 하더라도 들어가 사례하려 하였습니다만 국가에 일이 많은 데다가 남쪽 지방의 근심이 있으므로 감히 청하지 못하였습니다. 세자가 만일 나오면 내가 마땅히 따르겠습니다. 라는 식으로 해야 되지 지금 따르기 어렵다는 뜻으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최명길의 두뇌회전은 빨랐다. 임금이 청나라에 들어가는 일과 세자의 귀국을 연계하자는 것이다.

송파구 삼전도비 옆에는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항복하던 당시 모습을 부조로 설치해 놓았다.
▲ 삼전도. 송파구 삼전도비 옆에는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항복하던 당시 모습을 부조로 설치해 놓았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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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경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우리가 정축하성을 결행한 것은 만에 하나라도 요행이 있기를 바라서였는데 지금의 형세로는 감당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비록 한 번 입조해서 별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해마다 입조하게 한다면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최명길의 말처럼 변통하는 말로 답한 뒤에 별도로 계책을 세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성구가 아뢰었다.

“회답하는 말은 모름지기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하는 것이니 결코 쾌히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처음에는 따르기 어렵다는 뜻으로 말하고 그 다음에 거절하기가 곤란하다는 말로 답하는 것이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
가함대신으로 심양에 다녀온 박황이 신중론을 폈다.

“박황의 말이 옳다. 이 일은 두 가지 단서가 있는데 불측한 일을 저지르려는 의도가 그 하나요, 쇄환 요구에 우리가 어떻게 대하느냐를 시험해보려는 것이 그 둘이다.”

“이 말이 만약 칙사가 떠나기 전에 누설되면 인심이 반드시 동요할 것이니 따르든 따르지 않든 간에 가벼이 누설해서는 안 됩니다. 입시한 사람들은 모두 사리를 아는 사람들이니 비록 지친(至親) 사이라도 말하지 말도록 하시오.”

거들먹거리며 국왕을 하인 취급하는 칙사

최명길이 좌우를 둘러보며 보안유지를 철저히 당부했다. 다음날 임금이 인정전에서 잔치를 베풀고 남별궁에 거둥하여 상마연을 베풀었다. 그야말로 칙사대접이다. 모화관에서 환송연이 베풀어지던 날. 마골대가 인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귀화인과 도망 포로를 송환하라는 것은 황제의 명이오.”
“묘당에 하달하여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인조가 머리를 조아렸다. 만인의 군주이며 온 나라 백성들의 어버이 조선 국왕이 청나라 칙사 앞에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창경궁으로 돌아온 인조는 깊은 시름에 잠겼다.

“청나라에 들어가면 살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또한 세자를 내보내 주겠다는 약속도 없다. 두 사람을 묶어두고 괴뢰를 세울 수도 있고 세자만 내보내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아득하기만 했다. 문득 강화에서 제주도로 이배 보낸 광해군이 생각났다. 위리안치 되어 있는 광해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는데 소원 조씨가 품속을 파고들었다.

창경궁 통명전은 중전이 거처하던 곳으로 구중궁궐 깊은 곳에 있다. 후궁들이 거처하던 곳은 전란과 일재시대를 거치면서 파괴되었으므로 통명전으로 대신했다.
▲ 통명전. 창경궁 통명전은 중전이 거처하던 곳으로 구중궁궐 깊은 곳에 있다. 후궁들이 거처하던 곳은 전란과 일재시대를 거치면서 파괴되었으므로 통명전으로 대신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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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고민이 그리 많으십니까? 전하!”
“소원은 알 일이 아니오.”
인조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를 못살게 굴던 청나라 사신이 떠났으니 기쁘지 않으십니까?”
“날 더러 들어오라니 어찌 기쁘겠소.”
소원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아비가 청나라에 들어간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전하! 들어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전하께서 들어가시면 소첩과 어린 것들은 어떻게 살라고 들어가신단 말씀입니까. 아니 되옵니다. 전하!”

조씨는 품속을 더 깊게 파고들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소원 조씨는 효명옹주를 낳은 데 이어 숭선군 이징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울음을 거두어라. 내가 너를 두고 어찌 들어가겠느냐.”
인조는 품속에 있는 소원을 끌어당기며 등을 토닥거렸다.

“그 말씀이 정말이십니까? 전하!”
턱밑에서 인조를 올려다보고 있는 소원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렇다. 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 말씀이 정말이십니까? 전하!”
“그렇다니깐.”
“아이 좋아라. 그러시려면서 소첩을 울리고 그래.”
“내가 울렸느냐? 네가 울었지.”
“아이 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간 소원이 인조의 품속에서 요동쳤다. 파도치는 여인의 몸을 인조가 꼬옥 안아 주었다. 인조의 팔 근육에 힘이 실리면 실릴수록 여인의 몸은 고무공처럼 튀어 올랐다.

열락으로 모시고 뒤 따라 가겠습니다

“전하! 전하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품속에 머리를 묻고 있던 소원이 인조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뭐냐?”
“전하는 중전마마를 두고 왜 소첩을 찾으셨어요?”

앵두 같은 입술이 뽀루퉁 한 것 같았지만 눈가에는 애교가 흘렀다. 찾아주어 고맙다는 뜻이다. 인조에게는 열다섯 어린 중전이 있었다.

“네가 좋아서 찾아왔느니라.”
“아이 몰라.”
흘기는 눈가에 요기가 흘러 넘쳤다.

“전하! 아래에도 열락의 세계가 있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옥방비결에 그러하온데 힘들고 괴로울 때 더욱 좋다고 하옵니다.”
“궁금하구나.”
“전하를 그리로 모시고 소첩도 따라가겠습니다.”

스물다섯 농익은 여인의 입가에 더운 바람이 불었다. 말을 마친 소원이 인조의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문밖에서 지켜보던 대전 상궁이 기겁을 했다. 이 때였다. 창경궁 뒷산 응봉에서 소쩍~ 소쩍~ 새소리가가 들렸다. 맞장구를 치듯이 홍화문 앞 산봉우리에서도 새 한 마리가 화답했다. 그들은 암수 소쩍새였다.


태그:#옥방비결, #인조, #통명전, #소원조씨, #중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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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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