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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의 상해시 전경
▲ 상해 최근의 상해시 전경
ⓒ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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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식은 동제사 임원들의 면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성격이 괄괄한 신채호는 동제사의 사상적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신규식이 한시를 즐기는 것을 보고 자신도 직접 시를 써서 가끔 신규식에게 보이고는 했다. 신규식은 그의 시 중에서 ‘한 나라 생각’이란 시를 가장 좋아했다.

나는 너의 사랑
너는 나의 사랑
두 사랑 사이를 칼로 갈라서
고운 핏덩이가 뿜어 나오면
한 주먹 덥석 그 피를 쥐어
우리나라 땅에 고루 뿌리면
떨어지는 흙마다 꽃이 되리라.

신채호와 배짱이 맞는 친구로 김규식이 있었다. 그는 서민 기질을 타고 난 무관 출신으로서 신규식처럼 군대 해산 때에 의병을 일으켜 싸운 사람이었다. 그는 일본군과의 접전에서 패퇴해 본 적이 없는 명 지휘관이었다. 그는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구입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훗날 그는 청산리 전투에 보병 대대장으로 출전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리게 된다. 그는 1929년 신원이 분명치 않은 자에게 피살된다.

메이지 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조소앙은 국내에서 한때 교편을 잡았다가, 1913년에 박은식과 함께 합류한 동제사의 창설 공로자였다. 그는 조그만 일을 하더라도 이론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정인보는 이미 13세부터 양명학과 실학에 눈을 뜬 젊은 국학자였다. 그의 나이는 박찬익, 민제호 등과 비슷했다. 그는 신채호의 역사관에 동의면서도 그것을 보다 과학적으로 만들었다. 다시 말해 민족주의 사학 정신을 계승하되, 사료에 근거하는 사실 인식과 민족사적 의미를 부각시킨 것이다. 그의 역사관은 이른바 신민족주의 사관이었다.

놀랍게도 정인보는 한시보다는 우리말 시조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작품을 지었다. 그의 연시조 <자모사, 慈母思>는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사모곡이었다.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이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더시니 보공되고 말아라.

사실 조성환이야말로 어느 면에서 누구보다도 선각자였다. 그는 무관으로서는 신규식과 동기지만 나이로는 신규식보다 연상이었다. 일찍부터 중국 혁명 참여로 조선 독립 방안을 모색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는 신규식을 앞섰다. 신규식은 언제나 예를 갖추어 그를 우대했다. 그는 안창호 등과 신민회를 조직하는 데 앞장섰고, 신규식보다 먼저 중국 혁명가 진기미와 한·중공동전선 구축을 합의한 바 있었다. 그러나 1912년 일본 총리대신 가쓰라 다로를 만주 방문 때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어 거제도로 귀양 가는 바람에 그 뜻을 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신규식의 노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민필호의 중형 민제호는 경신학교와 한성외국어학교를 다닌 국내파 지식인이었다. 그는 외국어에 능숙하고 국제 정세에 밝은 인재였다. 그는 유머 감각이 있는 허무주의 성향을 띤 청년이었다.

마침내 동제사 창립총회가 개최되엇다. 신규식은 300명의 동제사 회원을 상대로 기념 강연을 했다.

“세계에는 두 종류의 민족이 있습니다. 하나는 독립 의식이 있는 민족이고 다른 하나는 독립 의식이 없는 민족입니다. 우리는 독립 의식이 강한 민족이지만 독립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지 명백합니다. 그것은 민족자결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민족 자주라는 말과 혼동되기도 합니다. 민족 자주란 자기가 자기 운명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민족자결이란 자기가 자기 운명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자는 기왕 독립된 국가에 해당되는 것이고 후자는 아직 독립을 하지 못한 나라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민족자결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무력간섭을 받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민족정신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의미에 합치되는 것을 민족자결이라고 말합니다. 이 민족자결은 노예 상태인 우리에게는 구명부입니다. 다시 말해 외세의 무력간섭을 배제하고 민족정신을 살리려면 독립하는 길 외에는 방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독립을 요구하는 것은 단지 한민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를 위해서입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전쟁 등, 열강의 세력 갈등은 우리 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독립은 중국의 안전은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합니다.

시야를 넓혀 볼 때,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미국과 필리핀, 영국과 인도 등이 민족자결의 쟁점이 됩니다. 그래도 한국은 인도나 남미보다는 다행스럽습니다. 왜냐 하면 나라를 잃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민족혼이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사이비 민족자결입니다. 옛날 로마에서는 시민들의 투표로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 일이 있고, 스페인에서도 국민들의 투표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경우 무력의 감시를 받은 것이니, 명분으로는 민족자결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노예 자결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노예 자결을 타파하고 민족자결을 실행하려면 무력간섭을 몰아내야 합니다.

이제 감히 우리 이천 만 동포에게 부르짖노니, 우리는 생존을 위해 왜놈들에게 대항하여 병기를 들고 일어나 죽음을 불사한 결전을 치러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위한 것이니 미리 성패를 예단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자유롭지 못하게 사느니 우리 다 함께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규식을 가장 들뜨게 하는 것은 조국에서 상해로 찾아오는 젊은이들이었다. 요즘 들어 찾아오는 젊은이들의 숫자가 갈수록 늘고 있었다. 그러나 안전과 보안을 위해서는 아무나 받을 수가 없었다. 동제사에서는 찾아오는 젊은이에게 국내 애국 인사의 비표가 있는 추천장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항주로 보내서 그곳의 정보기관에서 철저히 조사한 후에야 이사장 면담을 허락했다. 통과자는 열 명에 두셋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새로 왔다는 청년을 데리고 민제호가 예고도 없이 신규식의 방에 들어왔다. 석 달 전부터 민제호는 항주 지사 책임자로 있었다.

“안녕하셨습니까? 이사장님.”
“민 동지가 친히 모시고 왔네요?”
신규식은 약간 실망스러웠다. 새로 왔다는 젊은이는 아직 소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규식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어린 사람인데….”
“저희들은 형제입니다.”
“오호, 민 동지의 친아우란 말이오? 그렇군요. 이름이 뭡니까?”
“민필호입니다.”
“나이는?”
“열다섯입니다.”

소년은 의외로 침착해 보였다. 그리고 눈에 총기가 있었다. 신규식은 허락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곳에서 공부를 더 하시오.”
“감사합니다.”
소년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는 것을 본 신규식은 가슴이 벅차올라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 뻔했다.

신규식의 목표는 단지 임시정부 수립에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임시정부가 명실공히 한 국가의 정부로 행세하려면 국제사회의 공인을 얻어내는 일이 필요했다. 그는 무장 투쟁에서 수많은 동지들의 죽음을 눈으로 보았다. 그 결과 외교적 방법은 무장 투쟁보다 희생이 적을 뿐더러 효과가 크다는 신념을 그는 굳히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인재 양성이 중요했다. 외교와 재정은 임시 정부 존속의 핵심 조건이었다. 바로 그 외교와 재정을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가 있어야 했다. 무장 투쟁도 인재를 양성한 후에 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한 명의 우수한 장교는 백 명의 용감한 사병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것은 군인으로 무장 투쟁에 직접 참여한 후에 얻은 체험적 교훈이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인간들의 매혹적인 삶과 사랑을 그리는 팩션입니다.



태그:#상해, #민필호, #동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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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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