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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로 삶의 터전을 잃은 고 이영권씨가 1만여 군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굴 양식장이 한 눈에 보이는 의항리 선산에 묻혔다.


이씨는 평생 키우던 굴 양식장이 갑자기 몰려온 기름띠 앞에 까맣게 말라 죽자 자신의 가슴속은 더 새까맣게 탄다며 눈물을 흘리다 세상을 떠났다.

 

14일 아침 고요 속에 아침 해가 뜬 태안. 시간이 흐르자 태안군청으로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하나가 열이 되고, 열이 백이 되더니 천이 만이 돼 태안군 광장을 가득 메웠다. 자리가 모자라 군청 본관 2층 창문 사이와 군청 뒤편 체육공원까지 추모객들이 들어찼다.

 

태안군 개청 이래 첫 군민장인 장례식장을 찾은 군민들은 상복 대신 방제복을 입고 머리에는 '생존권 보장'과 '투쟁' 머리띠를 둘렀다. 이들은 고 이영권 씨 유가족이 영정 사진을 앞세우고 영결식장에 도착하자 일제히 일어나 맞이했다.

 

민예총 이삼헌씨의 살풀이춤으로 시작된 영결식은 김현수 장례집행위원장의 고인 약력 소개에 이어 이원재 집행위원장의 조사로 이어졌다. 이 집행위원장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지만 우리 앞에는 절망의 늪만 남아있다"며 "앞으로 제2, 제3의 희생자가 나오지 말란 보장이 어디 있느냐"고 울먹였다.

 

이어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고, 누가 우리를 지키는 울타리냐"며 "엄청난 사고를 낸 당사자들은 침묵하고 있고, 진정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와 삼성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냈다.

 

이어 진태구 태안군수, 이용희 의장, 문석호 국회의원의 조사와 이충경 의항 어촌계장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이어 딸 이난숙씨가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자 영결식장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김진묵 공동위원장이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특별법 조기 제정, 삼성의 무한 책임과 배상 약속' 등을 촉구하자 참석 태안군민들도 일제히 구호를 외쳤다.

 

200여개의 만장에는 '기름피해 진짜주범 삼성그룹 무한책임', '검은 바다 검은 사람 앞에 새까만 정부는 각성하라', '태안군민 다 죽이는 이건희는 책임져라' 등 삼성과 정부를 질타하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고인의 꽃 상여길에는 2000여명의 군민들이 동행했다.

 

상여 행렬은 태안군자율방범연합대 대원들의 호의를 받으며 태안군청을 출발 외곽도로를 거쳐 태안해양경찰서에 도착했으나, 주차장에서 노제를 지내도록 한 조치에 어민들이 반발해 1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를 벌였다.

 

태안해경이 경찰서 안으로 상여를 잠시 들어오게 하자 대치가 풀렸고, 소원면 의항리 십리포 해변에서 각각 노제를 지내고 장례를 마쳤다.

 

태그:#태안반도 기름유출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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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시대를 선도하는 태안신문 편집국장을 맡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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