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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헤롯왕이 만든 수로와 지킴이 처럼 버티고 앉아 있는 고양이
ⓒ 이승철
"자! 출발하겠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성 안에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빨리 달려야죠? 오늘 못 보면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곳인데."

가이드 서선생도 일행들도 마음이 급했다. 본래 일정에 없던 코스여서 시간이 그만큼 촉박했던 것이다.

서둘러 갈멜산을 출발한 버스는 북쪽을 향하여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짙은 구름에 가린 하늘의 태양은 어느새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지중해변의 고대유적지 가이샤라까지는 23km나 되는 거리여서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우리일행들의 마음은 급하기만 했다.

도로는 평탄했다. 창밖의 풍경도 평야지대를 뒤덮은 푸른 초원과 올리브나무 농장들도 아름다웠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지중해가 저만큼 바라보이는 고대 유적지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입하여 성문 앞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조금씩 어둠이 내리깔리고 있었다.

코발트빛의 짙푸른 지중해는 멀리서 바라보아도 뒤뚱거리듯 출렁이는 모습이, 파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간 거센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태양은 아직 그 지중해 위로 두 뼘쯤의 높이에 떠 있었지만 시커먼 구름에 가린 태양빛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씩 검은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민 태양빛이 지중해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대부분 무너져 내리고 원형이 제대로 보존되지는 못했지만 성벽은 상당히 높았다. 성벽 밖으로는 상당히 깊은 해자가 파여 있어서 외침에 대비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하여 성벽은 무너지고 해자 옆에 빨간색으로 화려하게 꽃피운 나무 한 그루가 이방 손님들을 맞는다. 성문을 들어서자 벌써 어둑어둑하여 안에는 전등불이 켜 있었다. 성 안으로 들어서자 온통 황폐한 모습뿐이어서 오히려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 무너진 성벽과 해자 옆에서 빨간 꽃을 피운 나무 한 그루
ⓒ 이승철
▲ 어지럽게 무너진 유적지
ⓒ 이승철
성 안에서도 성 밖에서도 사람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늦은 시간이어서 우리일행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우선 선착장이 있는 바닷가로 나섰다. 그동안 내륙지방만 돌아다녔기 때문에 너나없이 바다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선착장에는 바다 속으로 상당히 깊숙이 만들어 놓은 듯한 어설픈 방파제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거세게 덮쳐오는 파도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폭풍이라도 오고 있었던지 바람은 정말 대단했다. 선착장에 부딪치는 높은 파도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서지는 모습이 오히려 달콤한 추억이라도 떠오르게 할 듯하다.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그 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 떠나간 그대를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누군가 큰 소리로 부르는 노래 소리가 바람에 휘날리듯 감미롭다. 세계적인 성악가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불렀던 '돌아오라 소렌토로'였다. 썩 잘 부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유명한 가곡이자 귀에 익숙한 노래를 폭풍 몰아치는 지중해 해변에서 듣는 맛은 남달랐다.

노래가 끝나자 모두 박수를 친다. 어둠이 내리는 이국 땅, 그것도 황폐한 고대 유적지의 바닷가에서 듣는 노래여서 아주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리라. 노래도 때와 장소에 따라 듣는 느낌이 다른 것이다.

지금은 황폐한 모습이지만 본래 이 가이샤라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고대 이 도시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터키의 안디옥과 더불어 지중해의 3대 항구로서 동서양을 잇는 국제 무역항으로 발달했던 도시다.

▲ 어둠이 내리는 가이샤라
ⓒ 이승철
▲ 유적지 풍경
ⓒ 이승철
그리스어로는 카이사레이아로 불리는 이 고대유적지는 가이사의 성읍이란 뜻이다. 스트라토(본래 이 마을을 만든 시돈왕의 이름)의 탑이라 불렸던 이 마을이 가이샤라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은 헤롯대왕에 의해서였다.

동서를 잇는 해상무역항으로 작은 등대가 있었던 이곳은 기원전 4세기경에 페니키아인들이 정착했었던 곳이다. 기원전 63년에는 폼페이우스장군이 점령하여 로마영토가 되었다.

그 후 기원 전 22년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이곳을 자신에게 충성하던 유대의 헤롯왕에게 하사했다. 헤롯은 황제에게 더욱 큰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이름을 가이샤라라고 바꾸고 12년 동안 그리스와 로마식의 거대한 항구도시를 건설했다.

헤롯은 바다를 매립하여 큰 배들이 정박할 수 있도록 길이 600m와 300m의 방파제를 쌓아 거대한 항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3400명이 관람할 수 있는 원형극장도 만들었다. 또 23㎞나 떨어져 있는 갈멜산으로부터 물을 끌어오는 수로를 만들었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붉은 돌과 이탈리아의 흰 대리석으로 건설된 가이샤라는 당시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헤롯왕의 궁전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 때는 로마의 총독이 머물러 이 지역을 다스렸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는 남쪽으로 50km 지점에 욥바와 텔아비브가 있고, 북쪽으로 35km 지점에 하이파가 있다. 고대 이 항구는 로마로 가는 가장 가까운 항구였다. 가이샤라는 십자군 전쟁 때는 성지로 가는 십자군의 관문이 되었다. 그러나 십자군전쟁의 패배로 철저히 파괴당했다. 그리고 지중해의 거센 바람과 모래더미에 파묻혀 망각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 지중해의 폭풍과 파도
ⓒ 이승철
▲ 가이샤라 해변 풍경
ⓒ 이승철
이 고대 유적지가 고대도시로 발굴된 것은 1947년이었다.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와 총독빌라도의 이름이 적힌 비문이 모래더미에서 발견됨으로써 가이샤라는 다시 인류의 역사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현재도 이 가이샤라는 발굴과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으로는 로마시대의 성벽 일부와 신전, 로마식 원형극장(약 4000명 수용), 헤롯시대의 항구와 조선소, 목욕탕과 길거리. 그리고 최근에 발굴한 대전차 경기장(길이 250m 넓이150m 관중석 1만명), 상가지역, 성채에서는 떨어져있지만 지중해 해안과 가까운 곳에 만들어진 헤롯의 2층으로 된 수로, 기원 후 12세기경에 십자군에 의해 축조된 해자 형태의 성채가 남아있다.

처음 유적지에 들어갈 때 만났던 성채는 십자군시대에 프랑스 왕 루이6세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둘레가 900m에 높이가 13m, 깊이 9m의 해자에 물을 채워서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성으로 세워진 것이다.

본래 헤롯이 세운 가이샤라의 규모는 현재 발굴된 십자군시대의 성채보다 3배 이상 컸다고 한다. 현재 발굴된 헤롯시대 도시의 모습에서는 제우스 신전의 모습을 일부 볼 수 있고, 토사로 쌓여있는 위쪽에서는 십자군 시대의 교회모습도 볼 수 있다.

헤롯이 만든 수로는 지중해 해안을 끼고 23km가량 떨어져 있는 갈멜산의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오는 석축구조물로 2층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선착장에서 오른편으로 자리를 옮기자 어둑어둑한 바닷가에 정말 길게 뻗은 석축 구조물이 버티고 서 있다. 많이 파괴된 모습이었지만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구조가 물이 흐를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우힛! 깜짝이야! 저게 뭐야? 도깨비야, 동물이야?"

헤롯의 수로를 살펴보고 있을 때 여성일행 한 명이 깜작 놀란 목소리로 비명을 지른다. 재빨리 달려가 바라보니 한 마리의 고양이었다. 그런데 이 고양이의 눈에서 나오는 빛이 여간 섬뜩한 게 아니었다.

▲ 폐허가 된 유적지
ⓒ 이승철
▲ 어두워지자 으스스한 풍경에 겁먹은 일행들
ⓒ 이승철
여성일행이 놀란 이유는 눈빛 때문이었다. 높직한 수로에서 꼼짝 않고 우리들을 내려다보는 고양이의 눈빛이 우리들을 긴장 시켰다.

"저 녀석 눈빛 좀 봐, 싸늘하고 날카롭잖아, 저 고양이 녀석이 마치 이 수로를 지키는 유적 지킴이 같은 모습인 걸."

정말 그럴듯한 말이었다. 조금 높은 위치에 있긴 했지만 녀석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꼼짝하지 않고 계속 우리들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지키고 앉아 있는 수로는 2중 구조의 상층부 수로였다. 이 가이샤라에 많은 물이 필요했던 것은 이곳에 당시 헤롯왕의 왕궁이 있었고, 또 한 때는 로마가 파견한 총독부가 있었던 상당히 커다란 도시였지만 이 지역 자체가 사구(모래언덕)여서 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 지형이었기 때문이다.

어두워지는 바닷가 모래톱에는 끊임없이 높은 파도가 몰려와 철썩이며 부서진다. 일행들은 또 그 모습이 아름답다며 너도나도 바닷가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자! 이제 그만 나가시죠. 곧 문을 닫을 시간입니다. 이곳은 야간에는 개장을 하지 않습니다."

가이드 서 선생이 일행들을 재촉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폭풍처럼 거셌다. 우리일행들은 그 바람을 등 뒤로 받으며 성 밖으로 향했다. 발굴이 끝난 곳에는 고운 잔디밭이 가꾸어지고 야자나무와 불을 밝힌 가로등이 서 있어 아름다웠다.

▲ 지중해의 석양
ⓒ 이승철
그래도 성문 가까이 이르렀을 때는 무너지고 황폐한 성곽과 유적지의 풍경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어느 한 쪽엔 바닥에 화려한 문양의 모자이크가 깔려 있기도 했다.

"꼭 어디선가 도깨비라도 나타날 것 같지 않아요?"

어둑한 성곽사이를 지나며 누군가 겁에 질린 듯 속삭인다.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짧은 시간에 돌아본 가이샤라는 그래도 고대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무너지고 부서진 유적들일지언정 화려함과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지중해 연안은 이스라엘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현재 이 지중해 연안 주변에는 고급 별장들과 호텔, 골프장, 해수욕장이 들어서 관광리조트가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지중해, #가이샤, #헤롯왕,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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