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동에는 '농협 식품 전문점' 간판이 달린 조그만 가게가 있다. 이 식품 전문점에서는 채소나 반찬거리를 팔지 않는다. 500원짜리 컵 떡볶이와 300원짜리 떡꼬치를 주로 파는 이상한 집이다. 위장 영업(?)이다.

이 가게의 주인은 "간판 바꿀 돈이 없어서…"라며 위장 영업의 이유를 밝힌다. 이 가게의 주 고객은 초등학생이다. 손에 꼭 쥐고 있던 100원짜리 5개를 건네면 가게 주인은 종이컵에 떡볶이를 듬뿍 담아준다. 인심도 후하다.

푸근한 인상으로 떡볶이를 파는 가게 주인은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기사로 주목 받고 있는 '떡볶이 아줌마' 송영애(36)시민기자다.

앗, 근데 이 떡볶이 집, 정말 이상하다. 떡볶이와 찰떡궁합인 어묵꼬치를 팔지 않는다. 이는 영화관에서 팝콘을 팔지 않으며, 유원지에서 번데기를 안 파는 꼴이다. 반칙이다. 어찌 떡볶이 집에서 어묵을 팔지 않는단 말인가.

가볍게 항의하자 송영애 기자는 "너무 더워서 여름엔 어묵 못해요, 한번 들어와 보세요"라고 말한다. 들어가 보니 말 그대로 '정말' 더웠다.

2평의 행복... 찜질방 같은 가게는 파라다이스

▲ 이 군침 도는 떡볶이는 누가 만들었을까?
ⓒ 오마이뉴스 김귀현
▲ 송영애 시민기자.
ⓒ 오마이뉴스 김귀현
지난 13일 인천 효성동 떡볶이 가게에서 송영애 시민기자를 만났다. 바깥은 비가 부슬부슬 내려 선선했지만, 2평 남짓한 가게 안은 찜질방만큼 더웠다. 잠깐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힌다. 하지만 이곳이 송영애 기자에게는 '파라다이스'라고 한다.

"노점을 했을 때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에요. 지난해 8월부터 친구에게 돈을 빌려 가게를 얻었어요. 월세를 25만원씩 내지만, 물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화장실도 갈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송 기자는 2001년, 포장마차를 하나 얻어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 전남 진도에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가정 형편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 봉제공장에서 일을 했던 송 기자는 "'잦은 임금 체불'과 '쉬는 날 없는 격무' 때문에 10년 넘게 했던 공장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떡볶이 장사. 송 기자는 포장마차에서 장사 할 때 정말 힘들었다고 전한다. "기사(☞ 관련기사 바로 가기)에도 썼지만, 물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갔어요. 음식을 모두 집에서 들고 날라야 했고요. 가까운 교회에서 화장실까지 못 쓰게 할 때는 정말 죽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가게를 얻어서 장사를 하는 지금은 정말 행복하답니다."

덥고 조그만 가게에 행복해 하는 송 기자. 이런 송 기자의 마음은 기사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슴 아픈 사연으로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해놓고, 결국 마지막 희망의 메시지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상금 받았어요, 밀린 가스비 낼래요

▲ 송영애 시민기자.
ⓒ 오마이뉴스 김귀현
송영애 기자의 기사에는 유난히 자기 이야기가 많다. 자신의 어렵고 힘든 삶을 여과 없이 표현한다.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기도 쉽지 않을 텐데….

"주로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장사를 하니 보통 아침에 기사를 올리고 나와요. 습관 되니 힘들진 않아요. 글을 쓰는 동안은 힘든 걸 잊어요. 글이라도 못썼으면 전 정말 살기 힘들었을 거에요."

글쓰기가 습관이 된 송 기자. 이쯤되니 송 기자가 제대로 글쓰기 교육을 받았는지가 궁금해진다. 그의 글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 기자는 "중학교만 마쳐서 제대로 교육 받은 적은 없다, 책이 유일한 내 선생님이다"라며 "글 연습을 따로 하진 않았고 라디오 방송에 사연 보내고 <오마이뉴스>에 기사 쓰는 것이 전부다, 원래 글 쓰는 것을 좋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받아보고 싶다, 먹고 살기 바빠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송영애 기자는 포털사이트 '다음(Daum)' 문학 카페에서 만난 이은화 시민기자의 소개로 2005년 2월 7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썼다. 주로 사는 이야기를 썼고, 삶의 애환이 담긴 감동의 기사로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송기자의 기사에는 항상 '서민의 삶'이 담겨있다.

"서민들이 제 글을 읽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힘들 게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제 기사를 보고 많은 분들이 도와준다고 하세요. 그 때마다 물론 마음만 받겠다고 얘기를 하죠. 그 때마다 '그래도 이 세상이 아직은 따뜻하구나' 느낀답니다."

꾸준히 활동하던 송 기자는 지난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되었다.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글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수상소감을 밝혔고, "상금으로 밀린 가스비를 낼 것이다"고 덧붙였다.

한 달에 60만원 정도를 번다는 송기자는 "번 돈으로 월세(가게와 15평집)와 세금 내기도 빠듯하다"면서, "그래도 한달에 2만7000원 인터넷 요금은 꼭 낸다, 밥은 못 먹어도 글은 쓰고 싶기 때문이다, 남편도 그건 이해한다"고 말했다.

송 기자의 글은 '극적'이다. 그래서 '지어낸 글이 아니냐'란 의심도 받는다. 이에 대해 송 기자는 "처음 그런 댓글을 봤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하지만 이런 분들은 소수다. 공감하고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생각하니 '우리가 정말 보통 사람들하고는 다르게 사는구나' 느낀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떡볶이 파는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 송영애 기자의 아들 오승근군(왼쪽)과 딸 오고운나래양.
ⓒ 오마이뉴스 김귀현
인터뷰 하는 동안 송영애 기자의 아들 오승근(11)군과 딸 오고운나래(7)양은 옆에서 계속 엄마들 도왔다.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아이들이다. 아들 승근이가 그 좋아하던 축구를 집안형편 때문에 그만두었고(☞ 관련기사 바로 가기), 딸 고운나래가 도시가스가 끊겨 맛이 이상한 라면을 먹은 사실은(☞ 관련기사 바로 가기) <오마이뉴스> 독자면 누구나 알고 있다.

딸 고운나래는 "맛있는 거 많이 먹으니까 좋다, 친구들 데리고 오고 그런다,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떡볶이집 딸의 소감을 밝혔다.

▲ 엄마를 돕고 있는 오고운나래양. 떡꼬치 고추장 바르는 실력은 수준급이다.
ⓒ 오마이뉴스 김귀현
아들 승근이는 사춘기에 접어들어 쑥스러웠는지 인터뷰를 계속 거부했다. "500원 줄 테니 좀 해라"는 송 기자의 협상안을 극적으로 받아들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왜 축구 관둔다고 했냐"고 묻자 "엄마를 도와드리고 싶어서 그랬다"면서 "축구 그만두면 엄마가 행복해질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엄마가 계속 좋은 글 쓰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며 소망을 밝혔다.

송영애 기자는 이런 아들과 딸에게 고마움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승근이는 박주영 같은 축구선수가 선수가 되고 싶어 하고, 고운나래는 공부를 좋아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해요. 다른 애들처럼 학원도 보내주고 싶은데 못 보내줘서 미안하죠. 그래도 불만 없이 이렇게 엄마일도 도와주고 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막걸리 아줌마'가 꿈

송영애 기자는 꿈이 하나 있다고 한다. 바로 작은 식당을 하나 내는 것. "또 떡볶이 집이냐"고 묻자 떡볶이집은 아니란다.

"싸고 양많은 안주를 내놓고 막걸리를 파는 작은 식당을 하고 싶어요. 서민들이 부담없이 찾아와서, 서로 막걸리잔 기울이며 삶의 애환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식당이요."

인터뷰 전, 송 기자의 기사를 보고 '이렇게 힘들게 사시는데 혹시 인터뷰를 하며 아픈 곳을 건드리지나 않을까' 지레 겁부터 먹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송 기자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담담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어느 날은 아들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인천에서 우리 동네, 계양구 효성동이 가장 가난하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까지 '가난하다' 얘기하는 동네에서 어렵게 살지만 희망만은 잃지 말아야죠. 걱정한다고 해결될 건 없어요. 그래서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이렇게 항상 웃고 있는 거에요."

그에게 '가난'이 결코 '불행한 것'만은 아닌가 보다.

"글을 몰라 기사는 못 봤지유"
[기사 속 그 사람] 100원짜리 과자 팔며 하루 3000원 버는 박성원 할머니

▲ 과자 좌판을 하는 박성원 할머니.
ⓒ오마이뉴스 김귀현

송영애 기자는 자기 이야기만 쓰지 않는다. 취재도 한다. '3000원 벌어도 좋아, 손주 사주는 재미로 하요' ☞ 관련기사 바로 가기 기사는 좌판에서 백 원짜리 과자를 파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기사는 적게 벌어 행복하게 사는 할머니의 훈훈한 이야기를 담아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 주인공을 직접 만나보았다. 기사의 주인공인 박성원(83) 할머니는 기자가 찾아가자 경계하는 모습부터 보였다. "인터넷 기사보고 왔다"고 하자 "뭐 조사하러 나왔냐"며 자릴 피하려 했다. 취지를 설명 드리자, 기자의 두 손을 잡으며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송영애 기자에 대해서는 "참 고마운 사람이다, 가끔 와서 과자도 1000원어치 사가주고, 두부 한 모도 사주고 그런다"고 말했다. 할머니에게 송 기자가 쓴 기사를 보았는지 물었다.

"내가 글을 몰라서 못 봤지유. 사람들이 알려줘서 알았지. 지금 그거(기사)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유. 누가 좀 읽어 줬음 좋겠슈."

오늘은 얼마를 버셨는지 궁금했다. '오늘도 3000원 정도 버셨냐'묻자,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100원짜리 몇 개를 꺼내 보이며, "오늘은 2000원 정도 되겄네"라며 뼈만 앙상한 소나무 껍질 같은 손으로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이걸로 손주 새끼 내일 학교 준비물이나 사줘야겠소"하며 할머니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 김귀현

태그:#송영애, #떡볶이 아줌마, #인천, #효성동, #떡볶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