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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부터 1996년까지 경남 진주에서 경기도 수원까지 매주 기차 여행을 하였다. 통일호와 무궁화호에 몸을 싣고 기차에 의탁했던 기억들이 아련하다. 그 경험을 되새김질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한 책을 만났다. 볼프강 쉬벨부쉬가 지은 <철도여행의 역사>이다.

볼프강 쉬벨부쉬는 그의 책에서 기차가 현재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모습으로 발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서러움과 고통을 받았는지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기차가 사람들에게 처음 속살을 드러내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반기지 않았다. 시간의 단축과 절약은 속도감을 주었지만 기차는 자신들의 대화를 단절시켰기 때문이다.

나와 너의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마차의 좁은 공간은 다른 이들, 이방인들도 함께 해야 하는 낯선 만남의 장소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강요였다. 달그락 그리는 마차 바퀴소리, 말이 풍기는 땀 냄새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끼익끼익' 거리는 기계음은 풍부하고, 섬세한 감성을 좀먹게 하였다. 마차는 자연과 사람이 서로 대화하고, 하나 되게 한다. 하지만 흉측한 기차는 도둑처럼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빠름은 느림의 시간 속에 공간의 풍경을 이해하는 당시까지의 인간의 능력을 무력화 시켰다. 사람 냄새와 자연 냄새가 사리진 공간에 기계 냄새나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했던가. 기차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 냄새나는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다. 사람이 만든 이동 수단 중에 기차만큼 낭만과 생명을 경험케 하는 것도 없다. 모든 이에게 기차 여행은 마음 깊은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이동 수단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기차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참으로 묘하다.

하지만 기차의 첫 속살이 빨랐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 기차가 빠른 것이 아니라 느림보로 낙인찍어 용서하지 못한다. 느림의 대명사였던 비둘기호와 통일호를 멀리 내버렸다. 아니 그들은 느림의 미학을 알기에 빠름에 목숨을 건 현대인들이 싫어 도망갔는지도 모른다. 느릿 느릿 가는 통일호이지만 사람들은 그곳에서 자기를 말하고, 이야기 했다. 다른 이를 만나는 공간이었다. 사람이 사는 곳, 사람이 머무는 곳이라면 통일호는 가쁜 숨을 내시며 멈추었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몸 안에 머물게 하였다. 기계와 사람이 하나 되는 생명의 공간이었다.

KTX는 빠르지만 그 속엔 낭만이 없어

KTX는 빠르지만 사람이 없다.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인생을 말할 시간도, 낭만을 느낄 시간도 빼앗아 가벼렸다. 옆에 앉은 이와 말하고자 하면 시간은 이미 지나가버린다. 아니 서로에게 말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자연을 벗 삼아 말하고 싶어도. 자연을 느끼고 싶어도 자연은 저 만치 도망가 버리고 만다. 사람이 사는 곳, 사람이 머무는 곳에 서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가 서고 싶은 곳에 선다. 돈이 많은 곳, 이익이 남는 곳에 KTX는 선다. 통일호와 KTX의 차이는 속도가 아니라 기계와 사람이 만나 생명과 인생, 낭만이 있는가, 없는가이다. 그럴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KTX보다 빠른 기차가 나오면 KTX를 낭만적이라 부를 날이 올 것이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일호는 끔찍하고 흉측한 기계가 아니라 사람 냄새나는 나눔과 풍요의 공간이었다. 그 때를 돌아본다. 진주-반성-마산-삼량진-밀양-대구-김천까지는 그야말로 경상도 판이다. 경상도는 거칠다. 격하다. 투박하다. 그 거침과 격함과 투박함이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 될 때도 있지만 경상도 사람들에게 그것을 제거하라고 하면 껍데기일 뿐이다.

경상도가 누리는 그 격한 감정과 투박한 말투가 뿜어내는 땀 냄새는 어떤 경우 향긋할 때도 있다. 이 땅의 권력이 격함과 거침과 투박함을 자기들의 기득권과 권력을 찬탈하는데 악용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경상도가 아직 스스로 악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 그 투박함과 거침, 격함으로 악용하는 자들을 걷어내기를 바란다.

김천을 지나면 영동-대전-조치원-천안이다. 그들은 순박한 것일까? 조용한 것일까? 그렇다 그들은 조용하다. 말이 없다. 남을 향한 배려가 풍겨난다. 충청도는 무엇일까? 아직 그들을 피부로 만나지 못했다. 말로 만나지 못했다. 감성으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하기에 다른 말하는 충청도를 그리 믿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가운데 자리한 그들이기에 온갖 것이 난무하고 자기만 옳다고 고집하는 이 나라 사람들을 아우르는 능력을 지였을지도 모른다.

어찌 좁은 땅에 경상도와 충청도가 이렇게 다른지 궁금할 뿐이다. 입으로 표현되는 말은 1 시간도 되지 않아 느낌이 다르다. 왜 이들은 달리 발음할까? 통일호와 비둘기호는 말과 언어의 억양, 뜻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것은 좋은 것이다. 달라야 사람 사는 맛이 난다. 모두가 같으면 사람이 살 수 없다. KTX가 준 가장 큰 선물인 시간의 단축은 다양성을 빼앗아 갔다. 이는 사람 사는 맛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이며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을 빼앗긴 것이다. 그래도 좋은 세상일까?

기차 안 사람들의 심리는 어떨까

3년간 철도여행을 통하여 깨달은 바는 한 주간 한 주간의 눈 밖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육체의 눈은 자연의 변화를 읽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면 풍경은 다르다. 시간의 간격이 공간을 변화시켰다. 이번 주도 변함없겠지 생각했지만 어느덧 자연은 변화된 속살을 드러내었다. 아차! 싶어 변화된 모습에 경의를 표하지만 자연은 한 걸음 더 나아가버린다.

그럼 기차 안의 풍경을 어떨까?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를 통한 옷차림의 변화,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서울, 전라도 사람들의 언어와 생활 방식의 차이, 여자와 남자, 어린아이와 어른의 차이다. 끝없는 변화의 연속이다. 같은 이, 같은 풍습, 같은 옷, 같은 생김새가 없다. 오늘 만난 이가 , 내일 만나는 일이 없었고, 내일 만나는 이를 오늘 만날 수 없었다. 다르다 달라. 다른 이들이 이 대한민국 하늘 아래, 더 넓게는 지구 하늘 아래 사람이라는 공통분모로 살아간다. 다르지만 같은 존재로.

기차 안 사람들의 심리는 어떨까? 김형경의 <사람풍경>은 이를 답할 수 있을까? 기차가 아닌 비행기로 떠난 그의 여행길을 담은 사람풍경으로 기차 안 사람 마음을 이야기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형경이 만난 사람도 기찬 안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형경은 <사람풍경>을 통하여 여행을 한다. 이름 하여 심리여행.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심리는 같을 수 없다. 페기·유치·이탈리아 로마의 보르게 공원의 운동복 차림의 남자. 로마행 기차 안의 역무원, 밀라노 지하철역의 소매치기 소년, 카라바조·미켈란젤로는 달랐다. 다른 심리로 세상을 살았다.

다르고 같은 이들의 마음을 그 때는 자연의 변화와 사람살이의 변화를 눈으로만 읽고 보았지만 그들 내면의 변화를 읽는 눈이 부족했다. 어떤 이는 불안감, 어떤 이는 공포, 어떤 이는 중독, 어떤 이는 질투, 어떤 이는 회피, 어떤 이는 시기심, 어떤 이는 자기애, 어떤 이는 친절, 어떤 이는 우울이라는 심리 상황으로 기차에 몸을 실었을 것인데, 나는 읽지 못하였다. 다들 다른 얼굴이라면 다른 심리로 살아가는 이들인데 말이다. 10년 전의 일이라 지금 그들을 읽고, 보고,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럼 이제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럴 수 있을까?

<철도여행의 역사>와 <사람풍경>처럼 다시 나에게 기차 여행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들을 겉보기만 아니라 실제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저 사람은 우울증에 걸렸을까? 왜 혼자 여행을 떠날까? 아이가 울고 있을 때, 과연 아이와 엄마의 현재적 관계는 앞으로 10년 후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저 사람은 자기 어미와 어떤 관계를 통하여 성장하였을까? 저 아이는 지금 엄마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앞으로 자라서 공포·질투·시기심·불안·회피·자기애·친절·공감·용기·의존 중 무엇이 저 아이를 지배할 수 있을까? '자연풍경'과 함께 '사람풍경'의 여행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태그:#기차, #마차, #통일호, #무궁화호, #K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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