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4 12:02최종 업데이트 24.09.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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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드러나는 온갖 환경문제와 불평등 문제, 그로 인해 삶의 위협을 받는 존재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기록합니다. 기후위기가 왜 나의 문제인지 공감대를 만들고, 우리에게 닥친 생존의 위기를 고민하기 위해 생태공동체로서 공존하는 지혜를 모아보고자 합니다.[기자말]

2024년 3월. 폭설로 죽은 산양만 1022마리이다. 통계에 잡힌 숫자만 그렇다. 산양의 떼죽음은 ASF(아프리카돼지열병)방역을 이유로 강원도에만 1179km 길이의 철제 울타리를 쳤기 때문이다. 오도 가도 못하는 어린 산양이 도로 위에 앉아 있다. ⓒ 박그림


갈 데가 없다. 산양의 얘기다. 200만 년 전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리가 짧은 초식동물의 무기라고는 활처럼 굽은 작은 뿔 두 개뿐이다. 200만 년을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산양은 해발 1000m가 넘는 가파른 벼랑 끝에 산다. 뾰족한 발끝과 말랑말랑한 발바닥으로 가파른 산을 오르고 벼랑을 뛰어다니며 포식자들은 오지 못하는 곳으로 몸을 피했다. 사는 곳을 벗어나지 않고 한곳에 머물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천적을 피해 절벽에서 사는 법을 터득한 지혜로운 이 동물, 빙하기에도 살아남은 고대 동물은 이제 갈 데가 없다.

설악산, 산양들의 집

박그림은 매주 주말이면 설악산 소공원으로 간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8월 2일은 휴가철이라 소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제는 전투복이 된 초록색 치마와 ‘이러다 다 죽는다’는 문구가 적힌 원판을 높게 치켜들고 설악산을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절박하게 외친다. 제발 설악산 어머니와 산양 형제를 그대로 두라고. ⓒ 변정정희


설악산에서 처음 산양을 봤을 때를 박그림은 잊지 못한다. 그 뒤로 틈만 나면 설악산에 갔다. 산양을 더 보고 싶고 알고 싶었다. 산양의 똥자국과 발자국을 따라다니면서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산양하고 눈이 딱 마주친 거예요. 쉬고 있는 산양이 벌떡 일어나더니 막 뛰죠. 그러다가 저만치 가서 딱 서는데, 그때 해가 막 지고 있었거든요. 햇볕을 등지고 산양이 나를 쳐다보는데, 털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반짝거리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거예요. 황홀할 정도로. 산양이 몇 초 보더니 확 돌아서 사라져 버렸어. 나는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하고 서 있었어요."

산양이 그리워서 산양의 흔적을 따라 매일같이 설악으로 향했다. 산양의 발자국을 볼 수 있는 겨울철에는 며칠씩 산에서 지내는 날들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산양을 만날 수 있을까, 그 생각뿐이었다.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도록 몸에 비누칠도 하지 않고, 끼니는 생식으로 바꾸며 산양을 따라다녔다.

산양의 흔적이 보이면 그 자리에 멈춰 한참을 들여다본다. 크기는 얼만한지 줄자를 꺼내 폭과 크기를 재고 사진을 찍고 족적 도감에 적어 둔다. 발자국을 따라 가파른 곳으로 올라가면 어김없이 산양이 누웠던 흔적이 보인다. 산양들은 바위를 등지고 앞에는 낭떠러지가 있는 바위 턱에 누워서 쉰다. 은신처로 몸을 숨기기가 좋고 시야가 트여 있어 언제든 벼랑을 타고 도망갈 수 있다.

근처에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 까만 똥'이 있다. 똥을 뒤져보며 뭘 먹었는지, 색깔이 왜 다른지, 똥 냄새를 맡아보고 손으로 눌러도 본다. 가끔 씹어도 본다. 손에 산양의 똥냄새가 배서 손을 쓸 때마다 냄새가 나지만, 그게 싫지 않다. 수북하게 쌓인 똥과 발자국에는 산양의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박그림은 산양이 살아있음을 떠올리고, 산양의 삶을 그려본다.

그러고 있으면 어쩐지 자신이 산양이 된 것만 같았다. 산양이 쉬는 바위턱에 몸을 누이고 한둔(한데에서 밤을 지새움)을 할 때면 설악산에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이렇게 소름이 돋는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내가 사라지는 순간이 있어요. 숲과 나무와 별을 내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장면으로 그냥 들어가거든요. 나도 이 지구에 사는 하나의 생명으로 이 자리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럼 이 땅에 대한 생각도 달리하게 되고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죠."

국립공원, 이곳만큼은 지키겠다 약속한 땅

박그림이 한둔을 하며 지낸 곳. 산양은 지금쯤 어디에서 쉬고 있을까 생각하며 밤을 지새운다. ⓒ 박그림


박그림은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케이블카 때문이다. 2023년 2월 29일, 기어이 환경부가 오색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통과시켰다. 케이블카 문제는 강원도가 문화재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한 1982년으로 올라간다. 40년이 넘는 오랜 싸움이었다.

설악산은 1965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1970년 국립공원, 1982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고, 백두대간 보호지역 핵심지역, 세계자연보전연맹 보호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몇 겹의 보호를 받는다. 그만큼 다양한 생물종이 살고 있으며 생태적으로 보존 가치가 뛰어나다.

국립공원은 파괴되어 가는 생태계를 보전한다는 목적으로 생겼고, 그런 이유로 강원도가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신청한 문화재 현상변경허가는 두 번이나 부결되었다. 케이블카 사업이 부활한 건 2010년 자연공원법이 개정되면서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노선 길이가 2km에서 5km로 연장된 이후다.

2012년 양양군은 오색지구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4.6km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신청했다. 사업은 곧바로 부결되었다. 대청봉과 가깝다는 이유였다. 두 번째 신청, 산양 서식지와 가깝다는 이유로 환경부는 또 한 번 부결시켰다.

양양군은 2015년 사업 계획을 변경했다. 케이블카 노선을 오색에서 끝청봉까지 길이를 줄이고 상부정류장 위치를 낮췄다. 그러자 환경부의 입장도 바뀌었다. 산양 추가 조사, 식물보호대책 등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사업을 승인해 준 것이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 보고서 조작 의혹이 드러났고, 불법과 거짓 뒤에는 박근혜 정부와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지금의 한국경제인연합회)의 산악관광활성화 정책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결국 2019년 환경부가 오색케이블카 사업 부동의 결정을 내리면서, 케이블카 사업은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그러나 2022년 윤석열 후보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추진 공약을 내걸면서 환경부는 다시 입장을 바꾸어 '조건부 동의'했고 지난 2023년 11월 양양군은 오색 케이블카 착공식을 열었다.

양양군이 케이블카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박그림은 설악산을 포기한 적이 없다. 양양군이 사업 신청을 할 때마다 박그림과 지역주민들은 '자기 삶을 걸고' 케이블카 반대를 외쳤다. 환경부와 강원도청 앞에서 농성을 하고 설악산 대청봉까지 오체투지로 올라간 것만 몇 번인지 모른다. 혼자 대청봉에서 피켓을 들고 케이블카 반대를 외친 날들을 셀 수조차 없다.

설악산 아고산대에 털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설악산은 산양의 집이자, 털진달래의 집이다. ⓒ 박그림


착공식이 끝나고 사람들은 박그림에게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40년째 그의 대답은 같다. 국립공원 공원자연보존지구는 '개발행위를 할 수 없도록 약속된 땅', 고작 전 국토의 1.6%. 이곳만큼은 훼손하지 말자는 약속을 깨버릴 수는 없다. 착공식을 했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한 번도 케이블카가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설악산은 약속한 땅이니까. 그 원칙을 얘기하는 거예요. 경제성은 얘기하지 말라고 했어요. 경제성이 있다면 케이블카 놔도 되나요? 경제성이 있더라도 놓지 말아야 된다, 그게 원칙이라는 거죠.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한 발 물러서면, 두 발 물러서게 돼요. 양양군이 뭘 하려는 건지는 2014년 한경협이 발표한 산악종합관광 조감도에 다 나와 있잖아요. 오색 케이블카 하면 대청봉 망가지는 건 시간 문제니까요. 이거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거예요."

정말 그랬다. 오색 케이블카 사업 허가가 나자, 국립공원이 있는 지자체들이 앞다퉈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하나같이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달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앞세우지만 막상 공사를 앞둔 양양 주민들은 안다. 환경영향평가서나 경제성평가 보고서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으며, 경제 효과가 있다 해도 자신들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케이블카 사업 예산 1172억 원 가운데 948억 원을 양양군이 부담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주민들은 뒤통수가 얼얼했다. 양양 주민들은 오색 케이블카 사업을 중단하라며 주민감사를 청구했고, 그동안 케이블카 사업을 찬성해 왔던 주민들도 참여해 200명 가까이 청구인 명부에 서명했다.

이러다 다 죽는다

지난 7월 29일,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공사를 앞두고 백지화를 촉구하며, 오체투지로 대청봉까지 올랐다. 오체투지를 하기 위해 전날 모인 활동가와 시민들이 하부 정류장 예정지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전국 지자체들이 케이블카 설치하겠다고 발표하는 지금도, 케이블카 사업 승인을 두고 환경부가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사이에도, 산은 꾸준히 망가져 가고, 동물들은 죽어갔다.

박그림이 처음 설악산에 올 때 만해도 사람이 이렇게 많지 않았다. 70년대가 지나면서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시설물이 들어선다는 뜻이었다.
설악산은 점점 패여 갔다. 대청봉 땅이 다 드러났을 때, 그는 자신의 손에서 피가 묻어나는 것만 같았다. 산을 오르내릴 때는 올무를 없애는 게 일이었을 만큼 산에는 올무가 많았고, 올무에 걸려 죽은 산양과 동물들이 많았다.

나무들도 죽어갔다. 산양이 살아있는 화석이라면, 아고산대(亞高山帶, 저산대와 고산대 사이에 있는 아한대기후대)는 '빙하기의 유산'이라 불린다. 빙하기 때 내려온 한대성 식물들이 지금의 생태계를 이루어 산꼭대기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고산대는 고산식물들의 생존에 절대적인 곳이며, 희귀성이 높은 식물종, 기후에 취약한 종들이 사는 특수한 생태계이다.

설악산에도 아고산대 식물들이 살고 있다. 케이블카가 들어서는 오색지구에는 해발 800m이상부터 신갈나무가 있으며, 1000m 이상이 되면 마가목, 분비나무, 눈측백이 살고 있다.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이 예정된 곳은 기생꽃이 서식하는 곳이다.

케이블카 아니어도 뜨거워지는 기후에 땅은 말라가고, 식물들의 피난처인 아고산대에 사는 생물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식물들이 이동하는 속도는 기후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서식지를 잃고 사라져간다는 것은 죽는다는 뜻이다.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이 아니면 다른 곳은 없다. 산양의 얘기이며 눈잣나무의 얘기이다. 그리고 나의 얘기이다. '이러다 다 죽는다'는 얘기다.

"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목을 조르고 있는데 자기 일이 아닌 거예요. 무관심이죠. 결국에는 무관심이 세상을 다 죽이잖아요."

박그림은 '동물이 살지 않는 산은 죽은 산'이라고 했다. 생명은 관심을 두지 않으면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함께 살아야 한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땅, 살아 숨 쉬는 지구가 필요하다.

[필자 소개] 정윤영: 이러저러한 일로 밥벌이하며 르포를 쓴다. <숨은노동찾기>, <달빛노동찾기>,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리다> 등을 함께 썼다.
덧붙이는 글 기획 공동진행 : <(사)세상과함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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