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09 11:49최종 업데이트 24.09.1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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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드러나는 온갖 환경문제와 불평등 문제, 그로 인해 삶의 위협을 받는 존재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기록합니다. 기후위기가 왜 나의 문제인지 공감대를 만들고, 우리에게 닥친 생존의 위기를 고민하기 위해 생태공동체로서 공존하는 지혜를 모아보고자 합니다.[기자말]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사무실에서 만난 윤상훈 전문위원 ⓒ 변정정희


파란 물로 찰랑이는 바다를 보며 메마른 하얀 사막을 떠올릴 수 있을까? 상상이 아니다. 요즘 제주 바다는 디스토피아 영화를 방불케 한다. 바닷속 사막을 목격하고 제주로 이주해 바다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7월 제주시 한 카페에서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윤상훈 전문위원을 만났다.

원래 제주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니다

갯녹음이 퍼지기 시작한 성산일출봉 해안가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인간이 훼손하지 않은 바다는 모두 '조간대'가 있다. 밀물 때 잠기고 썰물 때 드러나는 지역이다. 제주는 지질 특성에 따라 현무암으로 이뤄진 암반조간대를 가지고 있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연안 바위에는 생각보다 많은 생물들이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대표적인 생물이 미역, 톳, 모자반과 같은 해조류다. 하지만 최근 해조류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석회조류가 달라붙어 바위가 하얗게 마르고 있다. 이를 '갯녹음', 다른 말로 '백화현상', '바다사막화'라고 부른다.

"원래 제주 바다는 잿빛이에요. 모자반 같은 해조류가 암반조간대를 덮고 있으면 바다가 갈색이나 잿빛으로 보이거든요. 그런데 수온 상승으로 해조류가 사라지면서 갯바위가 하얗게 바뀌어버렸어요. 이게 바다 밖에서 보면 엄청 맑고 투명하게 보여요. 에메랄드빛 청정 바다라고 생각하죠."

그는 2021년 녹색연합 활동 시 제주 해안선을 따라 조간대 200곳을 조사했고, 198곳에서 갯녹음 현상을 확인했다. 사실 바다를 자주 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육지에서 바라본 제주 바다는 투명하고 예뻐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면 아래 바다숲은 하얗게 불타오르는 중이다.

미역, 모자반, 감태 해조류가 사라진 바다

모자반 군락을 이루었다가 사라진 문섬 바다의 갯녹음 (위)2018년 (아래)2023년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아이를 낳은 산모가 미역국을 먹는다. 그 아이도 자라면서 생일마다 미역국을 먹는다. 그런데 지금 태어난 아이는 생일이 되어도 미역국을 못 먹을지 모른다. 제주 바다 최남단 마라도에 미역이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줄어든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이다.

"수온이 25℃ 이상 오른 상태로 15일 이상 유지되면 미역이 포자를 퍼뜨리지 못하고 죽어버려요. 8월 평균 수온을 보면, 2018년 24℃대, 2019년 25℃대, 작년에는 한 달 내내 28℃대 수온을 유지한 거예요." (인터뷰가 끝난 며칠 뒤 올해 8월은 30℃대를 넘어섰다.)

어느 날 갑자기 한 번에 미역이 죽어버릴 만큼 뜨거운 바다에서 사라지는 게 미역뿐일까? 톳도, 감태도, 모자반도 모두 사라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바다숲은 빽빽했다. 길고 굵은 모자반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군락을 이루었고, 감태는 갯가로 떠밀려와 줍기만 하면 될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제주 해녀들은 이제 육지 사람처럼 부산 기장 미역을 사와 미역국을 끓인다. 해조류가 사라진 바다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냥 해조류를 먹지 않으면 되는 걸까?

"해조류가 없으니 보말이 안 나는 거예요. 보말 대신 완도산 전복으로 대신하죠. 보말칼국수 집들이 전복칼국수 집들로 바꾸고 있어요. 성게도 마찬가지예요. 제주도 스시집들이 홋카이도산이나 캐나다산 성게알을 쓰는 거죠. 서귀포 지역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요새 들어 바다 먹거리 자체가 끝나버리는 느낌이 확 들어요."

땅에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바다도 해조류로 이뤄진 숲이 필요하다. 수많은 바다 생물의 서식처가 되고 먹이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해조류를 먹이로 하는 전복, 오분자기, 소라도 줄고 있으며, 해조류 숲을 은신처이자 산란처로 쓰는 옥돔과 자리돔도 사라지고 있다.

제주산 생참치를 먹을 수 있다면 과연 잘된 일일까?

제주 대표 어류들이 사라진 곳에는 구로시오 난류를 따라 올라온 해파리가 자리잡고 있다. 구로시오 난류는 필리핀에서 타이완을 경유해 제주 방향으로 올라오는 뜨거운 해류다. 노무라입깃해파리를 비롯한 독성 해파리들은 서귀포를 넘어 강원 동해안까지 등장했다. 물론 해파리만 밀려오는 것은 아니다. 제주 바다에는 다양한 아열대 어종들이 나타나고 있다. 청줄돔, 가시복, 거북복 같은 낯선 어류가 등장했고, 참다랑어도 심심치 않게 잡히고 있다. 그렇다면 냉동 참치 대신 제주산 생참치를 먹을 수 있으니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

"되죠. 왜 안 되겠어요? 제주도 대신 사이판이나 괌에 왔다고 생각하고 살면 되죠. 하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바뀌는 자연적인 천이의 과정은 아니에요. 인간이 개입한 혁명적인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단순히 이 지역, 이 시점만 가지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는 제주 남쪽 서귀포 바다를 '기후 위기의 최전선'이라고 표현했다. 육지의 관점으로 보면 제주는 우리나라 맨 끝 섬이지만, 바다의 관점으로 바꾸면 드넓은 태평양의 맨 앞인 것이다. 태평양의 최전선이다. 해양 생물들은 구로시오 난류를 타고 제주 바다로 올라온다. 이곳이 마지막 피난처이다. 더는 갈 곳이 없다. 이대로 바다가 더 뜨거워진다면 지금 제주에서 만나는 참다랑어가 우리 세대에서 보는 마지막 참다랑어일 수 있다.

바다의 온도가 높아지자 산이 무너졌다

하수종말처리장 최종 방류관 주변에 모인 자리돔과 아열대 어종 용치놀래미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육지에 사는 우리는 기온 상승을 온몸으로 체감한다. 기후 재난까지 가지 않더라도 한여름 낮에는 밖에 나갈 수 없을 만큼 뜨겁고 습하며, 밤에는 자다가 깰 만큼 열대야가 지속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하지만 저 멀리 제주 바다가 뜨거워진다는 것은 도무지 와 닿지 않는다. 바다가 사막이 되고 이름 모를 생물이 나타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제주 바다의 평균 수온이 25도 넘어가는 시점에 기후 위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어요. 한라산 백록담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남벽이 무너졌어요. 한라산에만 사는 한라솜다리 서식지가 사라졌고, 크리스마스 나무로 알려진 구상나무 군락도 멸종위기에 들어섰어요."

바다의 온도가 높아지는데 왜 육지의 산이 붕괴할까? 수온 1도가 오르면 수증기의 양은 4~7%가량 증가한다. 이는 잦은 비와 안개로 바뀌고 풍랑을 일으킨다. 열대지방에 비가 많이 내리는 이유와 같다. 결국 약한 암반에 영향을 미쳐 절벽 붕괴를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지난 4월 천연보호구역인 서귀포시 섶섬 해안 절벽이 붕괴했고, 연이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인 수월봉 절벽이 무너져 탐방로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는 이 현상을 자연적인 암벽 붕괴가 아닌 '기후 붕괴'라 칭했다.

바다와 육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수온이 높아지며 육지에 문제가 생기듯, 육지의 문제도 바다로 이어진다. 사실 수온이 올라가는 것은 바다가 높아진 대기의 온도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다가 없다면 지구는 펄펄 끓어 이미 멸망했을지 모른다. 이 연결은 수온에만 그치지 않는다.

현재 제주 환경 정책은 육상 오염원들은 제대로 규제하지 않고 있다. 농업, 축산업, 양식업, 관광업 등을 제주 특화 산업이라고 장려하며 오히려 오염 배출시설을 늘리고자 한다. 결국 감귤을 재배할 때 쓰는 농약과 비료, 흑돼지를 기를 때 나오는 분뇨, 넙치(광어) 양식장의 항생제와 죽은 사체, 관광지에서 쏟아지는 오폐수와 쓰레기는 바다로 흘러간다.

"월정 하수종말처리장 쪽 바다에 들어가 봤습니다. 최종 방류관에서 찌꺼기가 나오니까 물고기가 바글바글 모이더라고요."

자연산 물고기는 우리가 버린 오폐수 쓰레기를 먹고 자란다. 그럼 '깨끗하게' 양식하면 어떨까? 우리는 현재 수산물의 많은 양을 양식으로 감당하고 있다. 제주도에만 넙치 양식장이 360여 개 있다. 하지만 양식장에서 나온 배출수량은 공공하수처리시설보다 80배 많다. 심지어 배출수 규제 기준도 미흡해 양식장 주변 역시 백화현상으로 말라가고 있다. 항생제와 죽은 사체들이 그대로 나와 바닷물을 오염시키고, 오염된 바닷물이 다시 양식장으로 들어가 넙치를 키운다. 이를 반복하면 양식장의 해조류나 어류도 더는 만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도 아직 제주에 산호가 남아있다

제주 연산호 군락에 살고 있는 금빛나팔돌산호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그가 바닷속에서 마주한 것은 황폐한 사막만은 아니었다. 다행히 제주 바다에는 아직 황홀한 아름다움이 남아있었다. 바로 산호다. 바다에 들어가 처음 산호를 마주한 순간을 물었을 때, 그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산호는… 그냥 단순히 아름다운 산호… 산호를 보면 마음이 달라져요. 예쁘죠. 어떤 지점들은 매우 아름답고, 어떤 지점들은 되게 위기의 징후가 보여요."

그는 2007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앞두고 환경 조사를 위해 처음 제주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오색찬란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제주 남쪽 서귀포 해역과 송악산 해역에 있는 연산호 군락이다. 연산호란, 부드러운 표면과 유연한 줄기 구조를 갖춘 산호로 '바다의 꽃'이라 불리며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있다. 하지만 연산호 역시 수온이 높아지고 오염되면 말라 죽어 백화되거나, 열대 바다의 딱딱한 경산호로 잠식된다. 그는 기록하기로 했다. 활동하고 있던 녹색연합 해양생태팀 활동가들과 함께 서울을 떠나 제주 서귀포에 녹색연합 산하 전문기구를 만들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이 글을 완성하는 며칠 사이 연산호가 녹아 죽기 시작했다는 기록을 받았다.)

바다로 나선 시민들, 왜 해양시민과학이 필요할까?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해양'이라는 공간에서 '시민과학'의 방식을 통해 해양 정책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곳이다. 그런데 왜 '시민과학'일까?

"산호를 전공하는 과학자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전국을 다 조사해서 보고서를 쓰는 게 가능할까요? 시민과학자들은 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접근성이 좋고 일상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시민과학은 시민이 과학연구 활동에 참여해 과학자와 협력하는 방식을 말한다. 시민과학자는 소수의 과학자나 정책입안자보다 폭넓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에 연구 결과를 내고 이를 기반으로 정책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래서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오늘도 기록 중이다.

산호탐사대와 바다숲탐사대를 조직해 산호와 해조류를 비롯한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추적하고, 해양보호구역 탐사를 통해 해양 감시활동을 하고 있다. 기록으로 산호를 훼손하는 관광잠수함의 운항경로를 바꾸었고, 하수종말처리장 증설 문제가 생겼을 때 의견을 제출했다. 또한 해양 정책을 제대로 이끌어가도록 '생태제주특별법'을 제안하며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파란'은 온전한 파란(Blue) 바다로 돌아가자는 뜻인 동시에 해양 정책에 파란(Wave)을 일으키자는 뜻이다. 지난해 7월 창립해 1년간 부지런히 바다를 헤엄치며 조금씩 바다의 시간을 넓혀왔다. 보이는 바다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시민과학자들이 더 모인다면, 파란 물로 찰랑이는 제주 바다를 계속 꿈꿀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기획 공동진행 : <(사)세상과함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바다에 사는 동물 중 어류를 흔히 '물고기'라고 부릅니다. 이는 수중 동물을 고기, 즉 식재료로 보는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은 내용 전달의 편의를 위해 '물고기'와 '어류'를 혼용하여 사용했지만, 글쓴이는 물에 사는 존재란 뜻의 '물살이'를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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