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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암 박인호 어록비
 춘암 박인호 어록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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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상오 9시에 내수동에서 정광조의 집례로 성복식을 거행한 후에 운구가 발인되어 10시에 중앙대교당에서 영결식을 거행하였다.

영결식은 박완의 사회로 주악 속에 개식하여 심고와 주문 병송이 있고. 장의 위원장 권동진의 식사, 상주선도사 정광조의 영결사, 교령 이종린의 약력 낭독, 고원훈과 유지훈의 조사, 이을(李乙)의 조전문 낭독, 분향, 주악, 폐식심고로 이어졌다.

영결식에는 50여 명의 교인들이 지방 대표로 참석하였고, 부인 대표로 손광화와 박명화, 학교 대표로 보성전문 김성수, 보성중학 주종의, 동덕여학교 조동식 그리고 교외 인사로 김병로·이인·유홍종·오긍선·최두선·김영주·채완규·장우식·배성룡·서광설·이극로·윤익선 등이 참석하였다.

오전 11시 대교당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상여는 갈현리로 향하였는데 유족 외에 1천여 명의 조객들이 뒤를 따랐다. 오후 2시에 묘지에 도착하여 3시에 하관 안장하였는데 이때 최린이 친필로 '천도교제사세교주법종춘암상사박인호지묘(天道敎第四世敎主法宗春菴上師朴寅浩之墓)'라고 쓴 지석을 묘정에 묻었다. 

춘암상사 환원에 즈음하여 권동진은 "의암성사께서 '도는 도주장(춘암상사)이 계시니 염려가 없고 다만 실암·한암·여암 3인이 합심하면 교중 사는 물론이요 천하사라도 어려울 것이 없을 터이니 3인이 일심협력하기를 바란다."는 성사의 유훈을 생각하며 오늘 대합동이 성립된 것을 보게 될 때 진실로 춘암상사는 성현이시다."라 하였고,

정광조는 "나는 의암성사와 춘암상사께서 그 도법에 있어서 전혀 이신일체(異身一體)로 생각한다."고 하였으며, 최준모는 "춘암상사는 전 생애를 통하여 언제나 한결같이 도(道) 그대로, 유훈 그대로를 실행한 것이 바로 위대한 도법이오, 우리의 스승이 된다."고 하였다. 또 이돈화는 "춘암상사의 성령은 지금 성령으로 출세하여 백만 교도의 영혼 속에 부활되었을 것을 믿는다."라고 하였다. (주석 1)


주석
1> <신인간>, 1940년 5월호.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박인호평전, #박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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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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