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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천문화제의 핵심행사인 수신제 장면
ⓒ 진홍
대부분 지역축제는 천편일률적인 전시성 행사에 장사꾼들이 북새통을 이루기 일쑤입니다. 이런 행사는 지역 고유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채 대중가수와 노래자랑의 경품으로 지역주민을 동원하는 형편입니다. 주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지역축제에 지역민이 들러리로 전락한다는 건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지난 20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이틀간 펼쳐진 대전 갑천문화제는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극복하면서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발한 흔적이 곳곳에 스며 있었습니다. 이처럼'보여주기 형' 행사에서 '참여 형' 행사로 탈바꿈해가는 지역축제는 시민 문화의 관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은 구석기와 신석기 선사시대 유물이 대량으로 발견된 지역입니다. 충남 금산군 대둔산 자락에서 발원한 갑천은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채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여 주었고 조상들의 삶과 역사를 품고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갑천문화제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풍습을 유지하며 전통을 이어가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함으로써 미래를 열어가는 대전 서구문화를 대표하는 행사로 올해로 열번째 축제였습니다.

21일 웃다리농악과 살풀이춤에 이어 11시부터 엑스포대교 갑천 잔디광장에서 시작된 수신제는 갑천문화제의 본행사로 주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향으로 펼쳐졌습니다.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2호인 '대전 앉은굿' 보유자 송선자(60)씨가 주관한 굿은 여느 굿판과는 다른 계룡산 일대에서 행해지는 특색 있는 굿이었습니다.

▲ 앉은굿을 하는 송선자씨(왼쪽)와 전통굿인 ‘신장(신 중에서 장군의 스승으로 잡귀잡신을 몰아내고 제압하는 신으로 오방신이라고도 함)가림’을 하는 강신무
ⓒ 진홍
'앉은굿'의 특징은 '설위설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혼령의 이름을 종이에 쓴 '위목'이나 '철망'이라고 일컫는 그림, 부적 등을 설치하고 무경을 낭송하는 것으로 1950년대 한국전쟁 시 피난길에 전통굿과 도교적인 양식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이 지역 특유의 굿입니다. 이날 행사에서는 '앉은굿'과 '설위설경'의 일부만 선보였습니다.

'띄배 소원빌기' 행사는 삼국시대부터 갑천변을 중심으로 전래되어온 '띄배설화'를 바탕으로 구전된 풍습을 재현한 행사였습니다. <금암집>에 전하는 띄배설화에 근거하여 부모는 시집간 딸이나 군대간 자식을 위해, 자식들은 늙고 병든 부모를 위해, 청춘남녀는 달콤한 연애를 위해, 어린이는 아름다운 동심을 위해 배를 띄우는 모습을 보며 '지역의 역사나 기억'을 잘 살려낸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지푸라기는 어른과 아이들을 한데 묶어 어우러지게 만들어준다.
ⓒ 진홍
5월의 햇살과 강바람이 살랑거리는 갑천변 주변에는 선사시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움집과 돌도끼, 나무로 불피우기, 조개장신구 등이 준비되어 어린이들에게는 즐거운 역사 체험이 되고 있었으며 맷돌과 절구, 매통 등 농경문화체험은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옛 추억을 되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짚풀공예 체험장에선 직접 새끼줄을 꼬아 똬리를 만들면서 할아버지가 어린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면서 세대간의 벽을 허물고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서구청 문화공보실 문화계장인 윤영숙(48)씨는 예년과 달리 주민이 참여하는 프로그램 계발에 주력하여 성황리에 행사를 치르게 되었다고 자평하며 앞으로 이런 참여형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내년엔 갑천과 관련된 굿을 발굴하여 민속놀이화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아쉽고 부족한 점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예년의 하루 행사를 이틀로 늘린 탓인지 이튿날 행사장은 아침부터 파장분위기가 역력하였습니다.

첫날은 각 동별로 부녀회가 자원봉사를 하여 음식과 술도 마실 수 있어 잔치분위기였으나 이튿날엔 음식을 파는 상인조차 없어 걷기대회에 참가했던 중학생들이 점심을 굶으며 체험에 열중하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학생들은 작년처럼 빵과 우유라도 제공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주요 행사가 전야제나 첫날에 집중 배치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 전통 국수틀로 국수를 뽑는 농경체험 등 참여형 행사에 지역민의 호응이 좋다.
ⓒ 진홍
그리고 앞에 소개한 행사 이외의 것들은 여느 자치단체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딜 가나 가수 초청공연과 나열식 공연은 빠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역주민들을 엮어주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지역 특성에 기반하여 지역공동체성을 살리는 행사들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1천여 개에 가깝게 축제들이 난립하는 과히 '축제의 나라'입니다. 녹차미인, 딸기미인, 토마토미인 등 말썽 많던 미인대회는 많이 정리되긴 했지만 아직도 구태의연한 관 중심의 보여주기식의 세금 축내는 행사가 대부분입니다.

지난 2월 서울의 모 구청 정월대보름 행사 중 달집만들기에 필자가 참여한 적이 있는데 공무원들은 지역주민은 아랑곳 하지 않고 '구청장이 만족해야'한다고 공공연하게 요구하였습니다.

"갑천은 들이 지극히 넓고 사방의 산이 맑고 수려하다. 세 줄기의 큰 내가 합쳐져서 토지는 모두 물대기에 용이한 점이 있으니 수확이 크다. 목화재배에 적합하고 강경이 멀지 않다. 앞쪽에 큰 저저가 있어 해협으로서의 이익을 취해 영원히 대를 이어 살만한 터전으로 정할 만 하다"고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말하고 있습니다.

250여년 전 갑천예찬론에 걸맞게 갑천문화제가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살려 특색 있는 지역축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필자나 지역주민 모두의 바람일 것입니다. 기왕이면 '굿보고 떡도 얻어먹고 함께 참여하는' 흥겹고 신바람 나는 관과 주민 모두의 잔치야말로 지역발전과 문화 민주화를 이루는 길이라는 생각입니다.

▲ 꿈과 희망을 실어 보낸 배들이 대전의 젖줄인 갑천위를 흐르고 있다.
ⓒ 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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