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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서초등학교에서 J-프로젝트 반대집회를 열고 있는 주민과 환경단체회원들
산이서초등학교에서 J-프로젝트 반대집회를 열고 있는 주민과 환경단체회원들 ⓒ 박남일
서남 해안 끝자락에 자리 잡은 해남군 산이면은 해발 십여 미터 안팎의 완만하고 낮은 황토밭으로 이루어진 작은 반도이다. 십 몇 년 전만 해도 이곳 산이 반도는 곰솔이 우거진 해안을 따라 세발낙지, 게, 바지락 등 천연 해산물이 풍부한 갯벌이 살아 숨쉬는 곳이었다.

남쪽으로는 화원반도가, 그리고 북쪽으로는 영암반도가 둘러싸고 있어서 천혜의 요새를 연상케 하는 산이반도는 그 생김이 마치 지중해를 향해 치달리는 반도 국가 이탈리아를 닮았다. 비단을 펼쳐놓은 호수 같은 바다로 낙조가 떨어질 무렵이면 산이반도의 하늘과 바다와 땅은 온통 붉은 빛이다. 그 붉은 빛의 향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파에 찌들려 무딜 대로 무딘 마음에도 잔잔한 감동이 번져오곤 한다.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그 감동도 소수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말 것 같다. 지난 2004년 말 목포에 내려온 노무현 대통령은, "전남에 큰 판을 벌이겠다"고 하였다. 마치 도박판을 연상케 하는 이 발언이 나온 뒤, 전남 서남해안 일대는 급류에 휘말리고 있다. 전남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서남해안 관광·레저기업도시 개발계획', 일명 'J프로젝트' 때문이다.

'J프로젝트'란 해남, 영암 일대 간척지와 농경지 3천만여 평에 35조원을 들여 인구 50만 규모로 기업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말이 좋아 기업도시지 1500만여 평은 세계 최대 규모의 골프장으로, 나머지는 카지노와 같은 향락시설과 여타 시설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전남도는 이미 300여만 평을 시범지구로 지정해달라고 승인요청을 해놓은 상태이며, 6월말이면 99% 정부의 지정 승인이 날 것으로 보인다.

골프장 건설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가?

'J프로젝트'의 요체는 골프장 건설이다. 얼마 전 재정경제부 차관은 공식석상에서 말했다. 골프장 100개만 건설하면 건설경기 부양에 도움이 될 것이란다. 참으로 생게망게한 논리다. 골프장 건설은 평균60cm의 표토층을 걷어내고 그 위에 지형, 강우량 등을 분석하여 배수 공사를 하는 등 과학적 설계에 의해 매우 정밀하게 시공되며, 모든 공사를 '골프장사업자협회'가 수의계약하는 전문건설업체가 맡게 된다.

따라서 지역 중소 토목건설업체의 사업 참여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골프장 건설 중심의 J프로젝트가 지역 건설경기를 활성화시킨다는 말은 명백한 '거짓말'인 셈이다.

'개발'에 맛 들린 이들은 또 말한다. 골프장 건설은 일자리를 창출하여 서민경제에 기여한다고. 이 또한 참으로 해괴한 논리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영중인 골프장 가운데 원주민을 고용하는 곳은 거의 없다. 이·미용업, 요식업, 숙박업에 이르기까지 사업자가 클럽하우스에서 직영하고, 운영에 필요한 인력은 '골프장사업자협회'에서 양성한 전문 인력을 배치한다.

잔디 및 농약관리, 농약살포, 비료시비 등 모든 것을 골프장사업자가 출연해 만든 한국잔디연구소에서 배출한 인력과 자동화된 기계를 이용한다. 다만 조경지역 잡초제거를 위해 여성일용직 5명 정도를 고용하는 것이 전부다.

'J-프로젝트' 발표 이후 해남 산이면 일대에는 땅 투기 열풍이 지나갔다
'J-프로젝트' 발표 이후 해남 산이면 일대에는 땅 투기 열풍이 지나갔다 ⓒ 박남일
개발론자들의 해괴한 논리는 또 이어진다. 골프장이 생기면 많은 관광객이 몰려와,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며, 내장객들을 대상으로 지역에서 생산한 친환경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인데,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골프장 인근 농경지는 친환경농업 인증 자체가 불가능한 사실을 알고 하는 소리인가. 골프장 주변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제 가족들에게 먼저 먹인 다음에나 할 말이다.

골프장 관광객으로 인하여 주변에 음식점과 같은 가게들이 장사가 잘 될 것이라는 말도 거짓 선전이다. ‘클럽하우스’ 면적 규제가 엄격하던 시절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골프장 내에 모든 편의시설이 들어서서 운영되므로, 주변 상가는 오히려 폐허가 되는 추세다. 또한 클럽하우스 운영에 필요한 각종 자재, 식재료 등도 지역 시장이 아니라 전문 유통회사를 이용하게 된다. 일단 골프장이 건설되면 다른 용도로 개발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지역 땅값이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골프장 건설과 같은 대규모 개발사업이 자치단체 세 수입 증가에 기여한다는 말도 빈껍데기 논리다. '기업도시특별법'에 따라 골프장에 대한 특소세가 면제되면 골프장이 해남군에 내는 세금은 18홀 기준으로 3~4억원 정도이다.

국토의 효율적 이용 측면에서 보면, 18홀 골프장에 약 35만평의 토지가 필요하지만, 5만평의 농공단지를 조성하여 식품가공공장이나, 재활용처리업체 등 농촌사회에서 가능한 업종 5~6개만 유치하더라도 골프장 보다는 훨씬 많은 고용창출과 세 수입 증대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임야는 5천원, 전답은 2만원, 대지는 5만원 정도에 강제 수용할 수 있어

지난 2004년 말 공포된 '기업도시 특별법'에 따라 개발에 참여하는 기업은, 개발지역 토지의 50%만 수용을 하고 나면 나머지는 강제 수용이 가능하다. '참여' 정부와 17대 국회는 이토록 재벌기업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칼자루를 쥐어주고 말았다. 'J-프로젝트'의 사업 주체인 전남도와 문화관광부는 아직 이주민 보상대책에 대해서 공식적인 발표를 한 바도 없고, 그저 '기획 부동산' 업자들의 입을 통해서 흘러 나왔을 법한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답답한 현지 주민들은 보상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하여 밭에 나무를 심고, 빈 땅에 축사를 짓는 등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이러한 지역 주민의 답답증을 풀기 위한 실마리를 지금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화원 관광단지' 등 주변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992년에 지정된 화원관광단지 사업은 해남군 화원면 주광리, 화봉리 일대 154만평에 9700억원을 들여 골프장, 리조트 등을 2011년까지 건설하는 20년 사업이다. 이 사업에서는 1994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10년이 넘는 기간에 3차례에 거쳐 이주민에 대한 보상이 이뤄졌다.

화원면 주민 130여 가구에 대한보상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전남 도의회 전종덕 의원 요구 자료(요구번호: 2005-42)와 화원면 주광리 고광용 이장의 증언을 토대로 정리한 보상 내역은 <표1>과 같다.

<표1> 화원관광단지 지목별 보상내역
<표1> 화원관광단지 지목별 보상내역
화원관광단지나 탐진 댐 수몰지역 모두 토지에 대한 보상가는 평당 3~4만원 가량이다. 'J프로젝트' 발표로 부동산 투기가 들썩이기 이전, 해남 지역 토지 거래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기업도시'로 지정된 수용지역은 다른 지역 이주민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보상에 불리하다.

해남의 경우 '농업기반공사' 소유인 간척지만 수용되면 나머지 사유지에 대해서는 기업이 전면 강제 수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 등 대도시 재개발 지역에서 '깡패'들까지도 서슴없이 동원하는 그런 건설업체와 다를 바 없는 재벌 기업과 외국 자본이 바로 현지 주민들의 문전옥답에 대한 강제 수용권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2004년 12월 28일에 서울 조선호텔에서 개최되었던 '기업도시유치전략설명회'에서는 각 지방단체 부지사, 기획실장들이 나와 한결같이 저렴한 땅값을 무기로 기업도시를 유치하기 위해서 열을 올린 바 있다. 이 자리에서 J-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전남도의 기획실장은 "임야는 5천원, 전답은 2만원, 대지는 5만원 정도에 강제 수용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며, 저렴한 땅값을 무기로 기업도시 유치 전략을 설명한 바 있다.

해남 산이반도 주변 전지역에서 천연기념물인 수달의 배설물이 발견되었다.
해남 산이반도 주변 전지역에서 천연기념물인 수달의 배설물이 발견되었다. ⓒ 박남일
실제로 지난 4월 전남도에서 제출한 기업도시유치신청서에는 '전경련·한국관광공사컨소시엄'에서 시범지구 3백만 평에 대한 토지매입비를 900억원으로 계상하고 있다. 여기에서 지장물과 이주 보상비를 빼면 순수한 토지 보상비용은 평당 2~3만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이들이 계획한 총 투자비에서 토지매입비의 비율은 5.7%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이 현지 농민들의 문전옥답을 얼마나 헐값에 매입하려고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자료다.

수용지구 토지 보상의 당사자로 10년 넘게 화원관광단지 개발을 지켜본, 화원면 주광리 고광용 이장의 말을 옮겨 본다.

"1~2억씩 보상을 받고 처음에는 큰 돈인 줄 알았는데, 농협 빚 갚고, 도시에 나간 자식들 얼마씩 보태주고, 몇 년 쓰다 보니까 지금은 한 푼 없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이주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집을 지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습니다. 정부나 기업이나 땅값이 비싸면 개발을 하겠습니까?"

'35조원 투자' 전남도 발표는 거짓말이며 도박이다!

J프로젝트는 기업도시특별법에 근거해서 이루어지는 개발계획이다. 기업도시법이 자본에 대한 막대한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특혜와 권한을 주고, 각종 법을 무력화시키는 초법적이고 위헌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인 만큼 J프로젝트가 지역민과 지역의 이익을 위해 기여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자본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뿐이다. 특히나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는 막대한 부동산 투기를 합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백번을 양보하여, 이 모든 시도가 그들의 논리대로 '낙후된 호남'을 살리기 위한 전략이라고 치더라도, 'J-프로젝트'는 매우 허술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박이다. 예컨대, 인구 50만이면 현재 목포시 인구의 두 배가 넘는다. 전남도 안에서는 50만 명을 먹여 살릴 만한 수원지를 만들 만한 곳이 없다. 아마도 이 기업도시 주민들은, 적조와 녹조에 뒤덮인 영산강의 썩은 물이 아니면 청정(?)한 바닷물을 마셔야 할 터이다.

게다가 'J-프로젝트' 예정지는 '천연기념물 310호'인 수달이 서식하는 곳이며, 우리나라 철새의 70% 이상이 머물렀다 가는 곳이다. 또한 골프장은 농지로 환원이 불가능한 시설이다. 만약에(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지어놓은 골프장이 적자에 허덕이다가 부도라도 나게 되면 그 뒷감당은 오로지 지역민들의 몫이다. 결국 지역민들을 '두 번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나아가, 오직 땅 투기에만 입맛을 다시는 '도박꾼'들은 굴삭기를 앞세워 황토 언덕을 밀어버릴 궁리 했지, 사시사철 불어오는 바람의 힘을 아직 실감하지는 못한 듯하다. 해남은 바람이 무척이나 세게 부는 곳이다. 가을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이 한 겨울 삭풍으로 휘몰아치다가 늦봄 황사가 밀려올 때까지 좀처럼 그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

개발에 중독된 위정자들이 단 하루라도 이곳 황토 난장에 서서 맨몸으로 바람을 맞아 보았다면, 아마도 골프장 따위를 들먹이지는 않았을 터이다. 웬만한 몸집의 자동차마저 휘청거리게 하는 바람 속에 한 시간만 서 있어보라. 한껏 폼 잡고 골프채를 휘두른 순간, 맞바람에 밀린 골프공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제 이마에 떨어져, 딱 골프공만한 혹 하나 만들어버리는 장면이 상상될 것이다. 만약에 그런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아마도 자신의 사고능력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전남도에서 발표한 '35조원 투자'도 허풍이다. 전남도에서 제출한 기업도시유치신청서의 '부록3'에 따르면, 사업비 액수를 제시하면서 투자 계획을 밝힌 컨소시엄은 4개다. 이들은 총 2043만평을 요청하며 총 6조1162억원을 투자비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3000만평에 대한 투자비로 환산하면, 약 9조원에 조금 못 미치는 액수다. 전남도가 발표한 투자총액과는 20조원 이상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전남도는 차액 20조원을 어디서 어떻게 끌어온다는 것일까? 혹시라도 9조원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하여 국민 혈세 20조원으로 기반공사를 하는 무서운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식은 있으나 철학적 상상력은 빈약하기 그지없는 이 땅의 지배자들은 그들이 스스로 스승의 나라로 삼는 미국에서 제대로 배워야 할 것이다. 그들이 입만 열면 들먹이는 스승의 나라 미국에서 골프가 대중화될 수 있었던 것은, 광활하기만 하고 쓸모없는 사막 땅에 놀이공간을 만들어 싼 값에 즐길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또한 찬양해 마지않는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생태의 보고이자 식량 산지인 해안 농경지대가 아니라 내륙의 텅 빈 사막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전남도와 정부는 멀쩡한 농경지를 막무가내로 밀어버리고 소수 가진 자들의 공놀이 공간으로 만들려는 도박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진정으로, '낙후된' 호남 주민을 위한다면,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가지고, 철저히 타당성 조사를 한 뒤에 전문가와 주민들의 검증을 먼저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2006년 지방 선거 이후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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