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 장인의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장인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면서도 담담하셨다. 급히 준비해서 가겠다는 응답에 천천히 오라는 말씀만 남기시고 전화를 끊었다.
장인은 두 여인과 사셨다. 한 분은 어머니이고 한 분은 아내이다. 어머니는 93세이며 건강하지 못하셨고 치매도 앓고 계셨다. 아내 되시는 장모도 70세가 넘으셨고 역시 치매증상의 초기에 들어서 병과 싸우고 계셨다.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은 항상 장인을 걱정하면서도 역시 두 여자와 항상 사시는 분은 오직 장인 한 분이셨다. 두 여자, 어머니와 아내가 함께 있는 것은 분명 행복해야할 조건일 것이다. 그러나 행복할 수만은 없었다. 어머니와 아내인 두 여인은 비슷한 증세를 가진 환자였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절망스럽고 원망스러운 현실이었지만...
장인은 현실에 대해서 절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늘 묵묵하게 최선을 찾으려고 노력하셨고, 그 최선에 집중하셨다. 그러나 역시 70세가 넘으신 장인이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힘에 부치는 것이 누가봐도 뻔한 사실이었다.
물론 가족과 주위사람들이 염려하고 그 고통을 나누기는 했지만, 24시간, 일주일, 한 달, 일 년, 오 년은 아니었다. 그저 아주 잠시, 잠깐일 뿐이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오래 사신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시는 것이 장인을 도와준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인은 아무 말도 하시지 않았다. 그저 한결같이 현실에 집중하시면서 두 여인을 돌보셨다.
이제 한 여인이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두 여인 중 한 여인인 아내만이 장인의 곁에 있다. 누군가 장인에게 물었다. 한 마음 덜으셨다고, 장인은 말했다. 당신도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그 자리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장인은 한 여인을 보내신 것도 아니고, 병마와 싸우신 치매 환자를 보내신 것도 아닌,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내셨던 것이었다.
장례식도 끝났고 이제 장인은 한 여인과 사신다, 그 여인은 아내이며 환자이시다. 그러나 여전히 장인은 두 여인과 살고 계신다. 하늘나라에 계실 건강하신 어머니는 가슴에 건강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아내는 곁에.
장인어른 건강하세요, 장모님 건강하세요.
덧붙이는 글 | 치매와 싸우시는 환자분들과 곁에 계셔서 그 싸움에 협력하신는 모든분과 사랑하는 가족을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슬퍼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경의와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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