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22 13:28최종 업데이트 24.10.22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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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기자말]
누구나 노년에 대비해 이런 소망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내 집에서 무사히 죽을 수 있었으면.' 소망을 좀더 현실적으로 풀어 보면 어떨까. '어느 날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혹은 '병원에 내원해야 하는데 누구에게 차를 태워 달라고 말해야 할까?'

요 몇 년간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돌봄'에 관한 이야기는 차고 넘치지만, 당장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노년의 생활을 떠올려 보면 망연자실해진다. 돌봄으로 연대하는 방법은 고사하고 스스로 잘 살 수 있을지부터 의문스럽다.

내가 먼저 죽든 반려자가 세상을 뜨든 한 명이 홀로 살아간다고 예감하면, 늙어서도 이웃과 잘 돕고 사는 방법은 드라마틱하게 다가온다. 내 집에서 생활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잘 먹고 잘 자는 1인분의 생활법을 터득하는 게 먼저다 싶다.

사회적 의제로서의 돌봄은 까마득하게 느껴지고, 머리로만 잘 죽는 방법에 골몰하는 동안 친정어머니는 큰삼촌이 임종에 이르실 때까지 여러 계절을 간호에 매달리셨다.

시어머니는 하루에 두 집을 꼬박꼬박 들러 요양보호사로서의 생활을 이어 나가셨다. 두 어른은 내가 돌봄을 자기중심적인 필요조건으로 이해할 동안 오래 버틴 사람들의 생활과 풍파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돌봄의 프로'들이 기록한 땀내 나는 하루

<돌봄의 얼굴>봄날의책

돌봄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늘 희생당한다고 '착각'했다. 업무 외 부당한 요구인 김장을 담그고, 물건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도둑 취급을 받아도 할 일을 완수하고 퇴근했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탄식만 내뱉었다.

뿐더러 나 스스로 돌봄 노동을 신성하게 여겨야 한다는 모종의 압박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 일의 곡절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핑계였을지도 모르겠다.

요양보호사를 신뢰하는 선한 어르신과 요양보호사를 이용해 먹는 수상한 어르신 사이에서 고초를 감내하는 직업군. 일곱 요양보호사의 일기를 엮여 펴낸 <돌봄의 얼굴>은 그 무수한 편견을 호쾌하게 걷어내는 에세이다.

책에는 돌봄 현장의 '맥가이버'이자, 생을 버텨낸 타인들이 지금의 삶을 충분히 지속할 수 있도록 동력이 되어 주는 프로들의 하루가 상세하게 펼쳐진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희생의 아이콘이 아닙니다'.

일곱 요양보호사들의 일기 쓰기 프로젝트를 기획한 옥희살롱은 그간 나이 듦, 질병 등을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의제화해 온 생애문화연구소다. 이들 연구소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요양보호사를 위한 온라인 사진+글쓰기 워크숍'을 열었다. 고립이 일상화되던 시기, 요양보호사들이 노인들 곁에서 위기 속 일상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기록하기 위해서다.

옥희살롱은 요양보호사들과 이후 후속 모임을 열어 글쓰기를 계속했다. 요양보호사들은 SNS에 매일의 생활을 담아 짧은 글과 사진을 업로드했고, 서로의 글에 댓글을 다는 행보를 이어갔다. 그렇게 돌봄노동에 종사해온 요양보호사들의 하루가 모여 책으로 나왔다. <돌봄의 얼굴>은 꽤 두꺼워 보이지만, 생활이 묻어나오는 글들이라 한달음에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은근한 유머와 재미도 톡톡하다.

일곱 요양보호사들은 이력이 다르지만 '돌봄의 베테랑'이라는 점은 같다. 양로원과 요양원에서 15년 차 이사 일해온 김영희, 반려닭을 키우며 7년 차 요양보호사로 살아가는 68세 이분순 등 저자들은 대다수 60대 이상 여성이다.

그들이 쓴 일기에는 당시 글을 기록한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는데, 새벽이거나 자정을 넘겨 쓴 흔적이 상당하다. 그 안에는 사람과 사건과 말맛이 있는데, 특히 문장마다 '활력'이 있다.

"나이가 들면 치아가 안 좋아져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음식을 좋아할 것이다, 란 생각은 나의 편견이었다는 것을 10년 이상 어르신 돌봄을 하면서 알았다. 보통 어르신들이 선호하는 음식은 고기, 생선이다. (중략) 부드러운 것만 드실 것이란 생각은 우리의 편견이고, 오이지를 오도독오도독 씹어 맛나게 드시는 어르신을 보면 좋아하는 음식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돌봄의 얼굴> 정찬미 요양보호사의 글 중에서

어르신들의 유머와 사회생활

그들의 일기에서 어르신들은 납작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종일 누워 고립된 어른으로 획일화되지 않는다. 어떤 날엔 도움을 갈구하고, 어떤 날엔 생을 오래 살아낸 지혜를 발휘하거나 사려 깊은 면모를 보인다.

거기엔 슬픔만 자리하지 않는다.(자료사진)tiago on Unsplash

<돌봄의 얼굴>을 읽다 보면 서비스를 주고받는 요양보호사와 어르신 특유의 고통스러운 풍경이 걷히기 시작한다. 같이 밥 먹고 스트레칭을 하는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돌봄에 얽혀 때때로 반가워지고 마는 두 사람의 표정이 눈에 선해진다. 거기엔 슬픔만 자리하지 않는다.

특히 김홍남 요양보호사의 일기 중 한 토막이 유쾌했다. 어르신의 생활이 보통의 사람들이 맺는 일련의 사회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노년의 이미지를 생을 달관하거나 초월한 무엇으로만 여겨온 것인지, 일기를 읽다 가볍게 한 대 맞은 듯했다. 그의 문장을 살펴보면, 시설에 입소한 어르신들은 또 다른 곳에서 맺은 관계망 속을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회적인 존재들이었다. 세속적이고도 장난기 넘쳤다.

"며칠 전 여자 어르신 한 분이 입소를 하였다. 거실에서 담소 중이신 어르신들과 친해지기를 바라며 한 자리에 모셨다. 어디서 왔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자녀는 몇인지 서로 궁금한 사항을 물으며 약간의 기싸움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나이를 묻는데 입소 어르신이 '나는 멥살, 찹살, 보리살, 좁살 다 먹어봐서 몇 살인지 모르오' 하며 한 방으로 제압해버린다."
- <돌봄의 얼굴>의 김홍남 요양보호사의 일기 중에서

이 일기가 쓰인 페이지 상단에 자식 자랑을 주고받는 어르신들을 기록한 대목이 있는데, 싫지 않았다. 어쩌면 꺼내지 않으려 애써도 지독하게 꺼내고야마는 불멸의 대화거리가 자식 자랑일지도 모르니까. 그건 당신들 삶의 일부이기도 할 테니까.

호구조사하듯 자기소개가 이뤄지는 자리에서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게 만드는 재치를 엿본 요양보호사는 그렇게 어르신의 입담을 일기에 옮겨 놓았다. 독자는 그가 들려주는 돌봄시설에서의 하루들을 들여다보며 '들어가면 다신 못 나오는' 요양원이 나름의 생활양식과 위트, 인간군상이 한데 섞여 생동하는 삶터임을 알게 된다.

일곱 요양보호사들의 일기 끄트머리에는 세 연구자(김영옥, 이지은, 전희경)의 '동행 글'이 곁들여져 있다. 이 길잡이는 돌봄 노동에 헌신하는 요양보호사들을 둘러싼 사회를 총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돕는다. 구어체로 쓰였으며 그들의 생활을 해석의 도구로 환원하지 않았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연구자들은 그들의 일기를 세밀히 살피며 돌봄노동자로서의 자부, 각기 직업인으로서의 개성을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위에 언급한 요양보호사 김홍남의 일기에 관해 연구자 김영옥은 우리는 "요양원의 어떤 진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평범한 삶의 리듬이 약진하는 곳. 시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을 한 줌 벗기면 땀 흘리는 요양보호사와 역시 땀 흘리며 밥 먹고 신체를 단련하는 삶들이 거기에 있다. 요양원에도 분명히 존엄이 있다.

돌봄 상상력이 빈곤해지면 벌어지는 일

요양보호사는 이용자의 집에서 가사활동에 전념하는 직업군이 아니다. 신체 지원, 정서 지원, 인지 지원 등의 돌봄에 주력한다. 인지 지원은 어르신들의 인지 기능을 유지하고자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뇌 건강 향상을 돕는 훈련 활동을 일컫는다.픽사베이

연구자 이지은에 따르면,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한 65세 이상 노인 다섯 명 중 한 명은 자신이 살던 지역사회를 떠나 시설이라 불리는 곳에서 살아간다. 2022년 기준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 938만 명 중 약 11%에 달하는 101만 9130명이 혼자서는 생활이 어려워 장기요양보험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어르신이 사라진 자리의 '공허'에 붙들린 나머지, 그가 새로이 옮겨간 삶터에서 어떤 관계망을 갖고 사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우리는 돌봄이 극심히 필요한 사람이 시설로 들어갔을 때 그를 사회에서 '치워진 사람' 정도로 여기는 데 익숙해져버린 건 아닐까. 그렇게 정서가 궁핍해져 어른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처우를 떠올리는 상상력까지 극심하게 빈곤해진 게 아닐까.

연구자 김영옥은 "치매와 함께하는 노년의 시간이 변화와 새로운 만남과 발견, 기억이 만들어질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 시간"이라며 그 증거를 요양보호사들의 일기에서 선명히 만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자기 일의 효능을 믿는 요양보호사들 덕분에, 고독사에 대한 불안 대신 그들의 방문을 기다리며 하루를 채비하는 어르신들이 계신다.

시든 꽃도 젊은 꽃도 한데 키우자는 어르신의 말을 경청하는 오귀자, 초중고 검정고시를 치르려고 공부하는 시기에도 돌봄 현장에서 떠나지 않았던 김춘숙, 보호자들의 표정만 봐도 밤새 어찌 지내셨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데이케어 센터의 정찬미 등은 노년의 삶을 누구보다 두려워하지 않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나이 먹은 세대에게도 활기가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요양보호사들의 사명감에만 기댄 돌봄노동의 미래는 건강할 수 없다.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도입된 지 올해 16년이 됐지만, 요양보호사의 월급은 약 239만 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이다(한국노인복지중앙회). 2022년 서울시는 치매 인지 활동 가산비를 없애는 등 요양보호사들에게 제공했던 처우 개선비를 폐지하는 반인권적인 행보를 보였다.

자기 일의 효능을 믿는 요양보호사들.(자료사진)nci on Unsplash

돌봄이 시대적 과제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는 오늘, 우리는 일찍이 돌봄의 최전선을 지켜왔던 요양보호사를 과연 돌봄의 동심원 안에 포함해 왔을까.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도록 곁을 지키고, 일상언어를 잊지 않도록 대화를 통해 정서 지원을 하는 전문가들. 나의 생사를 지키는 낯선 은인들.

우리의 돌봄 논의가 로맨스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돌봄을 도맡아온 사람의 얼굴을 상상하는 연습을 같이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럼 나의 노년을 그리는 질문도 좀더 구체적일 수 있지 않을까. 질문을 다시 세워 본다.

'어제 나를 돌봐준 사람이 오늘 무사히 내 집에 도착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사람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돌봄의 얼굴 - 요양보호사들의 일기

김영희, 김춘숙, 김홍남, 박순화, 오귀자, 이분순, 정찬미, 김영옥, 이지은, 전희경 (지은이),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기획), 봄날의책(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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