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7 06:59최종 업데이트 24.06.2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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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한 지 2년 반이 지났지만 여전히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전문가넷에서 법의 집행 과정을 돌아보고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규제와 지원 정책을 살펴봅니다. 아울러 산재 사망과 사회적 참사를 줄이는 데 법이 미친 영향을 파악하여 중대재해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① 중대재해법 제대로 집행하고 있는가
② 중대재해 예방 위해 행정조직 개편하자
③ 획기적 감소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
④ 중대재해법은 산재사망 예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25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안전연구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 관계자들이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한 합동 감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지난 24일 오전 10시 31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소재 일차전지 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 연합뉴스

    
지난 24일 경기도 화성시에 소재한 일차전지 제조업체의 화재로 23명이 사망했다. 그들 대부분이 이주민이라서 더욱 안타깝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그 어느 때보다 안전보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큰 시기에 발생한 사고는 우리를 더욱 참담하고 답답하게 한다. 언제까지 이런 대형 참사를 겪어야 한단 말인가? 아인슈타인은 같은 것을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제정신이 아닌 것이라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 차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해야 하는가? 기본부터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산업재해 예방과 관련해 사업주가 지켜야 하는 법은 대표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과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있다. 산안법은 법에서 정한 유해위험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를 시시콜콜하게 지시적으로 규제하는(prescriptive rule) 방식이고, 중대재해법은 포괄적인 유해위험에 대해 경영책임자를 필두로 사업주가 위험성 평가를 하고 관리하도록 하는 목표지향적 성격의 규제(goal-based rule)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산안법은 규정 준수 방식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자가 일터에서 안전보건 조치 미비로 사망해도 관련 위법사항이 산안법 규정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면 사업주는 처벌받지 않는다. 산안법이 단순 규정 준수 중심 접근인 데 비해, 중대재해법은 사업주의 자율적 책임성 강화를 강조한다.

즉 중대재해법의 목적은 단지 산재 발생 책임을 물어 사업자를 사후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통해 사업자가 사전 예방 차원에서 산재 관련 위험을 평가하고 제거하는 조치를 책임성 있게 취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위험성 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을 내세운다. 영국 등 유럽 선진국도 유사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중대재해법과 산안법은 요구방식이 달라

그렇다면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서 과연 정부의 행동 방식도 바뀌었을까? 즉 수동적 규정 준수 지향에서 사업주의 자율적 책임성 증대를 독려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렇지 않다.

정부는 '위험성 평가 지침 해설서',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가이드북' 등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리고 산업안전 대진단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중대재해법 대비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산안법의 매뉴얼 준수 방식을 중대재해법에 동일하게 적용한다.

이는 중대재해법상 사업주 의무 이행이 산안법에서와 같이 법 문구 자체를 준수하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사업주에게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즉 사업주가 자율적 책임 아래 유해위험 관리에 집중하는 대신, 중대재해 발생 시 처벌을 회피할 수 있는 형식적 법 준수에 더 몰입하도록 한다. 이런 방식으로 법과 정책을 형식적·수동적으로 집행해서는 중대재해 원인이 되는 실질적인 유해위험성을 체계적으로 저감시키기 어렵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산재 예방의 핵심은 수동적 규정 준수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차원의 적극적인 '위험 관리'이다. 위험 관리 과정은 3단계이다. 첫째 유해요인을 파악하고(Identify Hazard), 둘째 위험성을 평가하고(Risk Assessment), 셋째 유해요인을 없애거나 안전한 수준으로 관리한다(Control the Risk).
 

지난 16일 전북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일하던 A(19)씨가 숨진 사고와 관련해 25일 오전 민주노총 전북본부와 A씨의 유족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산안법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산안법은 사업장에서 유해요인에 맞게 체계적으로 위험 관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지 못한다. 또한 단지 산안법을 준수하는지 감독하는 것만으로는 유해위험 관리 체계를 세우도록 할 수가 없다.

사업장에 심각한 재해가 발생하면 정부는 그 사업장에 대대적인 안전보건 감독을 실시해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거나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과태료를 부과한다. 몇 년 전 협착으로 청년이 참혹한 죽음을 당한 모 발전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해당 사업장에서는 거의 매년 한 건 이상 협착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고용노동부는 감독을 통해 방호 덮개 미설치를 수십 건씩 적발했고, 이후 수행한 보건 진단 명령에서도 지속적으로 기계방호 관련 위반을 수십 건씩 발견했다.

그런데도 문제를 개선하지 못한 이유는 산안법상 기계 방호에 대한 지침들이 기계적·기술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어서 협착사고 예방을 위해 사업주가 위험관리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해야 하는지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 크다. 결국 협착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기계방호의 절차 실행을 현장에 강제하지는 못하고 동일한 양상의 감독과 벌금 수준의 처벌만 되풀이한 것이다.

기계방호 감독은 유해요인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것의 실행 여부의 관점에서 현장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

미국의 예를 들어 보겠다. 미국 기계방호 프로그램의 목적은 기계의 작동 부위, 물림 지점, 회전 부위, 칩의 튐 또는 불꽃 등으로 인한 안전 사고의 위험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법을 근거로 방호의 요건과 방호의 방법(덮개, 울, 제한구역 등), 방호의 형태(고정식 방호, 인터록 방호, 근접센서형, 양수 조작 등)를 정의한다. 또한 사용 중인 장비의 안전장치 변경, 장비의 방호장치 제거 정비작업시 잠금과 태그, 방호장치 해제 후 원상복귀시키는 방법 등의 요건을 정의한다.

법 규정들을 토대로 회사에서는 내부 절차를 만든다. 구동 부위가 있는 모든 장비에 인터록 장치가 장착되도록 하고, 임의로 해지시에는 징계를 하며, 방호장치 결함으로 사고가 난 경우는 내부에서 특별한 검토를 거치도록 규정하는 등의 절차가 포함된다.

또한 사업장의 안전관리 체계에 따라 역할과 책임을 정하여, 부서장이 장비를 구입·설치·사용하는 과정에서 안전장치를 관리하고,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자체 점검을 하도록 한다. 안전관리자는 안전점검을 통해 이 절차가 준수되는지를 확인·평가하여 필요시 부서에 시정사항을 통보한다. 미국의 경우는 정부 감독을 통해 사업장에 이러한 기계방호 관리체계가 있는지 점검한다.

중대재해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사업장에서 유해요인별로 체계적으로 위험관리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법을 통해 가치를 확립하고 절차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유해요인별로 선진화된 위험관리 방법과 산업별 유해요인에 대한 축적된 지식정보를 효과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사업주가 현장 맞춤으로 최대한 유해위험 저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대재해 감소 위해 정부가 해야 할 5가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내 회의실에서 열린 노동부와 검찰청의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 협력 강화를 위한 간담회에 참석, 이원석 검찰총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제 중대재해의 획기적 감소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보자. 첫째, 중대재해법과 산안법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통합적으로 운영하여 실제적으로 산업재해 예방이 가능하도록 구조화해야 한다. 중대재해는 유해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때 예방할 수 있다.

중대재해법 제4조 1항 4호의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가 산안법과 연결되므로 구체적인 유해요인의 체계적인 위험관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산안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한 제4조 1항 1호의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은 안전보건이 실제적으로 경영의 일부가 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핵심내용은 비즈니스 과정에서 유해위험 관리의 절차가 존중될 수 있도록 방침을 정하고, 관계자 각각에게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며, 자원을 할당하고, 노동자의 참여를 통한 원활한 유해위험 의사소통으로 안전보건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산안법 개정을 통해 유해요인별로 실제적인 위험관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의 산안법은 일터 안전보건에 대해 사업주에게 일반의무(General duty)는 부여하지 않고, 지시적 규제 준수를 강제하고 있다. 이것은 사업주가 스스로 위험성 평가를 통해 자기규율을 하는 데 제약사항이 될 수 있다. 영국과 같이 규제의 내용을 위험관리 단계들로 재구성하고, 사업주가 사업장의 유해위험성에 맞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

셋째, 산재 예방 정책과 감독 방법 전체를 재정비해야 한다. 안전보건 실현 체계에는 두 가지 구성 요소가 있다. 하나는 국가에 의한 규제 및 감독, 다른 하나는 산업 내 자기규율을 통한 자체 노력이다. 이 두 가지 요소 간의 관계, 균형 및 상호 작용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와 정책을 통한 국가의 역할과 구체적 실행에 있어서 사업장의 역할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산재예방 정책과 감독 방법은 매뉴얼을 제공하고 그 열거된 항목의 실행을 확인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넷째 산업안전보건본부의 정책 실행을 위한 인적 자원을 계발하고, 기술적 개발과 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국책 연구소를 만들어야 한다. 일터 안전보건은 유해요인과 위험관리에 대한 기술적 요소뿐 아니라, 노사관계 및 사업 경영, 사회적 가치가 연결되어 역할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 각 분야들이 '일터의 생명, 안전 및 건강'이라는 가치에 초점을 두고 기여할 수 있도록 안전보건 분야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연구를 통해 정책을 지원해야 한다. 그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국책 연구소가 필요하다.

다섯째, 산재 예방사업 예산을 자기규율 예방체계에 근거해 재설계해야 한다. 2023년 산재 예방사업비는 총 1조 1900억 원인데 재정지원 사업이 약 72.6%, 기술지원이 20%, 교육과 기술이 4%, 연구개발과 정보시스템 운영이 1%를 차지했다.

이것은 정부가 새롭게 표방한 위험성 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구습의 연장선상에 있는 배분이다. 정부는 사업장의 관점에서 유해위험에 관한 정보를 쉽게 습득하고 재구조화하여 실행할 수 있는 인프라를 어떻게 조성할 수 있을지를 염두에 두고 예산을 재편성해야 한다.

일터에서 발생하는 생명·안전·건강의 문제는 직업생활을 하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이다. 정부는 일터 생명·안전·보건이 어떻게 현장에서 잘 만들어질 수 있는지 더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 일터 생명·안전·건강의 화두는 한국 사회에서 지속될 것이며, 정부가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사회가 계속 지켜볼 것이다. 정부는 이점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박미진 / 원진재단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박미진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박미진 원진재단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 기업 본사 연수 후 한국 공장에 안전보건 경영시스템과 안전보건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0여 년 동안 현장을 두루 거치면서 안전보건 노동인권의 가치를 사업장에 실행할 수 있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이후 서울대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관련 연구로 전업 연구자(연구교수)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유해위험관리 요구 방식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힘든 비논리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현장 작동성 있는 법으로 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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