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0 17:50최종 업데이트 24.06.2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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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보고서 2024> 표지 ⓒ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매년 6월이면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서 지난 일 년간의 언론 상황을 담은 <디지털 뉴스 보고서>를 발간합니다. 2012년 시작된 이 보고서는 조사 대상 국가의 뉴스 신뢰도 조사 결과와 매체별 신뢰도 수준이 포함되어 있어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이 보고서 제작의 공식 협력기관이라 보고서가 나오면 몇 달 안에 번역하고 한국 관련 내용을 추가해 한국판을 따로 발간합니다.

하지만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올해는 언론재단이 한국판을 발간하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언론사별 신뢰도 조사 결과에 문제가 있다는 게 이유입니다. 보도된 대로 한국판이 발간되지 않는다면 언론재단이 2016년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한국판 발간과 관련된 논란은 작년에도 있었습니다. 언론재단이 한국판을 발간하면서 원래 보고서에 있던 한국의 매체별 신뢰도 조사 결과를 빼 버린 겁니다. 당시 영문판에 실린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 15개 매체 가운데 MBC가 신뢰도 1위를 차지했고 <조선일보>가 꼴찌를 차지했는데, 보고서에서 이 내용만 빠졌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판에서 다른 나라의 매체 신뢰도는 모두 볼 수 있는데, 한국 매체의 신뢰도는 볼 수 없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했습니다.

2022년 한국판 발간사를 보면 당시 표완수 언론재단 이사장이 이 보고서를 두고 "세계 주요 국가들의 뉴스 이용 현황과 인식을 분석하고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조사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그의 글을 조금 더 보겠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016년부터 공식 협력 기관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사에 참여한 이래 매년 영문 보고서와는 별도로 한국의 뉴스 생태계와 이용자에 초점을 맞춰 독자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펴내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학술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언론 보도를 통해 시민의 미디어 리터러시 함양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언론재단이 작성에 직접 참여하고, 그 결과물이 학술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고 말했던 보고서의 한국판을 매체별 신뢰도 조사 결과 때문에 발간하지 않겠다는 건 언론재단의 직무 유기에 가깝습니다. 언론재단의 인력과 시간을 들여 한국의 언론 상황에 대해 조사하고 정리한 자료가 영어로 된 보고서에는 실리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제대로 볼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이 된 겁니다.

'디지털뉴스 보고서'에 담긴 내용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온라인 뉴스를 소비하고 있지만 페이스북은 점점 그 비중이 줄고 유튜브와 틱톡의 상승세가 가파릅니다. ⓒ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뉴스 소비가 소셜네트워크로 대표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지만, 페이스북의 사용이 전체적으로 줄고 그 자리를 유튜브나 틱톡 같은 다른 앱들이 빠르게 나눠 가지고 있습니다. 뉴스가 짧은 규격의 비디오로 플랫폼에서 소비되기 때문에 정작 콘텐츠 제작자의 수익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유튜브나 틱톡에서 전통적인 뉴스 제작사나 언론인보다 평론가나 유명인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입니다.

가짜뉴스 문제도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만나는 뉴스와 관련하여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에 대한 우려가 점점 높아져, 설문 대상의 10명 중 약 6명(59%)이 가짜 뉴스에 대해 우려한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올해 선거가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81%)과 미국(72%)에서 이런 우려가 높고, 플랫폼으로 구분하자면 틱톡과 엑스(옛 트위터)가 가장 높습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가짜 뉴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고 특히 선거를 앞둔 일부 국가에서는 그 비중이 상당히 높습니다. ⓒ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뉴스에 대한 신뢰도(40%)는 지난 1년 동안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지만, 뉴스에 대한 관심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동시에 선택적 뉴스 회피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뉴스가 너무 많기도 하고 해석이 어려운 것도 많아 10명 중 4명(39%)은 뉴스를 가끔 또는 자주 회피한다고 답했습니다. 상위 20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온라인 뉴스를 보면서 비용을 지불한 적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7%였습니다.

이 밖에도 연령별, 성별 관심 뉴스가 어떻게 다른지, 지역별로 뉴스를 찾아가는 도구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좌파와 우파의 뉴스에 대한 신뢰도 차이 등 다양한 조사 결과가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고서에 나타난 한국 언론의 현주소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서 발표된 나라별 뉴스 신뢰도. 한국은 31%로 공동 40위입니다. ⓒ 이봉렬

 
보고서에는 개별 국가의 언론 상황도 함께 싣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 언론에 대한 상황도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조사 대상 47개 국가의 뉴스 신뢰도를 조사해 발표했는데, 한국은 31%로 프랑스, 모로코, 체코와 공동 40위입니다. 한국보다 점수가 낮은 나라는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그리스, 헝가리입니다.

한국의 뉴스 소비자들은 79%가 온라인(소셜 미디어 포함)을 통해 뉴스를 만나고 있었고, TV 방송을 이용한다는 대답은 62%였습니다. 신문은 16%로 2016년에 비해 12% 포인트나 줄었습니다.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등 기성매체 가운데는 KBS, MBC, YTN을 가장 많이 이용했고, 방송이 신문을 압도하는 모습입니다. 온라인에서는 네이버를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는 비율이 57%를 넘었고, KBS, 다음(Daum), MBC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소셜 미디어로 뉴스를 본다는 비중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44%였는데, 이때 사용하는 플랫폼을 조사했더니 유튜브가 51%로 절반을 넘겼고, 그다음이 카카오톡(19%), 인스타그램(12%), 페이스북(9%) 순이었습니다. 참고로 일본은 유튜브(28%)가 1위, 라인(19%)이 2위였는데 라인은 전년도에 비해 6%가 증가한 수치였습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보고서>에서 밝힌 한국 주요 매체별 신뢰도. 왼쪽 파란색은 신뢰하는 정도, 오른쪽 회색은 불신하는 정도를 나타냅니다. ⓒ 이봉렬

 
언론재단이 문제로 삼은 매체별 신뢰도를 볼까요? MBC가 57%를 받아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조선일보>는 35%를 받아 역시 2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작년에 신뢰도가 55%였던 KBS는 올해 51%로 조사 대상 매체 가운데 하락 폭이 가장 컸습니다. 전체적으로 방송사가 신문사보다 신뢰도가 높은데, 신문사 중에는 <한겨레>가 가장 높았습니다.

신뢰하지 않는 매체 1위 <조선일보>

보고서는 신뢰하지 않는 매체를 묻고 결과를 따로 실었습니다. 조사 결과 1위는 39%를 받은 <조선일보>이고, 그 뒤를 37%를 받은 TV조선이 따르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신뢰하지 않는 매체로 꼽힌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 질문을 하기 시작한 2020년 이후 <조선일보>가 네 번이나 1위를 차지했고, TV조선이 한 번 1위를 차지했습니다. 신뢰하는 매체만 물었던 2018년과 2019년은 <조선일보>의 신뢰도가 조사 대상 중 꼴찌였습니다.
 

지난 5년간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보고서>에 나온 신뢰하지 않는 뉴스 매체를 표로 정리했습니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이 1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 이봉렬

 
<조선일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율 39%는 한국 매체 15개 가운데 가장 높을 뿐 아니라 보고서에 실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매체 165개 중에서도 가장 높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특정 매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변의 비율은 평균 15.35%에 불과합니다. 아프리카의 매체 60개를 더해서 다 살펴봐도 <조선일보>의 39%를 넘는 경우는 없습니다.

조사 대상을 전 세계 47개 국가, 750개 매체로 확대해 보면 <조선일보> 보다 더 불신한다는 매체가 나타납니다. 모두 32개의 매체가 <조선일보>를 신뢰하지 않는 비율 39%를 넘겼습니다. 영국의 타블로이드 주간지인 <더 선>이 63%로 가장 신뢰하기 어려운 매체로 꼽혔고, 국가별로 보면 뉴스 신뢰도 꼴찌를 기록한 헝가리에서 여섯 개나 되는 매체가 <조선일보> 보다 신뢰도가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독자들이 <조선일보> 계열의 매체를 신뢰하지 않는 건 새로운 뉴스가 아닙니다. 올해 매체 신뢰도에서 달라진 건 두 가지입니다. 신뢰하는 매체를 묻는 말에 2등에서 5등 사이를 오가던 MBC가 지난해와 올해 1등으로 올라선 것과, KBS의 신뢰도가 올해 4%포인트 떨어져 공중파 중에서 꼴찌, 전체 매체 가운데서도 연합뉴스TV와 함께 공동 5위를 한 것입니다.

보고서가 정리한 한국의 언론 상황
 

보고서에 담긴 한국의 언론상황. 영어로는 발간이 됐는데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언론재단이 한국판은 못 만들겠다고 합니다. ⓒ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언론재단이 한국판을 발간하기를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언론재단의 두 연구원이 보고서에 정리해 놓은 한국의 언론 상황을 소개하겠습니다.

경기 침체로 인해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광고주들이 광고비를 30% 이상 삭감하면서 많은 언론사가 영업 적자를 기록했고, 흑자를 기록한 언론사 역시 실적이 나빠졌습니다. 그에 따라 일부 방송사는 인력을 줄이고 제작비를 삭감하기도 했습니다.

신문은 유료 회원제 등 광고를 넘어서는 온라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데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뉴스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이 커졌고, 온라인 포털에서도 뉴스 소비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20~40세 연령층의 뉴스 소비는 모든 미디어 플랫폼에서 감소했습니다.

한국 언론은 콘텐츠 제작에 AI를 활용하는 한편, 빅테크 기업들이 AI를 훈련하는 과정에서 언론 콘텐츠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뉴스 저작권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언론재단과 미디어 관련 협회가 법적 문제 논의를 위한 기구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한편, 한국 언론 매체의 혁신 수준은 여전히 정체되어 있습니다. 디지털 전환이 더딘 가운데, 언론인들은 끊임없는 실험과 노동 관행의 변화로 인해 더 많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보고서가 주목한 2023년 한국 언론의 모습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한국 언론은 지난해 고 이선균 배우에 대해 선정적인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많은 언론이 배우의 사생활과 수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대화까지 공개했습니다. 대중 매체들이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 집중하면서 이 같은 질 낮고 선정적인 뉴스가 많아졌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2000여 명의 예술인과 문화계 인사들은 사실 확인이 안 된 의혹을 보도하고, 공익과 상관없는 연예인의 사생활을 보도하는 선정주의적 언론 문화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보고서>는 세계 언론의 생생한 모습과 함께 한국 언론이 처한 상황과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해 많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언론재단은 2016년부터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공식 협력 기관으로 보고서 작성에 참여해 왔으며, 이후 매년 한국판을 발간해 왔습니다. 올해 발간된 영문 보고서에도 언론재단 연구원이 참여해 작성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언론과 관련된 학술 연구를 위한 자료로 유용하게 쓰일 보고서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한국판 발간 없이 이대로 묻혀서는 안 될 것입니다.

MBC의 신뢰도 1위, <조선일보>의 신뢰도 꼴찌, KBS의 신뢰도 하락. 이 셋 중에서 어떤 것이 언론재단으로 하여금 한국판 발간을 하지 못하게 한 걸까요? 언론재단 김효재 이사장이 <조선일보> 논설위원 출신이고, 박민 비상임이사가 KBS 사장이라는 게 한국판 발간을 포기하게 만든 이유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언론재단에 <디지털 뉴스 보고서>의 한국판 발간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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