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9월 12일 자 <경향신문> ‘잠망경'은 추석 연휴 고기집에서 일어나는 새치기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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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치기는 실상은 시대상을 반영한 문화다. 우리 조상들이 오랜 옛적부터 항상 이랬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 땅에서 공동체의 질서가 작동한 역사는 매우 길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민족이 기본적인 줄서기 문화도 정착시키지 못했을 리는 없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검색창에 '새치기'를 입력하면, 20세기 전반의 주요 일간지에도 새치기가 이따금 언급되긴 했지만, 언론보도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된 것은 1945년 이후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해방 이후에 유행한 단어였다.
2009년에 <한국언론학보> 제53권 제5호에 실린 주창윤 서울여대 교수의 논문 '해방공간, 유행어로 표출된 정서의 담론'에 따르면, 1949년에 <학풍> 제14호에 실린 김기림의 '새말의 이모저모'는 새치기라는 단어가 1945년부터 1949년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준다. 미군정에서 이승만 정권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유행을 탔던 것이다.
이 시기는 1945년 8·15 해방 이후의 혼란 속에서 해외 한국인들이 대거 귀국하는 때였다. 이 같은 대규모 인구유입 속에서 미군정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무질서가 심화되고 있었다. 미군정을 뒤이은 이승만 정권 때도 마찬가지다. 질서가 무너지고 공권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회주의가 팽배하고 이는 사람들 간의 상호불신을 가중시켰다. 이것이 새치기 문화의 토양이 됐다.
위 논문은 새치기라는 단어가 사회지도층보다는 일반 대중에게서 나왔다며, "불신·부정·부조리"의 만연으로 인해 대중이 "이기주의, 사회현실에 대한 냉소주의"를 절감하는 가운데 이 단어가 유행했다고 말한다. 기회주의에 편승해 불공정하게 이익을 챙기는 집단과 그들의 행위에 대한 대중의 저항감이 이 단어를 유행시켰던 것이다.
미군정기의 혼란은 한국의 전체 역사에서 보면 일시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해방 직후에 갑자기 급증한 새치기 현상도 일시적 현상에 그쳤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것은 1940년대를 지나고 1950년대를 거치면서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고착됐다. 잠깐 스치고 지나갔을 수도 있는 무질서가 그 뒤 수십 년간 한국 사회에 지속적 영향을 준 것이다. 이를테면, 새치기는 무질서의 질서화였다.
그로 인해 1950년대 한국인들은 종래에는 볼 수 없었던 새치기 문화를 추석 같은 때도 경험해야 했다. 추석에 쓸 식재료를 구입하는 현장에서도 새치기라는 신종 풍경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추석 다음날 보도된 1954년 9월 12일 자 <경향신문> '잠망경'은 추석 직전의 서울 시장 풍경을 전하면서 "돈암시장 내에 있는 푸주간 앞에는 밤중까지 고기 한 칼을 사고자 열을 지어 섯는데, 새치기 하는 친구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나종엔 치고 꼬집고 욕설을 퍼붓고 수라장화하였었다고"한 뒤 이렇게 전했다.
"새치기 때문에 고기를 못 산 안낙네나 욕을 주어먹고 매를 맞아가며 고기를 사려던 안낙네나 즐거운 명절이 못 되었을 테니, 새치기라는 놈은 이렇게도 못쓸놈! 어느 때 어디서나 속히 없애야 할 일!"
"욕을 주어먹고 매를 맞아가며" 새치기를 한 "안낙네"들이 예전부터 항상 새치기를 했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해방 이후 몇 년 새에 무질서와 기회주의와 상호불신이 팽배해지는 속에서 그들도 그렇게 변했던 것이다.
새치기 때문에 명절 고기를 못 샀다는 불평은 그나마 호강스러운 불평이었다. 남의 것을 염치없이 가로채는 새치기 문화로 인해 추석 자체를 쇨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이 팍팍해졌다는 불평도 있었다. 소설가 김송(金松)의 기고문으로 생각되는 1956년 9월 21일 자 <동아일보> 4면의 김송 기고문은 "내가 사는 이웃만 하더라도 추석을 명절답게 마지하는 집이 없다"며 이렇게 말한다.
"떡이고 고기 작만을 하는 집이 없는 것 같다. 있다면 한두 집. 그것도 부자연한 새치기 돈벌이꾼에 지나지 못한다. 정당하고 선량한 사람들은 고작해야 보리밥이나 면할 정도다."
남의 순서를 가로채는 일뿐 아니라 남의 이익을 가로채는 일도 새치기로 표현한 이 글은 새치기에 대한 불만감이 어느 정도나 팽배해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3년간의 미군정 직후에 출범한 이승만 정부가 12년간 집권하는 동안에 질서를 올바로 바로잡고 공정하고 신뢰할 만한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했다면, 새치기 현상은 잠시 스쳐가는 바람 같은 존재가 됐을 수도 있다. 그러지 않았기에, 줄서기에서 나타난 새치기 문화가 여러 방면으로 확산되면서 위와 같은 불평이 나오게 됐던 것이다.
"이승만은 민족의 도덕적 황폐화를 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