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8일 당시 이지연 통계청 인구총조사과장이 정부세종청사 1공용브리핑실에서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전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옛날 사람들은 나라님의 존재를 아득히 먼 별세계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금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등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 왕이 얼마나 부자인지도 잘 몰랐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엄청난 부자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나라님은 달랐다. 전국적으로 호구는 얼마나 되는지, 장정은 얼마나 되는지, 노비와 머슴(자유민)은 얼마나 되는지, 각 호구의 토지는 얼마나 되는지, 수확량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을 세밀히 살폈다. 세금을 거두고 병력을 징발해 왕조의 간판을 유지해야 하므로, 이런 것들을 항상 체크해야 했다.
방식과 내용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런 조사는 오늘날에도 시행된다. 오늘날에는 국가가 궁금해하는 항목이 훨씬 많아졌다. 전통적인 항목들에 더해, 학교는 어디까지 다녔는지, 결혼은 했는지, 어떤 주택에 사는지, 방은 몇 개나 되는지까지도 세밀하게 캐묻는다.
나라님이 백성들에 대해 더욱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쪽으로 국민과 국가의 관계는 흘러가고 있다. 개인주의 추세에 따라 개인들이 감추는 것이 많아질수록, 국가는 5년 혹은 10년마다 더욱더 많은 항목을 적은 질문지를 꺼내놓는다.
군사 경험, 징용 경험 기재하게 한 인구조사
1948년에 정부를 수립한 대한민국도 국민들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했다. 그런 욕망이 1949년 1월 27일의 인구조사법 제정과 5월 1일의 인구조사로 이어졌다.
이날 <동아일보> 사설은 "금일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최초의 인구조사가 전국에 걸쳐 일제히 실시되는 날"이라고 한 뒤 95.5%의 투표율을 기록한 전년도 5·10 총선을 거론하면서 "민국에 생(生)을 향유한 자는 수모(誰某)를 막론하고 5·10선거에 참가하든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누구를 막론하고 참여할 것이 독려된 이 인구조사에는 '나라님'의 관심사도 당연히 반영됐지만, '백성'들의 요구 사항도 특별히 투영됐다. 인구조사법이 제정된 뒤인 그해 2월 24일 자 <동아일보>는 인구조사에서 다룰 항목을 이렇게 예고했다.
(1) 성명, (2) 가구(기사에는 '국가'로 오기)에 있어서의 지위, (3) 생년월일, (4) 성별, (5) 배우 관계, (6) 직업[부(附) 특수기능], (7) 학력, (8) 해방 당시 거주지, (9) 본적, (10) 군사 경험, (11) 징용 경험.
가구 내의 지위가 가구주인지 장남인지, 결혼 관계는 어떠한지, 직업은 어떠한지, 직업과 별도로 특수 기술은 있는지 등등을 묻는 항목과 더불어 "해방 당시 거주지"도 기입하도록 했다. 8·15 뒤에 귀국한 인구의 비중이 높았던 당시의 현실을 반영한다.
국민들의 요구 사항이 특별히 반영됐다고 말한 것은 10번과 11번 때문이다. 두 항목은 당시의 정부도 알아야 했던 것이지만,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특별히 알리고 싶어 했던 사항이다. 어느 나라 군대에 언제 있었고 계급과 병과는 무엇이었는지와 함께 강제징용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한 기간을 조사지에 기입하도록 했다. 대일 배상요구에 필수적인 강제징병과 강제징용 피해에 관한 항목을 적어 내도록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