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06 11:08최종 업데이트 24.06.0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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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 출산율이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지며 저출산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 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한 관계자가 신생아를 돌보고 있다. ⓒ 연합뉴스

 
저출생을 둘러싼 또 하나의 국책 연구기관 보고서가 입길에 올랐다. 문제의 보고서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한 '2024 재정포럼 5월호'에 실린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이다. 보고서는 문제는 단순 저출'산'이 아니라 '경제 전체를 부양할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문제의 구절은 저출생 해결을 위한 결혼 지원 정책과 대비되는 '교제성공 지원 정책' 가운데 예시로 소개된다. "예컨대 남성의 발달 정도가 여성의 발달 정도보다 느리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령에 있어 여성들은 1년 조기 입학시키는 것도 향후 적령기 남녀가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기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보고서를 쓴 장우현 선임연구위원은 현 정부 초기에 추진했다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철회한 '만 5세 조기 입학'에 대해서도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분명히 현재의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유효한 검토 대상 수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제기되어 큰 호응을 받지 못하였고", "정책 자체가 희화화되고 다시 논의될 수 없을 수준의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은 큰 아쉬움이 있다"라고 썼다.


보고서의 잘못이 있다면 이 지점이다. '만 5세 입학' 정책은 희화화된 것이 아니다. '희화화'는 사전적 정의로 '사건이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거나 풍자됨'을 뜻한다. 당시의 분위기는 정책을 향한 분노가 견디다 못해 우스개로 승화된 것에 가까웠다. 거리로 뛰쳐나온 반대 집회의 학부모나 교사들은 의도를 가지고 정책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할 기력이나 정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장 연구위원이 언급한 '여성 1년 조기 입학' 또한 마찬가지 맥락이다. 여기서는 남녀 간에 교제성공을 지원하겠다며 이미 극심한 반발로 철회한 정책에다가 '여자만 먼저'라는 차별적 발상까지 덧붙였다. 실패한 정책의 희생양으로 다시금 언급된 여성이나, 발달이 더디다는 평가에 직면한 남성이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이는 의도적인 희화화가 아니라, 국가주의에 편승해 민심을 도통 읽지 않은 정책이기에 이토록 뜨거운 비난의 화살이, 우스개가 섞인 비아냥과 함께 날아드는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남자야

시의원이 나서서 여성의 괄약근을 걱정하고, 국책 연구기관이 나서 여성들의 '고스펙'이 문제라며 이를 낮추면 초혼 연령을 앞당기고 덩달아 배우자 눈높이도 낮출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이쯤하면 정말로 애 안 낳는 여성들을 두고 온 나라가 근심 어린 걱정을 나누는 수준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번지수가 틀렸다. 문제는 한국 여성이 아니라 한국 남성들에 있다.

캐나다의 여론 조사 기관의 CEO와 신문 저술가인 저자들이 전 세계를 누비며 인구 감소의 현실을 담은 책 <텅 빈 지구>는 한국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이유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열악한 노인 빈곤율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정년을 늘렸고, 이로 인한 적체 현상으로 밀레니얼 세대는 'N포'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 거기에 더해 한국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한국 남성들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한국 남성의 가사 노동 시간이 가장 적을 만치, 한국에서 가사의 의무는 오롯이 여성 몫이다.

책은 출생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남성 중심주의'를 언급하며, 해당 부분을 이렇게 끝맺는다. '여성들은 교육받는 것을 반긴다. 그들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 사회는 여성들이 가정을 돌보길 바란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으면 양육을 위해 직장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이들 나라의 여성들이 아이를 덜 낳고 싶어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누가 그들을 탓할 수 있는가?'(122쪽) 캐나다 남성들이 적어 내려간, 한국 여성들이 지겹도록 말하지만 한국 사회가 새겨듣지 않는 바로 그 얘기다.

사람은 행복감으로 아이를 낳는다
 

규진씨와 세연씨는 '국내 첫 임신 레즈비언 부부'이자 '국내 첫 출산 레즈비언 부부'다. ⓒ 연합뉴스

 
유리 천장, 성별 임금격차, 경력 단절 등 여성들만 차별적으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지난 기사에서도 언급했다. 이들은 여성들의 출산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들이다. 그렇다면 더욱 적극적 차원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아이를 낳는 것일까. 어떤 마음이 있어야 아이를 '낳을 결심'에까지 이르는 것일까.

힌트는 지난해 8월, 출산 소식을 알려온 레즈비언 부부에게서 얻을 수 있다. 국내 최초로 레즈비언 부부로서 아기를 출산한 김규진‧김세연 씨. 규진씨는 임신 당시 <한겨레> 인터뷰에서 임신을 결정하는 데 가장 지대했던 요인으로 '행복감'을 꼽았다. "불행은 내 대에서 끊어야 한다"고 수많은 비출산인처럼 생각했다던 그는 자신이 선택한 가정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하니, 자녀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아이를 낳을 결심이란 이렇듯 지금의 내가 행복하고 이 행복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믿음에서 온다. 행복을 결정짓는 중대한 요소 중의 하나는 가족이다. 무릇 아이도 가족이라는 토양 위에서 자란다. 그러나 한국에서 법이 포괄하는 가족의 범위는 혼인‧혈연‧입양이 전부다. 김씨 부부처럼 동성의 부부나 혹은 결혼은 원치 않으나 아이는 갖고 싶은 동성‧이성의 커플 또는 친구, 같이 살지는 않더라도 서로를 돌보는 느슨한 네트워크 등은 현존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여성가족부는 2021년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을 수립하며 법률혼‧혼인 중심으로 한정된 가족 개념을 넘어 다양한 가족 구성을 인정하고,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금지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여가부는 가족의 법적 정의를 삭제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원안 유지'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는 실존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법이 따라잡지 못하는 행태다. 비친족 가구는 2022년에 50만 가구를 돌파했으며, 가구원 수만 109만 명에 이른다. 그새 사람들의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지난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저출산 인식 조사'를 보면 '사실혼 등 결혼제도의 다양한 형태를 인정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8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성별에 상관없는 프랑스의 등록 동거혼 제도인 팍스(PACS‧시민연대계약)의 도입이 저출생 문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도 이들 중 76.8%에 달했다.

실제 프랑스는 팍스 도입 후 출산율, 비혼 출산율이 동시에 제고됐다. 프랑스에서 팍스를 맺은 커플만 2022년 한 해 역대 최대치인 20만 9827쌍이었으며, 같은 해 전체 출산율은 1.80명이었다. 비혼 출산율은 2020년 기준 62.2%나 된다. 같은 해 기준 한국은 2.5%에 그쳤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부터 달라

지난해 7월에 열린 김씨 부부 베이비 샤워에 달린 제목은 '대한민국 저출생 대책 간담회'였다. 그들 부부의 출산은 "레즈비언은 저출생 문제에 도움이 안 된다"던 항간의 통념을 날려버린 일이었다.

아이를 낳아 키울 가족의 형태에서부터 제약을 두면서, 아이는 바라는 심보가 현 정부의 '스탠스'다. 정확히 정부가 바라는 것은 '인구'이자 '노동력'이겠지만, 개인에겐 '가족'일 생명이다. 출산율을 높이고 싶으면, 앞서 행복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부터 줘야 한다. 사람은 전적으로 '행복감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참고 자료: 대럴 브리커, 존 이빗슨 지음, 김병순 옮김, 2019, <텅 빈 지구>,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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