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클라우드>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의 대표작인 <큐어>(1997)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서 자주 회자되는 것은 연출과 미장센에 대한 부분이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섬뜩하게 만드는 것은 극 중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이들이 너무나 평범하고 보통인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상의 안전을 단번에 공포로 치환시켜 버리는 그의 감각은 우리 무의식 속의 불안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동일한 맥락에서 그의 신작 <클라우드>는 영화 <큐어>와 마주할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평범한 인물을 극의 중심에 놓고 있다는 것과 범인의 정체를 쉽게 특정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역시 일상의 공포를 건드린다는 점에서다.
영화 <클라우드> 속 요시이(스다 마사키 분)는 Ratel(라텔)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는 리셀러(Re-seller)다. 상품을 헐값에 구매해 그럴듯하게 포장한 다음 인터넷에 재판매하는 방법으로 차익으로 수익을 구현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수익뿐이다. 상품의 진품 여부나 상태와 같은 구매자에게 중요한 지표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오히려 구매자가 그 사실을 알아버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팔아버리는 것이 요령이라고까지 믿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익 실현은커녕 재판매를 위해 구입해 온 제품들의 폐기 비용까지 자신이 모두 떠안아야만 한다.
문제는 재판매하는 과정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상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는 최저의 가격만을 요구한다. 상대의 손익이나 상황은 안중에도 없다.
영화의 첫 신, 토노야마 상에게 의료기 30대를 헐값에 판매하도록 강요하는 요시이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그는 판매가보다 원가가 낮은 점을 이용해 합리적으로 가격을 낮춘 것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특허권과 디자인비 등의 생산비 외의 비용을 고려하면 제품의 상품화에는 원가의 몇 배나 되는 비용이 수반된다. 이렇게 헐값에 받아온 상품이 6배가 넘는 가격에 되팔리는 동안 그 아래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한다.
02.
"인생을 바꾸는 거야. 돈도 더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될 거야."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리셀러 활동을 전업으로 시작하기 위해 호숫가 근처로 거처를 옮기면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그를 향해 있는 명백한 적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위협이 점차 수위를 높여가는 과정에서 주변 상황 및 인물에 대한 불신과 불안의 감정을 인물은 또한 경험하게 된다.
외부로부터의 명확한 위협이지만 영화는 의도적으로 이 불안이 내부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직원 사노를 온전히 믿을 수 없도록 위치시킨다거나 제일 가까운 존재였어야 할 여자 친구 아키코(후루카와 코토네 분)의 감정을 자극해 이탈시키는 방법을 통해서다.
요시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확인해 가는 과정 또한 인상적이다. 스치듯 지나가는 좋지 않은 예감에서 출발하는 적대심을 가진 존재에 대한 감각은 벽(문) 너머의 존재로, 다시 자동차라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동력을 가진 조금 더 명확한 존재로, 마지막에는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는 존재로 번져나간다.
점진적으로 그 대상이 선명해지도록 유도되는 이 설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이 실질적인 공포로 실현되는 과정임과 동시에 인터넷과 클라우드 서비스라는 가상 공간의 존재가 물리적 존재로 전환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