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기지 오염사고지역 지도2017년 시민단체들이 미국 정보자유법을 통해 입수한 정보로 만든 ‘용산 미군기지 오염 사고지역’ 지도
김은희
SOFA 합의의사록 제3조 2항은 2001년에 만들어졌다. 이 조항은 '미합중국 정부는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대한민국의 환경 법령과 기준을 존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은 이 조항을 두고 한국 환경법을 '존중'하지만 '준수'할 의무는 없다고 해석한다.
"존중한다? 존중하면 따라야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잖아요. 정부가 자주적 입장에서 어떤 의지를 갖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무기가 엄청 많고 GDP가 높아야 힘 있는 나라인가요? 아니에요. 자기 국민들의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를 대변하는 나라가 힘 있는 나라죠."
지금껏 정부가 주한미군기지 환경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로 내놓았던 단골 낱말들이 있다. '외교'와 '국익'. 시민단체들은 용산미군기지의 환경정화 비용이 총 1조 원이 넘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지난 과정들을 돌이켜보면 이 비용은 우리 정부의 예산으로 지출할 공산이 크며, 그 예산은 분명 한국 납세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말해왔던 국익, 그 국가의 이익은 누구를 위한 이익인가.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자신의 저서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창비, 2021년)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미국 무기의 최대 수입국 중 하나라는 점에서 미국이 쉽게 버리기 어려운 고객이다. … 현재 한국사회에는 동맹으로 인한 비용이 이익을 크게 추월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의 이익보다는 미국의 이익과 전략이 우선하는 철저한 비대칭성에 대한 변화 시도는 부재했다."
김 의원은 한미동맹은 동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이 우리하고 프렌들리(friendly)라면서요? 친구라는 게 뭐에요? 말도 못하고, 속앓이하고, 굴복하는 게 친구인가요? 동맹이라고 한다면 동등해야 해요. 한국은 미국하고 동등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아요. 이런 문제에 대해 굉장히 합리적인 이야기가 되고, 그런 힘들이 발휘되어서 SOFA도 바꾸고 법도 만들어야 해요."
이 싸움은 사랑에 관한 것
요즘 김 대표는 매주 토요일마다 용산촛불행동 회원들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실천한 활동의 결과가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다 해도 시민들의 응원하는 힘들이 갑자기 어떤 때 분출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민청원도 100만 명이 넘게 서명해서 어쨌든 올라갔잖아요(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청원심사소위원회 회부)."
맥팔랜드 사건을 제보한 이들은 용산기지에서 일하던 한국인 군무원들이었다. 용산기지 주변 환경오염의 원인이 미군기지 내부에 있음을 들추고, 정부도 청구하지 못한 오염사고 이력을 알아내고, 용산어린이정원의 위험성을 알린 이들은 모두 시민들이었다. 김 대표와 함께 시민회의를 이끄는 이들은 대부분 용산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힘 있는 나라는 힘 있는 주민들이 만들고 있다.
올해 광복절을 보내고 맞이한 토요일,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8월 전국집중촛불대행진' 에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비를 맞고서도 시청 근처에서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했다. 그때 다섯 살 난 딸과 함께 우비를 입고 행진하던 한 엄마를 보았다. 문득 딸 진혁이의 작은 손을 잡고 온갖 집회 현장을 누볐을 김 대표의 모습이 겹쳐서 그려졌다. 진혁이는 지금 중학생이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땅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땅이다. 우리가 당당하게 우리 몫을 다 해야만 이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편안하게 산다. 아이들이 좀 더 어른들의 보살핌과 시선 속에서 공동체적으로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저희가 이 도서관(고래이야기)도 운영하고 있어요."
데이비드 바인은 오랫동안 해외주둔 미군기지 문제를 연구한 인류학자이다. 그의 저서 <기지국가>(갈마바람, 2017년)는 한국어판 서문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매듭짓는다(제주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가 최성희 씨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을 빌려서 해준 말이었다). "이 싸움은 사랑에 관한 겁니다."
그동안 김 대표와 시민회의가 함께 해왔던 활동들을 취재하면서 나는 '혐오'과 '분노'에 휩싸이곤 했다. 주한미군의 기만과 뻔뻔함, 줏대 없고 무기력한 한국 정부에 분개했다. 데이비드 바인의 저 문장은 나를 다른 감정으로 환기하게 해주었다.
김 대표와 함께하는 이들이 치르는 싸움은 어쩌면 사랑에 관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