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02 12:04최종 업데이트 24.07.0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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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편집자말]

지난달 27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내건 현수막 ⓒ 류승연

 
특수교육대상자의 부모이거나 발달장애와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난주까지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전국에 걸쳐 아스팔트 위에 엎드린 오체투지 행진을 했다는 기사를 한 번쯤은 봤을 겁니다.

오체투지는 불교에서 행하는 큰절의 형태인데요. 양 무릎, 양 팔꿈치, 이마 등 5곳의 신체를 땅에 대고 행하는 절입니다. 보통 불교에선 수행을 위해 할 정도로 고된 절이 오체투지입니다. 해가 쨍쨍한 32도 날씨에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오체투지를 한다면 말할 것도 없죠.


지난 6월 27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회원 700여 명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모였고, 많은 언론이 해당 소식을 전했는데요.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왜 오체투지 행진을 했는지 아는 분 있을까요? 막연하게 자녀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 말고 구체적으로 말이에요. 에어컨 빵빵 나오는 곳에서 우아하게 차 마시면서 요청하고 협상하고 논의해도 될 것을, 굳이 바닥에 엎드려 절까지 해가며 행진했는지 말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안 그래도 파이가 적은 발달장애 관련 예산이 슬그머니 사라진 걸 뒤늦게 목격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습니다. 성인기 발달장애인이 '집에서의 고립'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성인기 삶이 특수교육과 무슨 관련이 있냐고요? 특수교육을 받는 학령기와 사회복지계의 품 안으로 들어갈 성인기는 하나의 줄기로 연결돼 있습니다. "성인기는 성인기의 몫"이라며 외면해버리면 내 자녀가, 내 제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막막한 현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학령기 특수교육대상자를 지원하는 주변인이 지금부터 관련 정책에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빠르게 흘러갈 시간 속에서, 발등에 불 떨어진 다음에는 늦습니다.

평생교육센터 예산 삭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서울시청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이들은 ‘발달장애인 건강생명권 보장, 발달장애인 사회적참사 진상조사위 구성, 발달장애인 행정전수조사 실시, 사회적 고립에 처한 발달장애인 가정 구출, 사각지대 없는 지원체계 구축 등을 촉구하며, 지난 5월말 제주도를 시작으로 전국 15개 광역시도를 순회하며 오체투지를 진행했다. ⓒ 권우성

 
경복궁역 앞에서 시작된 오체투지 행진은 서울시청에서 마무리됐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은 시청 앞에 집결해 발달장애 관련 예산을 삭감한 책임자와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동안 서울시가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 예산을 삭감한 것을 두고 수 차례 건의하고 요청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거든요.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는 발달장애인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갈 수 있는, 일종의 성인기 학교 같은 개념으로 보면 이해하기 쉬울 듯합니다.

학령기 반 구성과 마찬가지로 6~7명의 당사자가 한 반을 이루고 있고, 교실 구성도 학교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특수교사도 배치돼 있습니다.

다만 학교가 아니기에 진도에 맞춰 교과수업을 나가는 형태가 아닌 예체능 중심 활동이 많고 지역사회와 연계한 외부 활동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평생교육센터라는 말이 무색하게 평생은 아니고 1인당 5년 동안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센터별로 운영 차이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잘 운영되는 곳은 정말 '환상적'이라 할 만큼 잘 운영되는 곳도 있어서 저는 서울 모 지역의 평생교육센터를 방문한 뒤 성인기 땐 그쪽으로 이사 가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입니다.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의 장점 중 하나는 중증 발달장애인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특수교육계의 품에서 벗어나 사회복지계로 삶의 영역이 넘어가면 중증 장애인 수용의 폭이 더 넓어질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입니다. 사회복지 영역에서도 중증 장애는 사실상 배제되는 현실인데 이에 대해서는 따로 말할 기회가 있을 듯합니다.

어쨌든 성인기가 되면 갈 곳이 확 줄어드는 중증 발달장애인 입장에선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의 5년이 굉장히 소중한 시간인데요. 문제는 '약자와의 동행'을 외친 서울시가 그곳의 예산을 줄여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약자와의 동행?
 

오세훈 서울시장이 1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시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 예산을 동결했을 뿐이거든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줄였다는 겁니다.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에는 많은 지원 인력이 상주합니다. 그곳에 근무하는 특수교사나 사회복지사는 매년 호봉이 올라가는 직업군입니다. 보통 연봉 인상분을 포함한 예산이 책정되는데 올해는 운영비와 인력비를 통으로 묶어 예산을 내려주면서 연봉 인상분을 전혀 추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예산이 통으로 내려왔어요. 그런데 연봉 인상분이 포함되지 않았어요. 그러면 통으로 받은 예산에서 무엇을 줄여야 할까요? 센터 운영비는 물가상승률에 따라 올려도 모자랄 판에 줄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력비를 줄여야겠죠.

인상된 호봉만큼의 연봉을 줄 수 없으니 경력직들이 현장을 떠납니다. 그 자리를 새로 온 사회복지사들이 채웁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어느 정도 익숙해질 만하다 싶으면 떠나야 합니다. 호봉이 자동으로 오르니까요.

혹시 서울시가 돈이 없는 가난한 지자체라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 연봉 인상률이 서울시 건물을 휘청이게 할 정도인가 싶어 알아봤더니 한 해 6억 원 수준이라 합니다. 참고로 2024년 서울시 예산은 대략 45조 원(일반회계 33조원, 특별회계 12조원) 규모입니다.

게다가 서울시는 예산편성 방향에 있어 '약자와의 동행'을 가장 앞에 내세워 왔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자신이 '약자와의 동행'을 주장하다 보니 '좌파'라는 소리까지 듣는다며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목숨 걸고 지켜줄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서울시청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이들은 ‘발달장애인 건강생명권 보장, 발달장애인 사회적참사 진상조사위 구성, 발달장애인 행정전수조사 실시, 사회적 고립에 처한 발달장애인 가정 구출, 사각지대 없는 지원체계 구축 등을 촉구하며, 지난 5월말 제주도를 시작으로 전국 15개 광역시도를 순회하며 오체투지를 진행했다. ⓒ 권우성

 
이날 오체투지 행진에 나섰던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대치하며 협상을 요구한 결과, 서울시는 3번이나 삭감되었던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 인건비 전액을 다시 살리기로 했습니다. 

이미 아스팔트 위를 기어 오느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부모들은 협상 결과에 기뻐해야 했지만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해야만 할까요. 수 백명이 모여 오체투지를 해야만 바뀌는 현실이 참담하고 슬펐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발달장애 관련 예산은 은근슬쩍 사라지고, 슬그머니 사라지고, 대놓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부모들은 오체투지 행진을 마무리하면서 현수막을 들었습니다. 현수막엔 "엄마가 목숨 걸고 지켜줄게"라고 적혀 있었어요. 사뭇 비장하기까지 한 그 말에, 아들(자폐성 장애)의 엄마로서 공감했습니다.

이날 오체투지에 나선 부모들의 나이는 50대와 60대가 주를 이뤘습니다. 70대와 40대가 뒤를 이었고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학령기 부모들의 참여가 갈수록 줄고 있다는 뜻입니다.

정책투쟁으로 특수교육법과 발달장애인법을 일궈냈던 부모들은 이제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요. 학령기 부모들이 뒤를 잇지 않으면 멀지 않은 미래의 언젠가 발달장애 관련 예산이 은근슬쩍 사라지고, 슬그머니 사라지고, 대놓고 사라질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감시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단이 아무것도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녀가 발달장애인이라면 학령기일 때부터 관련 정책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며, 자녀가 발달장애인이 아니라면 오체투지 행진 옆을 지날 때 "XX것들 XX한다"라며 욕이라도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날 부모들은 발달장애인평생교육 인건비 예산 분리 책정 외에도 자녀의 생존을 위한 8가지 정책 요구를 했습니다. 심심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부모 사후 혼자 남게 될 자녀의 생존을 위해서 엎드립니다.

하지만 더는 엎드리지 않고도 관련 정책과 예산이 무리 없이 자리잡을 수 있길 바라봅니다. '약자와의 동행'을 기치로 내건 만큼 그 말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시장님과 서울시가 되길 바라봅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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