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열렸던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던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 3회 3시 STOP 조기퇴근시위' 당시 모습.
권우성
노파심에서 얹는 말 하나.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은 '본격 퇴사‧퇴직 강권서'가 아니다. 책에서는 여초 직업군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는 이들을 '알을 깨는 여자들'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자리에서 두 발 딛고 서 있는 이들, 더 나은 노동 환경을 위해 분투하는 이들 역시 저마다의 알을 깨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을 착즙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이들은 사업장에서 개별적으로, 혹은 노조나 연구 모임 등을 통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10월 아이슬란드에서 열린 여성 총파업처럼, 한국에서도 여성 노동자의 이름으로 오는 3‧8 세계 여성의 날에 총파업을 추진하자는 논의가 힘을 얻는 데는 이런 여성들의 노고가 있다.
책을 쓰는데 도움을 준 수많은 여성들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의 인터뷰이가 된, 얼추 알고 지낸 기간이 20년을 넘어가는 친구들은 내게 말했다. "고맙다"고. 인터뷰이 중 한 명인 수정(가명)은 메일에서 나를 '작가님'으로 호명하며, 전에 없이 존댓말을 썼다. "횡설수설이었던 인터뷰 내용들을 멋지게 재탄생하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른 친구 승희(가명)는 말했다. "내 얘기가 책이 될 수 있을 줄 몰랐어!" 나는 생각한다. 당신들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책을 쓸 수 있었다고.
엄마는, 뜻밖에 "미안하다"고 했다. 좀 더 가정 환경이 넉넉했더라면, 네가 이런 책을 쓸 만큼 사회적 차별에 민감한 사람으로 자라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였다. 엄마는 이런 생각들을 품고 사는 딸의 삶이 무척이나 팍팍했으리라 짐작했는지 전화를 타고 흐르는 목소리가 퍽 울적하게 들렸다. 현주의 엄마도 딸에게 "교직을 권해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전했다 한다. 그 얘기들을 서로 나누며, 우리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생은 줄곧 딸을 위하는 쪽이었기에, 그런 말씀들을 했거나 하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한 가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최근 몇 년간, 내 머릿속에서 꾸준히 굴러다니는 말이다. 2019년 당시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를 낸 김금희 작가를 인터뷰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김 작가가 만들어내는, 햄버거집에서 감자튀김을 다 흩뜨려 놓고 같이 먹는데 자기 몫의 버거는 먹지 않고 감자튀김만 먼저 공략하는 이를 향한 속칭 '빠꾸' 없는 힐난 같은 장면들을 사랑했다. 그런 장면들, 감정 서술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가 답했다.
"그게 전달이 된다면, 받아들이는 분의 능력도 있는 거 같아요. 자기 마음에 스쳐 지나가는 감정들을 기억에 담아뒀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각자 매우 다르게 사는 것 같지만, 비슷하게 살고 있잖아요. 그 과정을 함께했다면 세심하게 생각만 하면 되는 거예요."
뜻밖의 칭찬을 들은 셈이어서, 다음에 하려던 질문을 까먹고 순간 어리벙벙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그 말을, <직때녀>를 읽는 여성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을 읽고, 마음이 공명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걸 받아들이는 분의 능력도 있는 것이라고. 나를 옥죄는 직업적 현실을, 그저 지나치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꾸준히 분석하려 한, 나만의 타개책을 열심히 모색한 당신들에게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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