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깃발. 2021.3.3
연합뉴스
영화가 아닌, 현실과 포개지는 기시감도 있다. 전두광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하나회는 윤석열 대통령 휘하의 검찰 조직과 빼닮았다. 후배와의 우정을 등진 채 조직에 충성하는 반란군 장교의 모습에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 속에서 반란군과 맞선 공수혁 특전사령관을 호위하던 오진호 비서실장을 쏜 건 그의 친구였다. 김오랑 중령을 실제 모델로 삼은 오진호는 카메오로 출연한 정해인이 연기했다.
전두광이 10.26 수사 중에 대통령 비서실에서 나온 현금 9억여 원 중 일부를 떼어내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에게 건네려는 장면에선 누구든 검찰의 특수활동비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또 전두광이 하나회의 후배인 설 소령의 등을 토닥이며 건넨 "자네가 나고, 내가 자네"라는 말에선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는 단어가 스친다.
민주주의의 퇴행을 우려하는 기자들 앞에서 "이 나라가 민주주의 아닌 적이 있었습니까"라고 반문하는 전두광의 뻔뻔한 모습은 정부 비판 기사를 '가짜뉴스'로 폄하하는 현 정부의 모습과 데칼코마니다. 전두광이 하나회 선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라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흔히 '아무개 사단'이라고 통칭하는 검찰 내 사조직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영화는 여기에서 멈추지만, 우리는 이후에 벌어진 참담한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신군부에 저항하는 광주시민을 무참히 학살한 뒤 대통령 자리에 오른 전두환은 국가 권력을 철저히 사유화했다. 그에 맞선 '참군인'들은 멸문지화를 당했고, 장관과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은 물론, 수많은 공기업 사장 자리가 그를 추종했던 하나회 선후배들의 전리품으로 전락했다.
12.12 군사 반란 이후 안기부장 자리를 꿰찬 유학성, 감사원장에 오른 황영시, 교통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의 감투를 쓴 차규헌과 정호용, 육군참모총장이 된 박희도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특히 직속상관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배신한 박희도는 영화 속의 비중이 너무 작아 아쉬울 정도다.
전두환의 최측근으로 그를 평생 보좌한 장세동과 반란 계획을 주도해 권력의 2인자가 된 허화평,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을 불법 연행한 허삼수 등의 이름도 잊어선 안 된다. 그들은 안기부장과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서 군사독재정권의 주구가 되어 권력 농단에 앞장섰다.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는 어부지리로 다음 대통령에 당선되어 민주화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감독이 의도한 바는 분명 아닐 테지만,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내쫓듯' 12.12 군사 반란을 다룬 영화가 '검찰 공화국'이 된 오늘의 현실을 관객들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정적 제거'와 '제 식구 감싸기'에 활용하는 야만성은 1979년 겨울과 2023년 겨울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영화 속 오국상 국방부 장관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행태에서, 얼마 전 사퇴한 국방부 장관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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