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현지시간) 영국 신문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영국의 새 총리로 취임했다.
연합뉴스
영국이 시대 전환을 택했다. 지난 4일 총선에서 노동당과 보수당이 얻은 의석수는 412와 121. 2019년 총선과 비교했을 때 노동당이 214석 더 확보했고 보수당은 252석을 잃은 결과다. 노동당이 과반인 326석보다 무려 86석 많은 의석수를 얻으면서 양당의 차이가 세 배를 넘겼다.
이번 노동당 승리는 1997년 총선과 견주어진다. 당시 토니 블레어가 이끌던 노동당이 418석을 얻었고 보수당은 165석을 얻었다. 수치상으로 유사하지만 두 선거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1997년 노동당의 승리는 미국 민주당과 함께 '제3의 길,' 즉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며 이루어졌다. 그에 비해 2024년의 노동당은 신자유주의를 정리 (혹은 전면 수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
노동당 대표로 총리가 된 키어 스타머는 새로운 방향성 제시의 선두에 있다. 1962년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다 검찰총장을 거쳐 2015년 하원 의원이 되었다. 2019년 총선 완패로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대표에서 물러난 후 2020년부터 노동당을 이끌었다. 당 대표 초기 전통적으로 노동당이 초강세를 보였던 보궐 선거에서 대패하는 등 고전했지만 2024년 총선 승리로 정치적 비전을 구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스타머 총리가 제시한 변화는 지난 5일 첫 연설에서 드러났다.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다시(re)'였다. 재설정(reset), 재건(rebuild), 쇄신(renewal), 재발견(rediscovery), 회귀(return), 회복(restore) 등 여섯 차례에 걸쳐 나왔다. 스타머는 "영국의 쇄신"을 위해 "담대한 재설정"을 외쳤다. 여기에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재발견"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정치를 공공 서비스로 복귀"시키고 "공공 서비스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벽돌 한장 한장" 쌓듯 사회를 재건하여 "공동체의 번영"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우리에 대한 재발견
공동체는 신자유주의에서 변방에 물러나 있던 개념이다. 198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의 선봉자였던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사회 같은 것은 없"고 "개인으로서 남자와 여자가 있다"며 개인을 내세웠다. 이 틀 안에서 공동체는 자유시장 내 개인들의 능력 실현과 무한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로 비쳤다. 공동체가 주는 안정성은 노동-상품-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하는 세계화의 역동적이고 유동적 이미지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사회 기본 단위로서의 개인과 끊임없는 변화 속 경쟁에 대한 회의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지지했던 보수당에서 나왔다. 보수당 내 소수였던 이들은 2016년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통해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코로나 정국에서 영국이 1차 봉쇄로 들어가던 2020년 당시 보리스 존슨 총리는 "사회 같은 게 정말 있다"며 코로나 위기를 전쟁에 빗대 거국적 차원에서 극복할 것을 호소했다
보수당이 개인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국가였다. 도량형을 EU 가입 이전, 즉 킬로그램, 킬로미터 같은 메트릭 시스템 대신 파운드, 마일 등 임페리얼 시스템으로 되돌렸다. 모든 공공기관에 국기를 게양했고 자국 역사에 대한 비판보다는 자부심을 갖는 방향으로 재해석하는 등 문화 전쟁에 적극성을 보였다. 유럽인권재판소와 영국 대법원의 불법 판결에도 불법 이주자를 르완다로 보내는 정책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허상이었다. 파티 게이트를 통해 보리스 존슨 총리 등 보수당 엘리트들이 사회적 존재를 강조했지만 자신들은 예외로 삼는 도덕적 위선을 보였다. 이후 초점을 경제로 돌려 강도 높은 친시장 경제정책을 내놓았지만 브렉시트로 EU 시장을 포기한 자기모순을 확연히 드러낼 뿐이었다. 그리고나서 르완다 정책 등 이주자 문제를 통해 자국 정체성을 구심점으로 삼으려 했지만 국제법과 국내법에 막혔다. 결국 보수당은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재발견, 즉 신자유주의식 개인에 대한 대안을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공공 영역의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