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착석'은 부모가 느끼기에는 큰 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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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를 하든 하지 않든 일단 입학이 결정되고 나면 그때부터 또 새로운 걱정이 올라옵니다. 우선 '착석'이라는 가장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되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많은 발달장애인이 인지발달이 느린 대신 눈치는 또 기가 막히게 발달합니다. 인지 대신 눈치, 이것이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습득한 생존기술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아들은 유치원 졸업할 때까지 3분 착석도 안 되던 아이였어요. 유치원에선 착석이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거든요. 선생님과 친구들의 분위기도 호의적이었고 의자 착석이 힘들면 따뜻한 온돌바닥에 누워버리면 그만이었거든요.
이랬던 녀석이 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리고 3월,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난 후 40분 수업 시간에 온전히 착석해 앉아있는 아들 모습을 보게 됐어요. 이해하지 못할 수업 내용에 힘들고 괴로워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버릴지언정 그 시간은 어떻게든 앉아서 버텨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거예요.
분위기가 그랬거든요. 친구들 모두가 책상 앞에 앉아있었거든요. 학교라는 공간은 그래야만 하는 곳이었거든요. 학기 초 40분 착석이 힘들긴 비장애 1학년 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얘도 일어나고, 쟤도 일어나려 해요. 그때마다 담임이 얘도 지도하고, 쟤도 지도하고, 아들도 지도합니다.
처음엔 아들도 반항을 했겠지만 인지 대신 눈치가 발달한 녀석은 어느 순간 눈치로 공간의 분위기에 '적응'하게 됩니다. 학교에선 착석이 '국룰'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바로 이런 것(사회에서 통용되는 사회적 규범과 규칙)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다닙니다.
학습 발달 여부
자녀의 학교 입학을 앞둔 영유아기 부모들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한가득 쏟아내곤 합니다.
"우리 아이가 아직 한글을 못 뗐는데요. 유예하지 않아도 될까요?"
"우리 아이가 숫자를 10까지밖에 셀 줄 몰라요. 그래도 될까요?"
만약 이 글을 보고 있는 학령기와 성인기 부모님이 있다면 어떤 답변을 해주시겠어요? 아마 제 대답과 같을 겁니다. 한글과 숫자를 어느 정도까지 익혔느냐는 학교생활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요.
왜냐면요. 아이가 특수교육대상자(발달장애인)가 된 이상 반 친구들과의 학습 격차는 날이 갈수록 더 크게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에요. 애초에 또래 집단을 비교 대상으로 놓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한글과 숫자를 익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그만큼 수업 이해도가 높아져 좋겠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모든 발달장애인은 '각자의 속도'에 맞게 성장해 갑니다. 그 속도는 같은 장애라 해도 천차만별로 다르고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특수교육대상자는 개별화교육회의(IEP)를 통해 각자의 발달 상황에 맞는 교육을 받습니다.
"아이가 이런 정도의 학습 발달은 보여야 할 텐데…"라는 기준은 어른인 우리들 관점입니다. 학습 발달이 느리지 않았다면 애초에 특수교육대상자 신청을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특수교육대상자로 신청해 놓고 학습 발달에서 비장애 친구들과 같아지길 바란다면 그건 노벨 물리학상 받은 석학들이 모여 저에게 "너는 왜 양자역학의 부조리를 설명할 수 없느냐"고 다그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아요.
마음의 준비
착석이 안 되어도 괜찮다, 한글과 숫자를 몰라도 괜찮다고 하면 아이의 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무런 준비를 안 해도 되는 걸까요?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일상생활 자조 기술은 미리미리 연습해 두면 좋을 겁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혼자서 운동화를 실내화로 갈아신고 신발장에 넣는 것이라든가, 겉옷을 혼자서 입고 벗는 것이라든가, 책가방을 벗어 책상 옆 걸이에 걸어놓는다던가,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옷을 야무지게 단속해서 입는다던가, 밥을 혼자 먹는다든가 하는 일 말입니다.
제 아들은 기능발달상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한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기저귀를 완전히 졸업했습니다. 그것이 '아들의 속도'였어요). 하지만 담임 선생님과 반 친구들, 특수교사와 실무사가 아들의 일상생활을 지원하고 도우면서 아들도 학교생활에 적응해 갔습니다.
이 방법도 괜찮고, 저 방법도 괜찮아요. 하지만 준비는 필요합니다. 바로 마음의 준비요.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그것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게 없습니다.
어떤 마음의 준비냐면요. 사람들과 마주할 마음의 준비요. 불안감을 덜어낼 마음의 준비요. 아이를 위해 나 먼저 행복해지고 말겠다는 마음의 준비요. 내 마음에 평안과 여유가 있어야만 앞으로 마주하게 될 모든 타인(교사 및 학교 구성원, 다른 학부모)과의 관계에서 왜곡된 반응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건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비장애 학생의 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굳이 마음의 용기까지 내진 않습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과정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 자연스러운 일마저도 용기를 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위축돼 있거든요. 불안감이 이만큼 치솟아 있거든요.
참 신기한 게 뭐냐면요. 부모 마음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겁니다. 아이도 부모와 같은 감정을 지닌 채 학교생활에 임하게 돼요. 그걸 교사와 반 친구들이 고스란히 느끼게 됩니다. 아이의 학교 입학을 앞두고 부모의 마음 먼저 돌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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