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에서 1995년까지 지속된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은 현지인들에게 큰 마음의 생채기를 남겼다. 특히 접경지역 크로아티아 동부의 도시 부코바르 (vukovar)는 1991년 87일간 세르비아군의 공격을 받아 2천 명이 학살되는 피해를 겪었다. 하지만 동시에 '대 크로아티아'의 야망을 품었던 국수적 성향의 크로아티아 초대 대통령 투지만 프라뇨는 영토 팽창을 위해 보스니아와 무력분쟁을 일으켰다.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 (ICTY)는 크로아티아 고위 관료 6명에게 전쟁 범죄 유죄를 선고하고 투지만 정부가 인종 청소라는 범죄 정책을 추구했다고 결론지었다. 1993년 크로아티아 군인들에 의해 약 120명의 보스니아인들이 살해된 아흐미치 대학살이 그 대표적인 예다. 즉 크로아티아 정부는 피해자성과 가해자성을 동시에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1990년대 유고전쟁에서 살해된 10만 명 중 80%는 보스니아계로 알려져 있다. 발칸반도는 여전히 상충되는 역사적 서사가 혼재하고 극우정치인들은 이를 악용하고 있어 이웃국가간 진정한 화해는 아직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발칸반도 통합을 위해 가장 앞장 서는 것은 단연코 여성인권 운동가들이다. 2015년 세르비아의 여성단체 '우먼 인 블랙'을 비롯,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코소보,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의 여성단체들은 1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여성모의법정을 열며 평화와 화해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여성법정
https://zenskisud.org/en/filmovi.html).
특히 이들은 전시 성폭력의 피해 여성과 남성을 지원하기 위해 수십년간 함께 연대해오고 있다. 이들의 오랜 투쟁은 결국 결실을 맺어 2015년 크로아티아 정부는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특별법을 제정해 매달 약 300유로의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피해자 예상수치의 약 10%-15%가 정부에 신고한 상태인데 이들 중 25%는 남성 피해자였다. 유엔 2013년 통계에 의하면, 크로아티아의 전시 강간 피해자는 약 1500명에서 2200명으로 추정된다.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조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