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책 표지
문학동네
아실 테지만, 수만 명이 희생당한 제주 4.3의 실상이 처음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건 사건이 일어난 지 무려 30년이 지난 1978년 무렵이었습니다. 제주 출신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 삼촌>이 출간되면서 엄청난 파문이 일었습니다. 국가권력에 의한 무고한 민간인 학살을 정면으로 다뤘기 때문입니다.
출간되자마자 작가는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금서'로 지정되어 독자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순이 삼촌>은 수능 시험에도 출제될 만큼 대중적인 역사 교양서가 됐습니다. '허구적' 문학일지언정 소설 속 내용이 왜곡됐다고, 작가의 시각이 편협하다고 지적하는 이는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뒤, 공중파 방송에서 제주 4.3을 주제로 한 특집 방송을 제작하면서 비로소 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수립된 직후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방송의 제목이 의미심장했습니다. 지금껏 말할 수 없었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로도 불의한 권력은 은폐와 왜곡, 폄훼를 일삼았지만, 제주 4.3의 진실을 알리려는 작가들의 몸부림은 이어졌습니다. 이산하 작가는 장편 서사시 <한라산>을 썼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았지만, 최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로부터 재심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또, 재일교포 김석범 작가는 총 10권짜리 대작 <화산도>를 통해 제주 4.3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섰습니다.
제주 4.3을 비롯한 우리 현대사 속 수많은 은폐된 진실들이 햇빛을 보게 된 건 작가들의 양심과 피와 땀에 빚졌습니다. 그들에게 감사해하지는 못할망정 그 의미조차 모호한 '심정 윤리', '책임 윤리' 운운하며 훈수를 두는 건 노벨문학상에 대한 몽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장담하건대, 작가들이 아니었다면, 제주 4.3의 진실은 영영 묻히고 말았을 겁니다.
제주 4.3에 대한 납작한 인식
한편, 위원님이 거론한 역사적 사실도 왜곡투성이고, 기껏해야 양비론적 시각입니다. 제주 4.3이 공산주의자들의 경찰서 공격으로 촉발되었다는 건, 역사를 칼로 두부 자르듯 이해하는 납작한 인식입니다. 말하자면, 제주 4.3을 1948년 4월 3일의 역사로 한정을 짓는 어처구니없는 관점입니다.
제주 4.3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식에서 벌어진 미군정의 발포 사건을 시작으로 보는 게 정설입니다. 당시 무고한 주민 6명이 현장에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그들은 광복 2주년을 기념하며 미군정의 실정에 항의하는 평범한 주민들이었을 뿐입니다.
이에 제주의 민심은 크게 동요했고, 미군정의 공식적 사과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이게 됩니다. 이를 미군정과 이승만을 비롯한 우익 세력은 공산주의자의 책동으로 몰아세우며 극단적 반공주의 단체인 서북청년단을 동원합니다. 이후 5.10 총선거와 맞물리며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죄다 '빨갱이'로 치도곤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전후 맥락을 '거두(去頭)'하는 주장은 치졸합니다. 거기에 셰익스피어 비극 속 이야기까지 끌어온 건 전형적인 견강부회입니다. '군경이 제주에서 특히 사악해진 이유'는 마땅히 '초토화 작전'을 명령한 이승만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은근슬쩍 당시 제주도민들이 군경의 가혹한 토벌을 자극했다는 식으로 말끝을 흐린 건 비루합니다.
위원님은 한강 작가의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지적하셨지만, 6.25가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 양상이었다는 것 또한 학계의 오래된 정설입니다. 북한의 남침으로 전면전이 시작됐다고 해서 전쟁 도발 책임을 오롯이 김일성에게 뒤집어씌우는 건, 미국과 소련을 비롯해 우익 세력에 빌붙은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고 지적합니다. 6.25를 '친일파의 해방 전쟁'으로 호명할 정도입니다.
한강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