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판매 노동자, 노동조합 활동가. 샤넬코리아지부 한채윤 지부장.
한채윤
더 많은 매출을 위해, 그루밍 가이드와 연중무휴 백화점
백화점은 보통 월 1회 정기휴무일이 있다.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IMF 전에는 월 4회, 보통 매주 월요일 쉬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제 월 1회 휴무가 일반적으로 되었다. 9월처럼 추석에 쉬면 그달은 정기휴무가 없다. 정기휴무일이 따로 없는 백화점들도 많다. 모두 매출 경쟁 때문이다.
"시설 안전 점검을 해야 하니까, 월 1회 정기휴무는 꼭 필요하죠. 그리고 전기든 뭐든 아끼려면 백화점도 하루는 쉬어야죠. 그런데 서로 경쟁하니까 문을 닫지 못 하는 거예요. '우리가 쉬면 고객들이 경쟁 백화점으로 간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게다가 그 하루 있는 휴무 날에 VIP 고객 초대해서 행사라도 하면 직원들은 못 쉬고 출근해야 해요."
백화점이 VIP 행사를 해도 노동조합 있는 브랜드는 매장을 열지 않는다. 현재 한채윤님이 속한 노동조합에서 본사 사업부와 합의해, 정기휴점일에 하는 백화점 행사에는 샤넬코리아 직원들은 출근하지 않는 것으로 했다.
"백화점은 주말에도 다 열잖아요. 교대로 쉰다고 해도, 내가 쉬는 날 매장이 열려 있으면 제대로 쉬지 못 하거든요. 제가 담당했던 고객이 그날 들러서 뭘 물어 본다든지, 매장에 급한 일이 생겨서 연락이 오는 일도 아주 흔하고요. 각 매장의 리더들은 브랜드 본사에서 오는 연락을 받거나, 매장에서 생긴 사건을 백화점과 조율하는 게 자기 역할이니 더 그렇죠. 그래서 정기휴무를 늘리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날만큼은 맘 편하게 쉬고 싶으니까요."
고용은 화장품 브랜드이지만, 노동환경은 사실상 백화점이 좌우한다. '이번 주 금토일 연장 영업하겠습니다', '이번 달 정기휴무 취소됩니다', '내일 오전 10시 서비스교육 있어요'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대부분 따라야 한다고 한다. 그나마 한채윤님이 고용된 샤넬코리아는 브랜드 파워가 강한 곳이라서, 백화점 눈치를 덜 보지만 작은 브랜드에 소속된 노동자, 매출액이 낮은 매장 노동자들, 심지어 소사장제로 브랜드와 계약을 맺고 직접 매장을 운영하는 경우에는 눈치를 더 많이 볼 수밖에 없다.
"샤넬은 브랜드가 크고 파워가 있어서 그나마 좀 덜한 편이에요. 작은 브랜드에서 일하는 판매 노동자들 보면 '화장품 본사 차장보다 백화점 관리자가 더 눈치 보인다'고 하는 경우 많아요. 매출에 따라 하다못해 창고 크기도 달라지고 위치도 달라져요. 백화점 지하에 창고들이 있는데, 매출이 많은 큰 브랜드는 문 열자마자 있는 좋은 위치에 주고, 작은 매장들은 창고 안에서도 저 구석에 자리 있어서 물건 하나 꺼내 오는 것도 훨씬 어려워지죠. 소사장들은 백화점의 평가에 따라 브랜드와 계약이 유지될지가 좌우되는 경우도 많고요."
작고 비싸고 화려한 물건을 팔지만, 본사나 백화점이나 파는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다. 이건 고객도 마찬가지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백화점에서의 갑질 고객 사례가 보여주듯, 더 많이 소비하는 사람은 소비 과정에서 물건을 살 뿐 아니라 더 나은 '대접'도 받고 싶어 한다. 결국 그 '대접'을 해 줘야 하는 것은 판매 노동자들이다.
"사실 네임벨류라고 하는, 브랜드에 대한 만족감으로 일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우리는 명품처럼 대접받지 못하는 거 같아요. 쇼핑백 유상 판매가 처음 도입됐을 때, 정책 때문에 100원을 받아야 하는데, '명품 팔면서 100원 받냐?'고 화내시고, 동전 던지고 그런 일 정말 많았어요. 똑같은 립스틱을 사도 백화점에서 사면 시장에 갔을 때보다 대우받고 싶어 하는 것 같고, 그게 직원을 힘들게 하죠."
고객을 이렇게 만드는 건 사실 백화점의 정책이다. '고객이 왕'이라며 경쟁적으로 서비스를 도입하고, 실제로 고객과 갈등이 빚어졌을 때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백화점의 정책이 고객을 갑질하게 만든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고객이 폭언 퍼부을 때 보안 담당자들이 멀뚱멀뚱 보고 있는 경우도 많아요. 고객이나 서비스를 우선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감정을 꾸며서 고객을 대하는 게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인데도, 스트레스 지수가 높게 나오더라고요. 감정을 꾸며내는 데 대한 스트레스가 오랫동안 쌓여 있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