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화장의 도시>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의 삶에 어울리는 꽃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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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의 시도를 살펴보자. 처음에 실린 단편 '화장의 도시'(2021)는 다소 유치한 시도에서 탄생했다. '화장'의 한자 火를 花로 치환해 버린 상상의 산물이다. 사람을 불에 태워 장례를 치르는 관습이 아닌, 사람이 죽으면 그의 삶에 어울리는 꽃이 되어버린다는 설정. 낱말의 한 부분을 바꿔보는 작은 장난이 쏘아 올린 짧은 소설이다.
'영 원의 꿈'(2021)은 또 어떤가. '꿈'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밤에 꾸는 꿈과 미래를 향해 꾸는 꿈. 작가는 그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말장난을 쳐봤다. '이 꿈은 그 꿈이 아니고 그 꿈은…….' 소설 속, 밤에 꾸는 꿈을 팔던 '나'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게 되자 '지난날에 두고 온 꿈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았던 그 꿈의 가격은, 바로 0원.
'신인의 유배'(2019)는 '빅 픽처'라는 주제를 제안받고 쓴 단편이다. 묘안이 퍼뜩 떠오르지 않은 작가는 말 그대로 큰 그림을 떠올렸다. '계획'을 뜻하는 '큰 그림'이 아니라, 그냥 커다란 그림. 그는 나스카 지상화를 떠올린다. 페루 수도 리마에서 남쪽으로 400km 떨어진 나스카 일대에 그려진 거대한 그림들. 너무 거대해서 오직 하늘에서만 완전한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그 그림들.
거미, 나무, 벌새, 꽃 등 동식물뿐만 아니라 외계인, 그리고 나선과 같은 기하학적 문양까지. 그 그림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신에게 유배당한 '신인(神人)'을 등장시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얼핏 말장난처럼 보이는 시도가 어엿한 단편 소설들로 탄생하는 모습이었다. 그걸 보고 나는 말장난과 아재개그에 더 관대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탐색은 내려놓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상상력을 뻗어나가도 되지 않나. 어쩌면 의미는 추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게 아니라 나중에 돌아보니 거기에 의미가 있었어, 하는 식으로 '발견'되는 게 아닐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음 문장을 쓰는 일, 하나의 선을 긋는 일인지도 모른다.
로렘 입숨의 책 - 구병모 미니픽션
구병모 (지은이),
안온북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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