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구군에 있는 공립 양구어린이집 앞에서 어린이들이 하교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김세윤
"본격적으로 분만실 문을 연 2021년에는 6명의 신생아가 저희 병원에서 태어났어요."
아기 울음소리가 병원에 울려 퍼지던 순간을 떠올리던 오 이사장의 얼굴에서는 자부심 가득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이후 3년간 성심병원 분만실에서 태어난 아기 수는 0명. 가장 큰 이유는 마취과 전문의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만 수술은 여러 변수가 많아 의료 사고의 위험이 높다. 마취과 전문의 없이 분만을 집도하기에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지는 부담이 크다. 때문에 산모가 성심병원에서 출산을 원한다고 해도, 초산이거나 위험 조짐이 약간이라도 보일 경우 환자를 돌려보내거나 협업 병원으로 연결해 줄 수밖에 없었다.
"병원 차원에서 마취과 전문의를 구하려고 노력했죠. 춘천에 있는 병원들과 마취과 의사 협업 계약도 맺어보고, 군의관 마취과 전문의와 협업을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 조건이 맞지 않아 결렬됐어요. 제도권 내에서 마취과 의사를 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에요."
작년 12월부터 새롭게 적용된 지역분만 수가 역시 병원의 발목을 잡았다. 해당 제도로 특별·광역시 등 대도시를 제외한 전 지역 의료기관은 분만 건당 55만 원을 보상받게 됐다. 문제는 산모들이 지는 본인 부담률이다. 서울에서 출산하는 경우 지역분만 수가가 적용되지 않지만, 양구에서 출산하는 경우 지역분만 수가에 대한 자부담을 지면서 분만 비용이 더 비싸지는 것이다.
"산모로서는 지역 병원에서 출산하면 비용도, 위험부담도 커지는 거예요. 50분만 차 타고 나가면 대도시 병원을 이용할 수 있으니 시골 병원을 안 찾죠."
의료 서비스의 지역 간 불균형을 완화하고,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차등수가제도가 오히려 지역 분만 의료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운영비 부족도 분만실의 발목을 잡았다.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으로 성심병원에 매년 인건비 5억 원이 나오는데도, 분만실과 산부인과를 이어 나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규정상 산부인과 전문의를 최소 2명 두어야 하는데, 인원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기존에 지급받은 지원금 중 일부를 반환해야 한다. 성심병원은 올해 기준 매달 1250만 원을 반환해 실질적으로는 3억 5천만 원만 지원받고 있다.
"다른 과까지 적자를 합치면 매년 억 단위는 우습게 넘어요. 소득을 기대할 수 없는 분만 분야는 진료를 기피할 수밖에 없지요."
계속되는 적자에 분만실 반납을 고려한 적도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운영 기간을 최소 10년으로 규정하고 있어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결국 외래 진료 위주로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출산 경험이 있는 산모에게만 관내 분만을 권유하는 등 소극적으로 진료를 이어 나가고 있다.
현실에 발맞춰 분만 취약지 사업 변화해야
이같이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 현실화함에 따라 양구군 등 농어촌 단위 지역에서 분만 취약지 사업 형태로는 분만실을 이어 나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어떤 방향으로 지역 분만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냐는 질문에 오 이사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지역 내에서 분만을 이어 나가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지역 응급의료원은 산전 진료를 위주로 보면서 상급 병원과 산모를 이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의미 있을 겁니다."
지역 병원은 산모와 거점 병원을 이어주는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오 이사장의 주장처럼, 전문가들 역시 시·군을 묶어 권역별로 분만 지원 체계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말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22년 발표한 '농어촌 영향평가 분만의료 도·농 간격차 해소' 보고서는 권역별 거점 분만 병원을 지정하고, 분만 의료 전달체계 역시 권역별로 하는 방향으로 분만 취약지 사업을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실제로 강대병원은 분만 취약지에 거주 중인 임산부를 등록 및 관리하는 '안전한출산인프라 구축사업단'(이하 사업단)을 2015년부터 시범 운영하면서 최초로 권역별 분만 지원 체계를 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