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아침, 길동무 문학예술산책 참가자들이 '두륜산대흥사'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 앞에 서 있다.
한승훈
지난 9월 29일 일요일 아침, 땅끝마을 해남은 날씨가 무척 좋았다. 9월까지 폭염이 지속된 길고 긴 여름이 겨우 끝나고 이제 막 접어든 진짜 가을. 높고 푸른 하늘 아래로 펼쳐진 산과 들에 청량한 공기가 가득했다.
우리는 1박 2일 해남 여행 이틀째를 맞이하는 중이었다.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에서 주관한 '2024 길동무 문학예술산책' 네 번째 여행인 <김남주 시인 30주기 문학제>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과 전국 각지에서 40여 명의 길동무들이 모였다.
둘째 날 아침 첫 일정으로 방문한 대흥사는 신라 후기에 창건된 천년 고찰이다. 해발 700미터 두륜산 자락 아래 넓은 분지에 위치했고, 201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대흥사는 임진왜란 이전에는 아직 대규모 사찰이 아니었으나 서산대사의 의발(승려의 옷과 공양 그릇)을 보관한 이후 한국 불교의 종통이 이어지는 도량으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13 대종사(大宗師) 중 한 명인 초의선사로 인해 우리나라 차 문화의 성지로 거듭나게 된 곳이기도 하다.
이날 해설에 나선 김광수 시인(문화유산 해설사)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이자 만 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라고 했던 서산대사의 말을 빌어 대흥사의 특별함을 설명했다. 답사를 함께 하면서 나는 우선 절의 규모에 놀라고, 다음에는 사찰을 둘러싼 산세와 자연의 아름다움에 놀랐다.
삼재가 미치지 못하는, 만 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
어느 곳에 눈을 두어도 절경이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낮고 둥근 두륜산의 여덟 봉우리 아래로 날렵한 팔작지붕을 이고 선 사찰 건물들이 그림 같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수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굵은 나무들은 천년 고찰의 역사를 증언하는 듯했다.
답사에 참가한 나희덕 시인은 "지역이나 땅이 가진 고유의 기운이 있다. 낮고 아름다운 산세를 지닌 해남은 시인이 많이 나는 고장이고, 반면 장흥은 소설가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설명하며 해남 출신 시인인 윤선도, 김남주, 고정희, 황지우, 장흥 출신 소설가로는 이청준, 한승원, 이승우 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