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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보다 먼저 이해하길... 이 소설의 가르침

[김성호의 독서만세 250] 황정은 <연년세세>

등록 2024.10.05 14:17수정 2024.10.0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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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차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이 땅의 여성들에겐 이름이 없었다. 대갓집 마나님은 누구누구 부인이라고, 여염집 아낙은 어디어디 댁이라고들 불렸다. 죽어서도 마찬가지. 비석이며 기록에도 오로지 성씨만이 남기 일쑤였다. 왕족이며 귀족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5만 원 권에 얼굴을 올린 신사임당조차 사임당이란 호가 문집에 남아 알려진 것일 뿐이다. 그 이름은 완전히 소실돼 찾아볼 길 없다.

비로소 이름을 가진 세대가 생겨난 건 언제부터일까. 그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한국 사회 여자이름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아마도 '자(子)' 자일 테다. 1950년 이전에 태어난 여성 이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게 바로 '자'자다. 아들을 바라는 마음을 굳이 딸 이름에다 반영한 것이 그 시작이라 했다. 하나 둘 그러하니 촌부들은 그것이 마치 유행이라도 되는 양 제 딸 이름에다 자자를 박아 넣었다.


같은 시기 사내들의 이름은 한글자 한글자 깊은 뜻을 살펴서 지었다. 오늘날 보아도 과연 세련된 이름이 수두룩하다. 반면 여자의 이름은 기르는 개와 바꾸어 불러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명자, 옥자, 길자, 화자, 춘자, 경자, 연자, 수많은 자자 돌림 아이들 가운데, <연년세세>의 주인공 순자가 있다.

a 연년세세 책 표지

연년세세 책 표지 ⓒ 창비


순자라 불린 여자 순일... 그녀의 잃어버린 세월

순자는 제 진짜 이름이 순자가 아닌 순일이란 걸 결혼할 때가 되어서야 안다. 그러니까 순자는 정식으로 호적에 든 이름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순일이란 이름을 떡하니 지어놓고도 부모는 물론 주변 어른들 모두가 그녀를 순자라 불렀다. 순일이란 이름을 그 주인이 들어본 적 없었다. 결혼을 하고 호적을 올릴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제가 누구인지를 발견한다. 때는 이미 늦었다. 놓쳐버린 세월이 길고 질었다.

소설이 적고 있는 순일의 삶이란 진절머리가 날 만큼 고생스럽다. 1946년, 해방 직후 태어난 순일의 세상이 어떤 역사와 마주할지를 한국사를 아는 이들은 대개는 짐작할 수 있다. 순일은 그 각자도생의 세월을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가운데서 홀로 헤치고 나와야 했다. 부모를 일찍 잃은 고아 비슷한 처지가 되어 순일은 강원도 철원 지경리에서 괴팍한 할아버지에게 길러진다. 그러다 좀 자라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김포의 고모에게 불려온다. 고모에겐 자식이 일곱이나 있었고 순일은 식모가 줄줄이 도망갔다던 그 집에서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한다. 학교는커녕 물을 긷는 일 말곤 외출조차 허락되지 않는 생활이다. 옆집에도 순자라 불리는 또래 아이가 있지 않았다면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지 모를 일이다.

그 시절 많은 순자들에게 그러했듯, 순일에게도 결혼은 절반은 독립이며 절반은 탈출 같은 것이었다. 순일은 평생에 걸쳐 일을 했고 가족을 지탱해야 했다. 남편과의 이해는 기대하기 어려웠고 이뤄지지도 못하였다. 딸 둘에 아들 하나, 세 아이를 두었으나 행복하고 만족스런 가정이라 하기에는 어딘지 미심쩍은 구석이 적잖다.


연년세세 이어져 온 여인의 역사

순일의 오늘은 어떠한가. 첫째 한영진의 시댁 건물에 얹혀 살며 부부의 살림과 육아를 돕는다. 말이 돕는 것이지 식모생활이 따로 없다. 살뜰하긴 커녕 찬 바람만 쌩쌩 부는 사위의 눈치를 보는 신세다. 둘째딸 세진에게 이를 하소연하지만 뚜렷한 대안이랄 건 없다. 세진은 저 하나 건사하기도 쉽지 않은 상태, 수시로 언니 영진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는 한다.


소설은 순일과 그녀를 둘러싼 할아버지와 고모, 남편과 자식들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네 편의 단편 가운데 담아냈다. 이 연작소설로부터 연년세세 이어져온 순일의 역사와 그녀의 오늘을 읽어낼 수 있다. 이는 그대로 지난 시대와 그 연장선에 놓인 이 시대 여성의 서사가 된다. 장녀로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했던 영진의 삶은 수많은 장녀들이 겪어내야 했던 이야기가 되며, 또 그런 언니 아래 섬세한 시선으로 제 어머니를 이해하는 둘째와 아들로써 그 어미에게 남다른 기대를 받는 자식의 사정이 순일 아닌 이 나라 다른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은 순일을 비롯해 남편과 자식들의 이름을 세 글자 성명으로 그린다. 첫째와 둘째, 셋째라거나 남편이라는 말로 적는 대신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그들 각자의 개체성과 독립성을 상기시킨다. 이름으로써 관계를 해체한 자리에서 도리어 진실한 관계가 그려진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죽을 때까지 제게 박했던 할아버지의 묘를 파묘하러 온 순일의 이야기가 소설의 시작이다. 이 자리엔 둘째 세진만이 동행한다. 작품 가운데 가장 순일을 잘 이해하지만, 그녀의 고난을 구제할 여력이 없는 이 섬세한 둘째딸만이 순일을 제대로 바라본다. 매년 할아버지를 찾아 인사를 올렸던 순일에게 이 묘가 그래도 유일한 친정이라 할 곳이란 걸, 그리하여 파묘하고 마지막 인사를 올리며 활짝 웃어보였던 순일의 마음을 오로지 세진만이 이해한다.

효도가 아닌 이해, 이 소설이 전한 것

그런 그녀에게 멀리 호주에 가 있는 동생 만수가 '효도를 하려고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전해온다. 제 딴엔 생각해서 하는 그 말이 완전히 틀린 이야기라고 세진은 생각한다. 효도가 아니다.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하며 활짝 웃어보이는 순일을 보았다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세진은 순일을 이해한다. 그 깨끗한 이별을, 그 마음을 이해한다.

황정은의 소설은 연년세세 이어지는 가족의 연대기를, 특히 보이지 않는 짐을 잔뜩 업고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개별적으로 짚어낸다. 당연하지 않은 짐을 당연하게 져왔던 그네들의 사정이 속속들이 펼쳐지는 과정이 삶 가운데 비슷한 감정을 겪었을 이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 자극이 위로가 되리란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효도에 대한 대목이다. 효도란 너무나 자주 이해가 아닌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았나. 세진의 이해와 만수의 효도가 결코 닿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자식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순일의 지난 고통스런 과거를, 이 소설 가운데서 세진만이 이해한다. 그건 효도가 아니다. 효가 아닌 이해, 어머니를 인간으로, 이순일로 바라본 뒤에야 알게 되는 진실이다. 그것이 어쩌면 진짜 효에 닿는 것이라고, 효도를 위한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이 소설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옳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연년세세 #황정은 #창비 #한국소설 #김성호의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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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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