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공습 피해를 입은 가자지구 누세이라트 난민촌에서 생존자들을 찾고 있다. 2023.10.31
AP/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의 이면만을 말했지만, 사실 나치라는 거대한 악과 파시즘에 맞서 싸운 연합군의 전쟁에는 분명한 정당성이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마자 다시 시작된 냉전은 이념 대립의 흑백논리를 확고히 하면서 상시적인 위기로 이어졌다. 냉전이 끝나고 '테러와의 전쟁'이 찾아왔다. 그렇게 전선은 훨씬 복잡해져 현재에까지 이르렀다. 서방 세력은 여전히 '규범에 입각한 국제질서'를 내세우지만, 이제는 그 질서가 오로지 자기들이 속한 세력의 이익을 담보할 뿐이라는 것을 대다수가 인지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전 세계적 위기는 점점 짙어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는 유럽에서, 전운이 짙어지는 중동에서, 미중 패권다툼이 계속되는 동아시아에서 대치가 계속되면서 위기는 점점 높아져만 가고 있다. 위기 속에서 무기 산업은 항상 호황을 맞는다. 언제나 그렇듯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의 발발은 방산주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전쟁은 절대 다수에게는 끔찍한 피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절멸을 위한 학살과 '초토화 작전'을 벌인지 1년이 다 되어간다. 10월 2일 기준으로 가자지구에선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4만 1689명이 살해되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러한 학살과 파괴는 사실 80년 가까이 지속되어 오면서 자국 무기의 위력을 검증하는 일종의 '실험'으로 기능했다. 앤터니 로앤스틴은 이를 '팔레스타인 실험실'이라고 불렀다.
그가 쓴 <팔레스타인 실험실>(소소의책, 2023)은 이렇게 검증을 거친 이스라엘 무기 산업의 역사를 상세하게 파헤친다. 놀랍게도(혹은 놀랍지 않게도) 이스라엘 무기의 주요 수입국 중 다수가 탄압과 학살을 벌인 독재국가였다. 르완다 학살이 일어났던 후투족 정권, 독재자 피노체트의 칠레,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수하르트의 인도네시아 정권, 과테말라의 제노사이드 정권, 그리고 로힝야 학살의 미얀마 등이다.
정의길은 냉전 붕괴 이후 서방이 중동에서 벌인 걸프전,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리비아 내전, 시리아 내전, IS 격퇴, 그리고 가자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벌인 전쟁이 바로 현재 유럽 난민 사태의 근원이라고 평가한다. 이스라엘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인 드론과 이를 포함한 최첨단 감시 시스템은 지중해로 넘어오는 난민을 막기 위해 유럽연합에 수출되어 실제로 난민 저지를 '효율적으로' 수행했다. 서방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고, 개입했지만 명분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독재국가의 악행에 동조하고, 수많은 난민의 생존권을 파괴하면서 이윤을 챙겼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특별히 나쁜 국가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2년 한국 역시 국내외적 무력분쟁에 개입된 국가로 분류한 58개 국가 중 43개국(74%)에 무기를 수출했다. 무기 산업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이런 일이 발생한다.
최근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지도자 암살과 레바논에 대한 공격으로 중동 지역으로의 확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5차 중동 전쟁의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은 지난 9월 26일, 미국에게서 87억 달러의 군사 지원을 확보했다. 가자 전쟁 이후 미국은 휴전을 말하면서도 이스라엘에 수십 억 달러의 군사 지원을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이 무기 산업의 호재를 불러왔듯, 만약 중동에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웃는 것은 이번 공격으로 지지율이 상승한 네타냐후뿐 아니라 수많은 무기회사들일 것이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UAE, 이라크 등 중동 국가와 무기 수출 계약을 맺은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무기 회사에게 지난 수십 년 간 중동에서의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다는 사실은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여기서 평화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