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연당 이숙 대표는 인공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 누룩으로 빚어 손막걸리 '백년향'을 만들어낸다.
김예령
"인공 색소나 향료를 넣었다고 잘못됐다는 게 아니에요. 단지 탁주는 탁주로 불렸으면 하는 바람이죠."
이 대표는 쌀과 누룩 외에 그 어떤 첨가물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빚어 오랜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또한 지역 쌀을 사용해 지역 경제에도 기여한다. 거기다 시골의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어우러진 술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만드는 탁주 '백년향'도 삼양주 주조 방식으로 80일에 걸쳐 빚어낸다. 이 대표는 전통과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며 빚은 우리 술은 법적으로 철저히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막 걸러 마신다'는 뜻으로 지어진 막걸리는 만들기도 쉽고 가격도 저렴해 고려 시대부터 현대까지 대표적인 '서민의 술'로 꼽혔다. 막걸리는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의 삶과 애환을 담아온 전통주다. 또한 오랫동안 중요한 의식과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상징적 술이다. 제사, 축하, 애도와 같은 중요한 의식은 물론, 건물 준공이나 신차 구입, 개업 등의 현대식 행사에서도 여전히 사용될 만큼 깊은 역사적 가치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정부도 전통주의 가치를 인정했다. 2021년 6월 15일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은 '막걸리 빚기'를 국가무형유산 제144호로 지정하며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공인했다. 주류 업계도 제도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한다. 2015년 소규모 주류 제조 및 판매 면허가 막걸리를 포함한 전통주로 확대되었다. 그 이후 소규모 양조장도 막걸리 생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2017년 막걸리의 전성기를 불러왔다.
2019년 <농업인신문> 보도에 따르면, 식품산업통계정보(aTFIS)는 과거 탁주의 소매 시장 규모가 2015년도 약 3000억 원대에서 2017년에는 약 356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4.4%나 늘었다고 발표했다. 성장세의 주요 원인은 ▲제품력 향상 ▲농식품부의 전통주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 허용 등으로 꼽혔다. 이때 감미료를 넣지 않은 프리미엄 막걸리가 온라인 판매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막걸리 양조장 중 시장 점유율이 높은 곳 중 하나인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는 인공 감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쌀 함량을 늘려 맛의 순수함과 퀄리티를 살렸다. 고창 지역의 쌀로 빚어진 이 프리미엄 막걸리는 당시 4년 연속 평균 15%의 매출 상승률을 보였다.
전통주 제조 업계는 이번 주세법 개정안으로 인해 가양주 문화가 인공 첨가물이 들어간 '유사 막걸리'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막걸리, 이제 세계의 술이다
인공 첨가물이 들어간 막걸리를 전통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이 대표는 프랑스 와인 이야기를 꺼냈다. 프랑스 와인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전통주다. 이 대표는 프랑스 와인이 전 세계 와인 시장에서 약 20%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17세기부터 국가 차원에서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관리 시스템과 법적 규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AOC 인증 체계가 그 중 하나다. 그는 프랑스 정부 산하 기관인 INAO(국립 원산지 명칭 통제연구소)가 1935년에 이 제도를 도입해 와인의 고유성과 지역성을 보호한다고 말한다. 특정 방식으로 생산된 와인만이 AOC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규제하고 재배 지역, 포도 품종, 재배 방법, 양조 과정까지 세부적으로 관리된다.
이러한 규제의 목적은 단순히 전통을 보호하는 데만 있지 않았다. 이 대표는 전통과 품질을 일관되게 보장함으로써 '프랑스 와인은 곧 품질'이라는 글로벌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다고 해석했다. 덕분에 프랑스 와인은 대규모 수출로 이어져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고품질 전통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만약 프랑스에서 인공 첨가물이 들어간 와인을 전통 와인으로 부른다면 AOC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며, 법적 제재는 물론 시장에서 신뢰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는 짐작한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술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 받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전통주 산업의 발전 아닐까요?"
이 대표는 정부가 전통주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도록 장기적인 시각에서 법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단기적인 세금 혜택과 대량 생산이 아닌, 세계 무대에서 철저한 제조 관리와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프랑스 와인처럼 우리 전통주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활성화의 길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통주 산업이 공장형 생산 방식이 아닌, 전통 제조법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량 생산을 통한 시장 확대는 역으로 전통주 수출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시장에서 전통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세제 지원, 연구 개발 지원, 철저한 품질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정부의 일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전통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깊은 역사를 함께 지켜왔다. 이숙 대표를 비롯한 많은 전통주 양조장이 오랜 세월 정성을 다해 빚어낸 술엔 우리의 문화와 역사적 가치가 담겨 있다. 이러한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선,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소규모 양조 업자와 대중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전통주는 공장의 일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