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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마음껏 실패해도 되는 유일한 곳

나만큼이나 내 아이의 안전과 진로를 걱정해주는 이들이 있는 학교에 고맙습니다

등록 2024.09.26 15:22수정 2024.09.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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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학교 가는 아이 뒷모습을 보는데 문득 학교가 고마웠다. 큰딸은 며칠 전 1박2일 수련회를 다녀왔다. 그리고 어떤 사건사고도 없이 내 품으로 잘 돌아왔다.


학교는 유일하게 나만큼이나 내 아이의 안전을 걱정하고 내 아이의 진로를 걱정하는 일로 고군분투하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간섭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볼 수 있는 곳

 성인이 되기 전 학교에 다니는 10여 년은 아이들이 혼자로 우뚝 서는 방법을 실험해보는 곳이다.(자료사진)
성인이 되기 전 학교에 다니는 10여 년은 아이들이 혼자로 우뚝 서는 방법을 실험해보는 곳이다.(자료사진)chuklanov on Unsplash

세상이란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피크닉 장소가 아님을 어른들은 안다. 성인이 되면 아이는 부모나 선생님이라는 우산 없이 폭우 속에 서게 될 테다.

그렇다. 세상은 햇살보다 폭우에 가깝다. 부모가 평생 우산이 되어줄 수는 없으니 아이는 홀로 폭우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긴 시간 몸에 익혀야 한다.

성인이 되기 전 학교에 다니는 10여 년은 그래서 성적을 올리는 곳이 아니라, 아이가 혼자로 우뚝 서는 방법을 든든한 우산 아래서 이렇게저렇게 실험해보고 실패해보고 다시 도전해보고 자기에게 잘 맞는 생활 패턴과 공부 패턴을 찾는 곳이다.


하루를 부모의 간섭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크게 엇나갈 수 없는 것이, 그곳에는 아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아이들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우리집엔 두 딸의 서로 다른 학교 가는 루틴이 있다. 각자 10대 후반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것들이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자기에게 가장 잘 맞기에 선택했겠지 싶다.


루틴 속에서 엄마인 내 역할 역시 딸들이 정한다. 큰딸은 혼자 일어나고 혼자 준비하고 아침을 안 먹고 혼자 학교에 간다. 내 손길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자주 아침을 먹는 게 어떠냐고 묻긴 하지만, 딸의 루틴을 존중한다. 실은 아침밥을 안 만들면 내가 너무 행복해서도 좋다.

작은딸은 일어나야 할 시간과 아침에 먹고 싶은 밥 종류를 전날 밤에 나에게 문자로 남겨둔다. 나는 작은딸을 위해 아침에 7시에 일어나 깨워주고 밥을 만들어 준다. 나머지는 혼자 알아서 준비하고 간다.

계획성이 높은 작은딸이라 계획대로 되는 데 기쁨을 느낀다는 걸 알고, 무계획성이 높은 나는 딸에게 최대한 맞춰주려 안간힘을 쓰며 산다. 딱 성인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이것도 마감이 있는 일이라 참을 수 있다.

 학교라는 우산, 어깨동무를 한 친구들(자료사진).
학교라는 우산, 어깨동무를 한 친구들(자료사진).픽사베이

두 딸은 어쩌면 이미 자기들이 성인이 된 것마냥 자기 의지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학교라는 우산이 있기 때문임을.

그래서 더 학교에 고맙다. 가정에서 부모가 주는 것보다 훨씬 수용 범위가 넓어서 아이들이 마치 자기 의지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줘서, 아이들이 더 마음껏 자기를 실험해볼 수 있게 해줘서 말이다. 아이들의 단단한 독립을 바라는 나에게, 학교는 정말 새삼 정말 고마운 곳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생첫책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인생첫책 #탁쳐라김관장 #학교 #호밀밭의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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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호기심 많은, 책 만드는 편집자입니다. 소심한 편집자로 평생 사는가 싶었는데, 탁구를 사랑해 탁구 선수와 결혼했다가 탁구로 세상을 새로 배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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