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당일 아침에 날아온 문자메시지
서이슬
이 문자를 확인한 시각은 오전 10시 30분. 입원 수속 시간인 오후 1시에 맞춰 병원에 도착하려면 집을 나서야 하는 시점이었다. 짐을 싸고 아침에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느라 바빠 미처 문자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현관문을 나서려는 시점에 문자를 발견하고는 화가 치솟았다. 당일 오전에 이런 문자를 보낸다고? 전화도 아니고 문자로 이렇게?
의료현장 모르는 '윗선'의 사태 해결 방식
솔직히 말하면, 9월 일정은 연기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정부는 의료공백 사태가 심화되면서 환자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몇몇 환자단체들에 대해 '일대일 전담관'을 지정해 환자 피해를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단체에도 전담관이 지정되었다.
해당 전담관은 복지부 고위 공무원으로, 바쁜 와중에도 나를 만나 희소질환자가 겪는 불편과 불안을 잘 들어주었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가 평소 하는 업무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일인 데다, 의사 인력 이탈로 인한 병원 현장의 상황을 그가 정리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당연한 결과였다.
5월로 연기되었던 검사일정이 다시 9월로 밀리게 된 6월 초, 결국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희소질환 환자단체의 대표로서 기자회견, 국회의원 간담회, 국회 복지위 간담회, 환자단체 집회, 언론 인터뷰에 연속해서 서면서 우리 같은 희소질환자들의 이야기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방송사, 신문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6월 마지막 주 어느 날 저녁, 급기야 우리 단체 일대일 전담관으로 지정된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연락을 해왔다. "곧 S병원에서 연락이 갈 거"라는 소식이었다. 우리 아이 조직 검사가 연기되는 문제를 빨리 해결하라는 지시가 '윗선'에서 있었고, 그 지시를 직통으로 받은 곳이 S병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곧 정말로 그 S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S병원 관계자의 말투는 친절했지만,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병원에는 우리 쪽 환자를 보는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S병원 관계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와 나의 통화는 채 3분을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 환자단체 회원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 회원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A병원의 우리 전담 교수가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여러 경로로 상황을 파악해보니, '윗선'에서 S병원으로, S병원에서 A병원으로 상황이 전달되면서 우리 전담 교수가 압박을 받고 있는 듯했다.
그날 오후, A병원의 우리 전담 교수와 전화연결이 되었다. 그는 평소 우리 회원들 사이에서 '정말 좋은 의사선생님'으로 인정받는 의사다. 그런 만큼, 그와의 통화 역시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서로의 고충을 이야기하며 시작되었다.
그날 그는 내게 당부했다. "전공의 부재로 검사 진행이 어려워서 부득이 일정이 연기된 것인데, 며칠 전부터 다른 진료과 교수님들께 부탁해서 검사를 진행하기 시작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기다려달라는 건, 언론이나 국회 간담회 등에 더는 나가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 뒤로 지금까지 조용히 검사 일정을 기다려왔다. 일반 양육자가 아닌, 희소질환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더욱 조심해야 하는 상황임을 알아챘다.
희소질환의 경우 해당 질환을 잘 알고 케어해주는 의사가 국내에 몇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환자 또는 환자단체와 의사의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 외부로부터 압박을 받으면 아무리 인품 좋은 의사라도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올 것이고, 그러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오게 되어 있다는 걸, 지시를 내리는 자들은 미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엔 정말 들어가나보다 했는데 당일 아침에 '입원실이 없다'는 연락을 받으니 황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전공의 부재로 인한 문제는 담당 교수의 노력으로 타과 교수들과 협진하는 걸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제 입원실이 없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병원에서는 '퇴원 예정 환자 수가 예상보다 적다'고 했는데,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예의 그 '복지부 전담관'에게 정확한 이유를 알아봐주십사 부탁했다. 몇 시간 후, 전담관으로부터 답이 왔다.
"병원에 확인했는데 요즘 중증소아환자분들이 전원할 곳이 마땅치 않아 한번 들어오면 계속 계시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상급종합병원에 들어온 중증소아환자가 옮겨갈 병원이 마땅치 않은 건, 당연하게도 의사인력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때문이다. 답변을 내놓은 병원 직원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환자들이 한번 들어오면 계속 계시려는 경향이 있다"는 답은 마치 입원실이 없는 이유를 환자 탓으로 돌리려는 것으로 들려 몹시 불쾌했다.
그 큰 병원에서 당일 퇴원가능 환자 수 추산을 제대로 못해 입원 예정인 사람에게 당일 아침에 문자를 보내는 것이 문제지, 불안한 중증소아환자 양육자들이 병원에 더 머물고 싶어하는 것은 문제도 잘못도 아니다.
내가 받은 문자, 그가 받은 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