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습지 정화작업 중 발견한 둥지. 어린 새들이 어미를 기다리고 있다.
김철기
"장항습지 안에 나무판자로 길을 만든 생태탐방로가 있어요. 우리는 탐방로 너머 안쪽,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가서 정화 활동을 했습니다. 거기엔 내가 평생 못 봤던 그런 아름다움이 있어요. 한강의 진짜 모습이죠. 강변엔 여전히 백사장이 있는 데도 있거든요. 환경정화 활동을 마치고 갈대가 뒤덮인 그 풍경을 보면 감탄이 나오죠. 정말 아름다운 자연이 그 안에 있어요."
그러나 지뢰 사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장항습지 내부엔 지뢰 폭발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난 후 3시간이 경과된 후에야 구급대가 사고지점에 도착했다. 또 다른 유실 지뢰에 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구조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습지에 지뢰가 있을 거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장항습지는 저와 같은 환경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허가 하에 농어업에 종사하는 분들, 생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지역이었거든요. 게다가 사고가 일어나기 8개월 전인 2020년 10월, 군에서 1달간 지뢰 제거 작업을 실시했으나 사고 당시 그 지역엔 안전시설이나 (지뢰) 경고판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장항습지 환경정화 활동에 임하지 않았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장항습지에서 환경 정화 활동을 한 일이 후회되지 않는지 궁금했다.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그에게 물었다. 단번에 "아니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고가 어린 학생들이 아닌 저에게 일어난 것이 차라리 다행이죠. (...) 저의 일로 다른 시민들이 장항습지 내부로 들어가 안전하게 생태 학습과 습지 환경 보호를 할 수 있는 그런 장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김철기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어딘가 먼 미래를 보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그의 눈이 나를 마주 봤다.
"후회하지 않아요."
덧붙인 목소리는 차분하고 단단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사고 이후 그는 지뢰 사고 피해 실상과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 장항습지 '지뢰 폭발 사고 책임 규명을 촉구하는 100만 고양 시민 서명운동', 람사르 고양 장항습지 생태계 보전과 관리를 위한 간담회 등 자신의 목소리가 필요한 곳에 등장했다.
한반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친일파 청산과 같은 민족문제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5년 동안 매 주말마다 친일파를 대중에게 알리는 활동을 펼쳤던 그다웠다. 고양시가 자신의 고향이었기에 장항습지의 생태를 보호하는 일에 기꺼이 뛰어든 그다웠다. 김철기의 시민 운동은 자신이 속한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를 사고의 충격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한 힘이었다.
"사고 이후에 참석한 토론과 세미나에서 다른 지뢰 피해자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다 목소리를 못 내고 계시더라고요. 장애로 인해 삶에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 버린 터라 그런 것 같았어요. 그들을 대신해 제가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나서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우리의 장애는 분단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려야겠다고 말이죠."
그는 변모된 자신의 삶 속에서 세상과 연결된 또 다른 화두를 찾았다.
"3년 전 그 사건은, 저에게 잊지 못할 일이에요. 다리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남북분단이라는 환경을 다시 실감한 계기가 됐거든요. 그 일은 비단 저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닙니다. 한반도 분단은 모든 국민의 상황이에요. 모든 문제해결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서 차근차근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발밑에서 터진 것은 지뢰가 아니라 분단이라는 비극적 환경이 만들어낸 문제라는 걸 다시금 힘주어 강조했다. 애초에 전쟁이 없었다면 그가 지뢰를 밟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속한 환경은 우리의 역사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회복의 마음으로, 재생의 힘으로
사고 이후 그는 매일 8km씩 4시간을 걷는다. 처음엔 의족에 익숙해지기 위한 재활 차원의 운동이었지만, 지금은 새롭게 찾은 생의 의지를 북돋는 귀한 시간이 됐다. 김철기는 말한다. 사고가 자신의 삶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스스로 단단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읽었던 책 중에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가 있습니다. 그 책에서 말했듯 우리라는 존재는 고난의 시간 속에서 강철처럼 단련되는 거라고 믿습니다. 그동안의 삶 속에서 스스로를 그렇게 깨우치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 나아갈 겁니다."
▲갈대밭이 넓게 펼쳐진 장항습지의 풍경. 2021년의 모습이다.
김철기
김철기는 장항습지 환경 정화 활동 중에 일어난 지뢰 사고 피해보상을 받지 못한 채 3년째 소송 중이다. 고양시와 한강유역청, 국방부가 지뢰 사고 책임을 서로 미루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장항습지 또한 마찬가지다.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지부는 꾸준히 장항습지 순찰로 정화 활동을 이어 나가며 일반 시민들 대상으로 장항습지 인식증진을 위해 힘쓰고 있지만, 지뢰 폭파 사고 이후 장항습지 내부 정화 활동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유실 지뢰에 대한 안전관리 책임 공방이 지지부진한 사이 장항습지는 폐쇄된 채 방치되고 있다.
㉠ 람사르습지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습지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람사르 협회가 지정, 등록하여 보호하는 습지를 말한다. 우리나라 람사르습지로는 대암산 용늪, 창녕 우포늪, 신안 장도 산지습지 등이 있으며 장항습지는 국내 24번째 람사르습지다.
㉡ 습지는 지상에 존재하는 탄소의 40% 이상을 저장하여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양을 적절히 조절한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습지는 우수한 탄소 저장고이자 각종 오염원을 정화하는 콩팥 역할로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 장항습지에 대한 정보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한강유역환경청, 람사르협약 홈페이지를 참조하였다. |
[필자소개] 차성덕: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이다. 중요하지만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것을 세상에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하는 게 영화와 르포의 역할이자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이야기의 힘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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