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반 군락을 이루었다가 사라진 문섬 바다의 갯녹음 (위)2018년 (아래)2023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아이를 낳은 산모가 미역국을 먹는다. 그 아이도 자라면서 생일마다 미역국을 먹는다. 그런데 지금 태어난 아이는 생일이 되어도 미역국을 못 먹을지 모른다. 제주 바다 최남단 마라도에 미역이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줄어든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이다.
"수온이 25℃ 이상 오른 상태로 15일 이상 유지되면 미역이 포자를 퍼뜨리지 못하고 죽어버려요. 8월 평균 수온을 보면, 2018년 24℃대, 2019년 25℃대, 작년에는 한 달 내내 28℃대 수온을 유지한 거예요." (인터뷰가 끝난 며칠 뒤 올해 8월은 30℃대를 넘어섰다.)
어느 날 갑자기 한 번에 미역이 죽어버릴 만큼 뜨거운 바다에서 사라지는 게 미역뿐일까? 톳도, 감태도, 모자반도 모두 사라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바다숲은 빽빽했다. 길고 굵은 모자반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군락을 이루었고, 감태는 갯가로 떠밀려와 줍기만 하면 될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제주 해녀들은 이제 육지 사람처럼 부산 기장 미역을 사와 미역국을 끓인다. 해조류가 사라진 바다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냥 해조류를 먹지 않으면 되는 걸까?
"해조류가 없으니 보말이 안 나는 거예요. 보말 대신 완도산 전복으로 대신하죠. 보말칼국수 집들이 전복칼국수 집들로 바꾸고 있어요. 성게도 마찬가지예요. 제주도 스시집들이 홋카이도산이나 캐나다산 성게알을 쓰는 거죠. 서귀포 지역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요새 들어 바다 먹거리 자체가 끝나버리는 느낌이 확 들어요."
땅에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바다도 해조류로 이뤄진 숲이 필요하다. 수많은 바다 생물의 서식처가 되고 먹이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해조류를 먹이로 하는 전복, 오분자기, 소라도 줄고 있으며, 해조류 숲을 은신처이자 산란처로 쓰는 옥돔과 자리돔도 사라지고 있다.
제주산 생참치를 먹을 수 있다면 과연 잘된 일일까?
제주 대표 어류들이 사라진 곳에는 구로시오 난류를 따라 올라온 해파리가 자리잡고 있다. 구로시오 난류는 필리핀에서 타이완을 경유해 제주 방향으로 올라오는 뜨거운 해류다. 노무라입깃해파리를 비롯한 독성 해파리들은 서귀포를 넘어 강원 동해안까지 등장했다. 물론 해파리만 밀려오는 것은 아니다. 제주 바다에는 다양한 아열대 어종들이 나타나고 있다. 청줄돔, 가시복, 거북복 같은 낯선 어류가 등장했고, 참다랑어도 심심치 않게 잡히고 있다. 그렇다면 냉동 참치 대신 제주산 생참치를 먹을 수 있으니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
"되죠. 왜 안 되겠어요? 제주도 대신 사이판이나 괌에 왔다고 생각하고 살면 되죠. 하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바뀌는 자연적인 천이의 과정은 아니에요. 인간이 개입한 혁명적인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단순히 이 지역, 이 시점만 가지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는 제주 남쪽 서귀포 바다를 '기후 위기의 최전선'이라고 표현했다. 육지의 관점으로 보면 제주는 우리나라 맨 끝 섬이지만, 바다의 관점으로 바꾸면 드넓은 태평양의 맨 앞인 것이다. 태평양의 최전선이다. 해양 생물들은 구로시오 난류를 타고 제주 바다로 올라온다. 이곳이 마지막 피난처이다. 더는 갈 곳이 없다. 이대로 바다가 더 뜨거워진다면 지금 제주에서 만나는 참다랑어가 우리 세대에서 보는 마지막 참다랑어일 수 있다.
바다의 온도가 높아지자 산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