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인혁당 생존자, 34년생 박중기> 인터뷰 중인 박중기 선생.
네번째달
"재작년에 먼저 가지만 않았으면 금수가 해 줄 얘기가 더 많았을 텐데. 올가을이 기일이야. 꼭 같이 가자고."
소형 카메라 앞에서 더 솔직해지시는 선생께서 드물게 속내를 털어놓으신다. 재작년 별세한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에 대한 그리움을 잠깐 비치시며 이내 감상에 젖으신다. 어쩔 수 없다. 박 선생은 그런 분이시다. 먼저 떠나보낸 이들을 그리워하고 그들의 제를 올리는 조선시대 능참봉처럼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나가는 박중기 선생. 과거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명예의장으로서의 역할이 딱 그랬을 것이다.
마석모란공원과 이천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특히 그의 민주화운동 동지들과 인혁당 사건 관련 동지들이 여럿 안장돼 있다. 이제는 거동이 그리 편하지 못해 예전보다 자주 찾을 순 없지만 그럼에도 누구보다 앞장서 묘역을 찾는 이도 바로 박중기 선생이다.
"민주화를 위해 힘쓴 이들을 대우해 줘야 앞으로 이 나라가 잘못됐을 때 누군가 또 나설 것 아닙니까."
불과 몇 년 전, 80대 후반이던 초로의 나이에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섰던 박중기 선생. 그가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법안 통과를 목 놓아 외쳤던 민주유공자법이 발의 된 지 수년 만에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성과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수많은 후배들이 존경을 보낼 수밖에 없는 활동이었다.
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해 목숨 바쳐 투쟁했던 동지들의 명예 회복과 계승 사업의 복판엔 항상 그가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4.9통일평화재단 고문을 맡고 있는 박중기 선생은 그렇게 80대 나이에도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았고, 마음으로 참사 유가족들의 아픔을 헤아렸다.
이제 아흔을 넘긴 그가 간직해 온 '오래된 미래' 속 소중한 희망, 꿈, 그리고 후배들을 향한 당부를 듣는 일은 비극적인 역사의 의미를 오늘에 되살리는 작업이 되어줄 것이다.
<인혁당 생존자, 34년생 박중기>의 제작 소식이 전해진 뒤 응원을 보내는 많은 이들의 뜻과 마음도 다르지 않을 터.
<인혁당 생존자, 34년생 박중기>는 지난 2000년 푸른영상이 비디오를 통해 선보인 인혁당 사건 소재 장편 다큐멘터리 < 4월 9일 > 이후 극장에서 개봉하는 최초 장편 다큐를 목표로 제작의 첫발을 디뎠다. 이를 위해 박중기 선생님도 열심히 카메라 앞에 서고 계신다.
'그러니 부디 선생님, 인혁당 사건이 50주기를 맞는 내년은 물론 이후 오래도록 건강하셔야 합니다! 겸손함은 잠시 미루신 채 완성된 영화를 스크린으로 후배들과, 동지들과, 관객들과 함께 객석에서 보게 될 그날까지요.'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9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공유하기
한평생 유족들의 '보호자'로... 34년생 인혁당 생존자의 삶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