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울산에 내린 폭우로 울주군 온산읍 원산리 한국제지 앞 도로가 침수돼 차량이 물에 잠겨 있다. 2024.8.20
연합뉴스
최근 기후 위기로 야외에서 일하는 이동 노동자의 건강권과 안전 등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100~200년에 한 번꼴로 내린다는 '1시간당 100㎜ 이상'의 폭우가 올해 여름에는 8번이나 있었다고 한다. 올해 전국 폭염 일수와 열대야 일수는 이미 최고 기록을 깼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서비스연맹)이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이동 노동자의 대다수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다)를 대상으로 지난 7월 12일~14일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8.0%(아주 심각 79.5%, 약간 심각 18.5%)는 최근의 폭염, 폭우 등 기후 위기와 관련해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기후 위기는 이미 이동 노동자의 건강과 노동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2년간 여름철 폭염 시 온열 질환(두통, 어지럼, 근육경련, 피로감, 의식저하) 등 건강 이상 증상을 겪은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5.1%가 있다고 답했다.
'근무 중 기습, 집중 호우가 내리거나 침수가 발생했을 때 안전에 대한 위협을 얼마나 느끼냐?'는 질문에는 '매우 위험하다고 느낀다' 66.6%, '약간 위험하다고 느낀다' 29.5%로 응답자의 96% 이상이 집중 호우 등으로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배달라이더의 경우 99.9%(응답자 173명 중 172명)가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정부의 '물·그늘·휴식'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
중요한 것은 특수고용 노동자인데도 위험을 느끼는 상황에서 작업을 중단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배달라이더나 대리운전기사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단말기를 끄고 일을 쉬면 된다. 가정을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설치 수리 기사나 방문점검원 등도 고객에게 양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위협을 느꼈는데도 작업을 중단하지 못했던 이유'를 묻는 말에 응답자들은 가장 많은 비율(37.8%)로 이후에 누적될 물량(작업)의 부담을 꼽았다. 다음 이유로 35.5%가 수익의 감소라고 응답했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를 폭염, 폭우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신이 처리해야 할 업무에 대한 조정과 수익 보전과 관련된 대책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통상 한 달간의 업무량이 주어져 있는 설치 수리 노동자나 방문점검원, 학습지 교사 등은 계획된 하루 일을 쉬 게 되었을 경우 해당 일을 남은 기간 처리해야 한다. 노동강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하루 업무량이 주어지는 택배기사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배달라이더,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 기사 등이 단말기를 끄는 순간 고스란히 수익 손실로 이어진다. 특히 배달 플랫폼 기업들은 기상이 악화되는 경우에도 배달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배달라이더들이 가져가는 수수료를 높게 책정해 배달 노동자들을 모은다. 단말기를 끄면 포기해야 하는 수익은 더욱 커진다.
이와 같은 노동 현실은 정부가 폭염 시 노동자 온열 질환 예방 차원으로 제시하고 있는 '물·그늘·휴식'의 3대 원칙이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고객과의 약속 시간을 맞춰가며 쫓기듯 하루 물량을 소화해야 하는, 건당 보수(수수료)를 받는 이동 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이 그늘을 찾아 휴식을 취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