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서원남명 조식 선생의 서원이다.
박도
그는 생질인 이준인의 사위 조원(趙援)에게 준 칼 자루에
불 속에서 하얀 칼날 뽑아내니
서리 같은 빛 달에 까지 닿아 흐르며
견우성·북두성 떠 있는 넓디넓은 하늘에
정신은 놀아도 칼날은 놀지 않는다.
라고 써주었다. 칼에 대한 찬미요 신앙이다. 그는 마음을 닦는데 있어서도 조그마한 티끌도 용납지 않았다.
사십 년 동안 더럽혀져 온 몸
천 섬 되는 맑은 물에 싹 씻어버린다
만약 티끌이 오장에서 생긴다면
지금 당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부쳐 보내리라. (주석 3)
세태를 개탄하는 시도 가끔 지었다. <무제(無題)>이다.
무 제
노나라 들판에서 기린은 헛되이 늙어가고
기산(岐山)엔 봉황새도 날아오지 않누나
문장이야 이제는 끝장인데
우리 도(道)는 마침내 누굴 의지해야 하나. (주석 4)
이와 유사한 개탄의 시에「우연히 읊다」가 있다.
우연히 읊다
사람들이 바른 선비 사랑하는 건
호랑이 털가죽 좋아하는 것과 비슷해
살아 있을 때는 죽이려고 하다가
죽은 뒤에라야 막 칭찬 한다네. (주석 5)
<홀로 선 나무를 읊다>는, 아무리 기가 센 선비이지만 인간적인 외로움을 느낄 때도 없지 않았을 터이다. 외로운 처지를 읊고 있다.(이후 인용하는 시는 허권수님의 책임을 밝힌다)
홀로 선 나무를 읊다
무리를 떠나 홀로 있기에
스스로 비바람 막기 힘들겠지
늙어감에 머리는 없어졌고
상심하여 속이 다 타버렸네
아침이면 농부가 와서 밥 먹고
한 낮에 야윈 말이 그늘에서 쉬네
다 죽어가는 등걸에서 무얼 배우랴?
마음대로 하늘에 떴다 가라 앉았다 하네.
<산 속에서 즉흥적으로 읊어>도 같은 유형이다.
산 속에서 즉흥적으로 읊어
지금까지 60년은 일찍이 하늘이 빌려 준 거고
앞으로 구름 낀 산에서 사는 건 땅이 빌려 준 거라네
막다른 길에도 또 다시 길이 있나니
그윽한 오솔길 찾아 고사리 캐어 돌아온다네.
어느 날 경상감사 정종영이 불쑥 찾아왔다. <감사 정종영이 들렀기에>이다.
감사 정종영이 들렀기에
봉황새 높이 나는 데 바람 필요 없나니
감사이면서 벼슬 없는 나와 어울리는구려
손님 대접에 좋은 음식 없다 싫어하지 마소
소반에 비친 구름 낀 산 만 겹이라오.
그는 가끔 제목이 없는 '무제'의 시를 지었다. <무제>이다.
무 제
세상에 쓰이거나 숨거나 대개 자신이 결정하는 일
다만 고치고 구제하려 하니 십 년 된 쑥 필요하다네
구름 낀 산에서 그를 따라 늙으려 했지만
세상 일이 매양 마(魔)가 되는 것을 어쩌랴.
주석
1> 허권수, <남명의 한시선>, 1쪽, 경인문화사, 2006.
2> 앞의 책, 2쪽.
3> <교감국역 남명집>, 본집, 설(說), 이성무·앞의 책, 90~91쪽.
4> 강정화, 앞의 책, 18쪽
5> 앞의 책,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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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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