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6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교사의 평가권은 사라지나
초안에 따르면, 수행평가는 학교가 맡고 지필평가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 외부 기관이 주관한다. 수능과 학업성취도평가에 이어 학교 단위 시험까지 평가원이 시행할 경우,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는 표준화검사 성적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게 된다. 이는 영재고-과학고-국제고-외고-자사고-일반고 등으로 이어지는 현행 고교 서열을 고착할 뿐만 아니라, 가뜩이나 심각한 지방 소멸 현상을 가속할 것이고, 수능에 더해 학교 시험에서조차 아이들을 살인적 경쟁 체제로 내모는 재앙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교사의 평가권을 박탈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학교 지필평가를 대신 출제하고 관리한다는 발상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교사가 가르친 내용을 평가하는 것은 교육평가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를 무시하고 국가가 표준화검사를 통해 학교 시험을 대체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졸속 탁상행정이다.
셋째, 국가교육 발전계획안은 2026년부터 10년간 중장기적 대한민국 교육 비전을 제시하는 안인데 수능을 자격고사로 한다거나 모든 시험을 논·서술형으로 바꾸는 등 혁신적 대안은 찾아볼 수 없고, 외려 현행 입시경쟁 시스템을 확대 재생산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2030년대에도 무늬만 달라진 입시 지옥에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물론, 이번에 알려진 계획안은 말 그대로 초안이다. 국가교육위원회 관계자가 "아직 국교위의 방안으로 확정된 건 아니다. 전문위가 전체 회의에 보고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옛말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국가교육 발전계획안의 방향성 자체가 이미 잘못된 건 아닌지 재검토가 필요하다. 지금 국가교육위원회가 할 일은 살인적 입시경쟁 완화와 학교 교육과정 정상화를 위한 근본적 대안 마련 아닌가.
국가교육위원회는 매번 대학입시 제도의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바꿀 게 아니라, 수능을 자격고사로 바꾸기 위한 '전제조건'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입 자격고사화의 3가지 전제 조건
첫째, 대학 이상 고학력자의 비율을 대폭 줄여야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대학에 가서 연구할 사람과 고등학교 졸업 후 직업을 가질 사람을 나눌 필요가 있다. 대학 졸업장이 예전의 고등학교 졸업장이나 마찬가지가 될 정도로 학력 인플레가 심각하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석박사를 따도 취업하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이런 비효율을 지속할 이유가 있는가. 공정한 대학입시도 중요하지만,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차별받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공정한 삶'이 더 절실하다.
둘째, 교사의 교육권과 평가권을 보장하는 일이 시급하다. 수능을 선택형이 아닌 논술형으로 출제하고 싶어도 채점의 공정성 논란 탓에 감히 엄두를 내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수능을 대입 자격고사로, 그것도 5지선다 선택형이 아닌 논술시험으로 치른다고 가정해 보자. (논술 대비 사교육이 폭증할 것이고) 아마도 상당수가 채점의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논·서술형 수능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교사의 평가권을 보장하기는커녕, 학교 지필평가마저 국가가 빼앗아 간다? 이건 교육학의 '교'자도 모르는 무식한 발상이다.
셋째, 사회 구조 개혁이 우선이거나 최소한 교육개혁과 병행되어야 한다. 학교 내신뿐만 아니라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고, (독일의 아비투어와 마찬가지로) 한 번 합격하면 언제든 원하는 때에 대학에 입학할 자격을 주는 것도 중요하고,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은 대학에 가지 않고도 잘 살 수 있게 사회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학력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비정규직을 해소하거나 최소한 차별하지 않으며, 굳이 대학에 안 가도 충분히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입시경쟁은 수그러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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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놀고, 즐겁게 공부하며, 대학에 안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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