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나는 복어>에서 열여덟 어린 마음들을 교사이자 소설가인 문경민은 치열하게 그려낸다.(자료사진).
픽사베이
두현은 장차 자신이 하고자 하는 진로를 촘촘하게 걸으며 타인들의 곡절도 이해한다. '간절함'엔 높낮이가 없었다.
"이토록 단단한 쇠도 깎아 낼 수 있다면 무어든 다뤄 내지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밀링머신이 좋았다. 차분하고 단단한 마음인 내가 좋았다. 다들 이 마음 하나 얻자고 대학이네, 취업이네, 하며 고생하는 거 아닐까." - <나는 복어>(문경민) 중에서
생각보다 다채로운 특성화고교생의 하루
소설을 읽으며 특히 반가웠던 점은 작가가 특성화고 학생의 고통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것. 극중 두현은 학교에서 밀링(회전하는 절삭 도구를 사용해 재료의 표면을 깎아내는 가공 방식)에 자기 적성이 잘 맞다는 걸을 발견한다. 대개의 작가들은 '일하는 청소년' 서사를 다룰 때 일찍 철든 아이들 특유의 우울, 진지함, 견디는 마음에 천착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읽고 나면 위기를 딛고 나아가자는 모호하고 아픈 희망만 남을 때가 많다.
작가는 그 익숙한 묘사 대신 열여덟 주인공이 매일 등교하는 교실, 주변 인물의 생활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기술자로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의 내력을 한 땀 한 땀 직조한다.
버스 안에서 한 아저씨가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가 제조업에 종사하며, 직업 용어에 능통하고 "자신의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존재임을 목격한다. "이 바닥에서만 30년" 일해온 기술자의 자부심을 소설가는 두현의 두 눈으로 관찰하게 한다. 소설 속 기계공고 안팎의 공부와 생활, 미래는 납작해지지 않는다. 씽씽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처럼 리듬이 있다.
그 세계를 생동하게 해주는 주변인들이 두현 주변에 있다. "핸들로 조절하는 나사 선의 깊이에 따라 제품의 완성도가 달라지는" 밀링 작업에 예술적 경지가 있다는 정명진 교사. 그는 두현의 담임으로 폭풍우 같았던 십 대 시절을 간직한 인물이다. 같은 기계공고 출신이기도 한 장귀녀 사장은 '귀금 코리아'라는 중소기업 금형 공장의 대표다. 그녀는 모교에 정기적으로 찾아와 후배들을 챙기며 '돈이 전부인 세상에서 고급 기술로 살아남으라'고 일갈한다.
재경과 두현, 준수는 맞이할 스무 살을 앞두고 차츰 알아간다.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할 수 없을 어른들에게도 각자 삶을 버텨온 투지와 사정이 있고, 그리하여 고유한 세월의 문양이 있음을. 그러나 "도무지 눈 뜨고 볼 수 없는, 돈이 최고인 세상"에는 의문을 갖는다. 재경의 오빠가 사고를 당한 곳은 다름 아닌 장귀녀가 사장인 회사였고, 장귀녀는 '오빠에게 사과하라'는 재경의 요청을 거절한다.
자신은 "철저하게 노력하는 사람"이며 "공장은 학교가 아니"라는 말을 힘주어 말한다. 재경은 장귀녀의 딸 '제니퍼'가 실습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 거냐며 반문한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할 자유"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했다며 그 뻔뻔함이 어떤 희생의 결과를 낳았는지 질문한다. 그 물음은 독자에게로 송곳처럼 이어진다.
미래를 치열하게 계획했던 그를 기억했으면
소설은 파렴치한으로 가득한 이 세계가 두부 자르듯 선악을 구분할 수 없는 무엇이라 누누이 말하는 듯하다. 고체도 액체도 아닌 간교한 세월이 스민 선득하고도 다정한 복합체.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사를 표현하는 것과는 다르다. 서로 지향하는 가치관이 불과 얼음만큼 달라도, 계층이 천지 차이로 달라도, 우리들 삶의 고리만큼은 지독하게 얽혀 서로를 파괴하거나 지탱하고 있음을 작가는 보여주고자 했던 게 아닐까.
현장실습생 오빠를 사지로 몰고 갔기에 재경에게 원수 같은 장귀녀가 두현의 엄마 절친이었다는 사실, 무기력에 시달리는 엄마가 집을 비워 홀로 남은 어린 두현을 장귀녀가 돌봤다는 사실 등이 소설 중반부에 드러난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 삶이 예상보다 타인의 삶 영향권에 있다는 것, 우리 삶은 누군가의 세계에 발 들이지 않고선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던 듯싶다.
절망 속에서 두현은 각설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쇠를 깎는 순간에는 아무런 잡념이 들지 않았"기에 밀링을 꾸준히 좋아하고, 하고 싶고, 먹고 싶고, 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반가워한다. 청산가리의 천 배에 달하는 복어의 독성이 세상을 집어삼키면 악쓸 줄 알고, 악쓰지 못하고 스러져 간 엄마가 목숨을 던진 건 혼자였기 때문임을 이해한다.
나름 생애의 굴절이 스민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임에도 테니스공이 좌우로 통통 튀듯 문장이 경쾌하고 밝다. 일찍 철든 청소년이 읽는다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용기를, 이 세계를 모르는 청소년이 읽는다면 친구를 아는 공부가 될 것이다.
때때로 지옥 같은 일상에서 두현은 자라난다. '주식으로 재산 날린 비정한 불륜 남편… 홧김에 아내는 청산가리'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거 꼭 써야 했냐"고 시원하게 반문할 줄 아는 사람으로. 나아가 주인공 두현에게 결정적으로 반한 대목이 한 가지 더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대학 안 나오셨잖아요.' 두 분의 학력은 나란히 중졸이었다. 할머니는 다섯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어릴 때 옷 가게에 들어가 장사를 배웠고 할아버지는 농사일을 거들다가 공사판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근데 잘 사시잖아요. 이렇게 근사하게.'" - <나는 복어>(문경민) 중에서
내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를 살피며, 장차 일터에서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두어 명은 있었으면 하고 소망하는 두현.
나는 이 소설을 올해 봄에 읽었다. 만개한 벚꽃 사이에서 "쇠도 깎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두현에게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기운이 서린 열여덟을 보았다. 동시에 무엇이든 잘 해내고 싶은 마음으로 교복을 입고 등굣길을 나서던 어린 나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