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사이트의 '고교학점제 소개' 첫 화면
고교학점제 사이트 화면 캡처
현재도 존재하는 고교학점제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위와 같은 화면을 볼 수 있다.
특성화 학교로 분류되는 본교는 2022년부터 이미 학점제 체제로 운영 중이었다. 고교학점제가 모든 학교에 전면 적용되는 시점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기도 하다. 교과목, 편제, 평가 등에서 완전히 달라지는 시점을 앞두고, 기존의 시수제에서 학점제로의 일부 개편을 통해 과도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올해는 2025학년도 신입생의 3개년 교육과정을 확정하고 기존의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사용했던 교과목 대신 학기제로 바뀌는 2022개정 교육과정 적용을 위해 교과목과 편제를 완전히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스무 번이 넘는 작은 협의가 진행되었고 그 안에서의 토론은 상당히 뜨겁다.
애초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선택을 중시하여 수업 시간에 조는 아이 없이 활기찬 교실과 학교를 만들겠다는 취지가 분명했다. 그런데 전면 실시를 당장 반년 앞둔 지금, 학교 현장은 엄청난 혼란으로 가득하다. 그 원인은 명확하다. 각 과목의 평가 방식이 갑자기 바뀌었기 때문이다.
2025학년도부터 적용되어야 하는 고등학교 각 과목의 내신 성적 산출 방식에 대해, 지난해와 올해의 결정이 달라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통과목은 절대평가와 석차 등급을 병기하지만 그 외 과목은 순수한 절대평가로만 실시하기로 했다. 이는 애초 고교학점제가 가지는 본질과 매우 관련이 깊다.
석차 등급 없이 절대평가, 즉 성취평가제로만 성적을 내게 되면 학생들은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게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소인수 교과도 가능하다. 그런데 2023년 말 발표된 2028대입개편안은 충격 그 자체였다. 예술, 교양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과목에 상대평가를 병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교육부는 오히려 이 결정에 대해 '경쟁을 완화'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언뜻 보면 설득력이 있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따져보면 정반대다. 교육부의 주장은 기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뀌므로 학생들의 부담이 경감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공통과목에 한한 내용이다.
선택교과에서는 없어질 줄 알았던 상대평가가 부활한 것으로, 이제 아이들은 흥미와 적성에 맞는 과목이 아니라 내신 등급이 잘 나오는 과목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고교학점제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이다. 이는 교육과정의 편제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소인수 교과를 배치해주고자 하는 학교의 고민이 소용없게 되었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 보겠다. 고교학점제가 전면시행되면 자신이 전공하고 싶은 분야가 확실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원하는 분야를 깊이 탐구할 수 있도록 5~7인 정도의 적은 수로 수강할 수 있는 수업을 개설해주고자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아니, 그렇게 하면 오히려 아이들에게 손해다. 그 정도의 수로는 1등급이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2학년이 되어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되어도, 최소한 10명 이상이 수강하는 과목을 들어야 한다. 본교는 한 학년 정원이 45명으로, 1등급을 발생시킬 수 있는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편성하려면 15명 이내 정원의 과목 3개를 편성하여 15명 이내의 학생들을 고르게 분포시켜야 한다.
결국 학생의 흥미와 적성은 온데간데없고 대입 내신 산출을 위한 목적에 본질이 잠식당하는 꼴이 될 것이 분명하다. 우연히 학생들의 흥미가 딱 3분의 1씩 나뉘어있다면 모를까, 결국 아이들은 배우고 싶은 과목 대신 내신이 잘 나오는 과목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현재도 마찬가지이니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고교학점제라는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면서, 철석같이 학생의 선택을 중시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건 기대감을 줬다가 다시 빼앗는 격이니 학교 현장의 충격이 작지 않은 것이다.
대입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교육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