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묘역에 참배하는 박중기 선생(맨 왼쪽).
4.9통일평화재단
여기, 91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리 없이 활동을 이어가는 어른이 있다. 고문 후유증으로 한 쪽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는 그는 먼저 간 동지들을 추모하고, 열사들을 위해 제를 올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인혁당 사건 피해자 박중기다.
박 선생은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때 구속, 1년간 실형을 살았다. 10년 뒤 인혁당 재건위 사건 때도 두 달 반 극심한 고문 조사를 받다 겨우 풀려났다. 반면 동료와 선후배 8명이 황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1973년 '서울대 유인물 사건'이 아니었다면, 당시 6개월 정도 구속돼 있지 않았다면 그도 형장의 이슬로 희생자가 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가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에서 살아남았던 건, 사형 진행 2년 전 옥살이를 하고 있었던 알리바이 때문이었다.
그런 박 선생은 운명의 장난으로 목숨을 건졌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죄책감으로 인해 몸서리도 쳐봤지만 그 운명이 선생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유가족을 돌봤고, 피해자들을 찾았다. 또 헌신하고 투쟁했다.
"일제 강점기, 친일파 등이 청산되지 않았잖아. 미국의 영향도 여전히 받고 있는 상황이고. 그래서 이승만이 나왔고 박정희가 나온 거야. 이들을, 그 뿌리를 청산해야만 해. 그래야 현재 참사의 반복도 막을 수 있어." (박중기 선생)
윤 감독과 <인혁당 생존자, 31년생 박중기> 제작진은 지금까지 다섯 차례 넘는 인터뷰를 매번 두세 시간이 넘도록 촬영했다.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하나하나 올라가면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정작 1960년대로 올라오면 다시 또 일제 강점기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즉, 실제 인혁당 당시의 이야기를 듣기까지 꽤 오래 걸리고 있다.
왜일까. 오랜만에 후배들과 이야기하는 자리가 좋으셔서일까? 인혁당 이야기가 끝나면 우리의 만남이 끝일 것 같아서일까? 아니면 인혁당 이야기를 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셔서일까?
그런 박중기 선생은 어떤 결심과 통찰이 있었기에 이러한 헌신과 투쟁의 신산한 90년 삶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그의 선후배와 동지들, 그리고 인혁당 유가족들이 바라보는 인간 박중기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또 반복되는 국가폭력과 사회적 타살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인혁당 생존자, 31년생 박중기>는 박중기 선생은 물론 수많은 인터뷰이를 만나며 질문하고자 한다. 또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인혁당 사건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장편 다큐로는 최초다. 그리고, 반년도 채 남지 않은 2025년은 인혁당 사건 50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