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는 자세가 중요하다. 팔동작 '폴드 브라' 연습 중이다.
정시현
TV 프로그램 <극한직업>에 '발레 무용수'가 등장한 적이 있다. 완전히 공감한다. 25살이 되기까지 '서기', '걷기', '뻗기'가 힘들어 본 적은 없다. 발레를 배우며 처음 굳어버린 몸을 원망했다. 그것보다 힘든 건 '거울 보기'다.
녹음한 내 목소리를 처음 들을 때처럼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내 포즈는 내가 보기에도 이상하다. 같이 배우는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선생님 눈에는 더 황당하겠지? 쑥스럽고 또 부끄럽다. 그래도 모든 수치심은 흐르는 땀 속에 녹아 사라진다.
주변 눈치를 보지만 모두가 웃고 있다. 우리는 모두 미소로 대화한다. 실수 때문에 인상을 쓰는 법은 없다. 거울을 보면서 실망해도 선생님과 동료의 웃음을 보면 좌절감은 단번에 사라진다. 발레를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모두 웃는다.
지난 1년 동안, 발레복 종류도 늘었고, 오전반에서 오후반으로 수업 시간도 바꾸었다. 지금도 수업 시작 전, 스트레칭만 시작하면 마음이 설렌다. 기대한 것만큼 잘하진 못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우리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어설픈 동작에 실망하지 않는 '무적의 취미 발레단'이다.
우리는 공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나는 공연에 참여하진 못했다. 지금 내 로망은 무적의 취미 발레단 공연에 참여하는 일이다. 일 년쯤 되면 무대에 설 줄 알았는데… 아직 연결 동작 하나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고백하자면, 겨우 서 있다.
발레 수업의 시작은 가장 기본 동작인 '플리에'이다. 이제야 순서를 외운다. 이마저도 팔동작인 '폴드 브라'와 합해지면 여전히 헤매고 있다. 한 달마다 순서가 바뀌는데, 선생님의 시범을 보면 여전히 좌절한다. 로망은 로망으로만 간직해야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래도 나는 한다. 왜냐하면 발레는 못해도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잘해도 부럽거나 질투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못한다는 걸로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없다. 15년간 학교에 다녔건만 이렇게 경쟁심이 들지 않는 교실은 처음이다. 똑같이 배우는 수업에서 누가 몇 년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냥 다 같은 수강생일 뿐이다.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