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 문제 없던 작은 사업장, 간독성 물질이 기준치 2배

[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 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한 소규모 사업장의 보건관리

등록 2024.08.05 13:40수정 2024.08.0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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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사업장은 여러 산업안전보건규제에서 열외 되어 관리의 사각지대가 되기 쉽고,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물리적 건강 위해 요인에 더 많이 자주 노출되고 건강 보호 요인은 부족한 환경에 처해져 건강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저는 주 1회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사업장에 방문하여 건강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의 사회안전망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근로자건강센터에서의 경험에 대해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근로자건강센터의 소규모 사업장 사후관리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는 성남, 광주, 하남, 여주, 이천, 양평 지역의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의사, 간호사, 산업위생전문가 등 전문 인력이 직업병 예방을 위한 건강상담, 뇌심혈관질환 예방, 작업환경 상담 등의 다양한 직업보건서비스를 별도의 비용 부담 없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특성화 사업을 통해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고위험 사업장을 안전보건공단과 연계하여 관리하기도 합니다.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저는 주로 20~30인 미만 규모의 작은 제조업 사업장에 방문해 근로자의 건강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방문 시에는 보통 간호사, 의사, 산업위생전문가 3인이 함께 움직입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혈압과 혈당을 측정하고 뇌심혈관질환 예방 상담을 실시하면, 이어서 저는 전년도 특수건강진단 결과표를 설명하고 기타 건강상담과 작업환경 및 보호구에 관한 상담을 하게 됩니다. 산업위생기사님은 작업환경측정결과를 바탕으로 유해인자와 보호구 착용에 관한 교육과 더불어 현장 순회점검도 실시합니다.
소규모 사업장의 사후관리와 안전보건공단 연계 사례

작년 여름, 특수건강진단 사후관리를 위해 방문했던 한 사례입니다. 20인 미만 규모의 플라스틱 가공제품 제조업체로 유해인자는 디클로로메탄이 확인된 사업장이었습니다. 전년도 특수건강진단 결과 상 'C2 심혈관계주의' 소견으로 요관찰자로 분류된 40세 남성 근로자 한 분을 상담하게 되었습니다.

디클로로메탄의 경우 특수건강진단 시 1차 항목에서 심장·신경계·간 등에 유의하여 임상진찰하도록 하며, 1차 검사 항목으로는 흉부방사선, 심전도, 콜레스테롤을 포함합니다. 건강진단 결과표에서 얻을 수 있는 의학적 정보는 심혈관계 진찰에서 어떠한 이상징후를 보였거나 세 검사 항목 중 참고치를 벗어나는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는 단서 정도였습니다.
건강상담에서 심혈관계 이상을 의심할 만한 징후나 특이 과거력은 없었지만, 양쪽 눈의 황달과 복수 의심 소견을 보였습니다. 일주일 전 건강진단에서 간수치 이상으로 진료를 받도록 설명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병원 진료 권고에도 "병원에 갈 만큼 큰 문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일이 바빠 병원에 갈 수 없다"라며 근로자가 완강히 거부했고, 동료 근로자들의 추가 건강상담을 요청했지만 사업주는 "공장이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대라 불가하다" 하였습니다.

사전에 요청했던 작업환경측정 결과지 제공도 모종의 이유로 출력이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상담 근로자와 사업주에 병원 진료를 강력히 권고하고 직업병 안심센터 이용 방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뒤 상담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직업병 안심센터에 직업병 의심 사례로 보고하였고, 이윽고 직업병 안심센터에서 근로자와 연락이 닿아 방문 예약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지만, 근로자는 결국 "사장님께 물어보고 허락해 주면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예약일에 내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근로자건강센터와 안전보건공단의 연계가 이루어졌습니다. 고용노동부와 합동으로 패트롤 현장점검이 시행되어 국소배기장치 미설치에 대한 행정조치 명령이 내려졌고, 직업병 의심근로자가 발생한 점과 작업환경측정 결과 상 디클로로메탄 측정치가 노출기준의 0.56배인 점을 고려해 작업환경측정 신뢰성평가 대상 사업장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공단에서 시행한 측정 결과에서 디클로로메탄이 노출기준의 2.7배 초과로 확인되어 과태료가 부과되었고, 건강일터 조성지원 사업을 연계해 국소배기장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작업환경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안타깝게도 패트롤 점검 당시 직업병 의심사례로 보고되었던 노동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미 퇴사한 상태라 만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소규모 사업장 보건관리의 어려움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실시하는 건강진단 사후관리 형태는 보건관리전문기관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과정과 내용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작은 사업장의 경우 방문하기까지 여러 노력이 필요합니다. 건강상담 안내 우편물을 사업장에 발송하면 사업장에서 센터에 신청을 해야 절차가 시작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런 저런 방법으로도 접촉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소규모 사업장들도 다수 발생합니다.
건강진단 사후관리를 실시하는 데에도 여러 장벽에 부딪힙니다. 매우 단순화된 건강정보만을 가지고 상담을 할 때가 많은데, 전자기기 사용이 익숙하고 건강관리에 관심도가 높은 경우 직접 건강진단 결과표를 휴대폰으로 조회해 상담하기도 하지만 소수에 불과합니다.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건강진단을 받더라도 정보에 접근하거나 알맞은 정보를 판별하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사후조치를 취하지 못한 분들도 많습니다.
수많은 이주노동자들과 번역기를 이용한 건강상담은 당연하게도 대부분 질적으로 충족되지 못합니다. 소규모 제조업 공장들의 낮은 일차의료체계와의 접근성과 맞물려 낮은 건강 문해력과 언어적 장벽은 건강불평등을 심화하는 요인이 됨을 현장에서 직접 느낄 수가 있습니다.
소규모 사업장의 보건관리는 많은 어려움이 존재함에도 근로자건강센터는 근로자들이 비집고 빠져나갈 만한 구멍을 더 촘촘하게 만드는 안전망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공유한 사례와 같이 사업주의 협조가 잘 되지 않는 사업장 일지라도 센터와 공단의 유기적 연계가 작업장 환경 개선을 이루어 낸 점은 앞으로의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보건관리 활동 영역이 더욱 확장될 수 있을 것임을 기대하게 합니다.


하지만 건강문제를 보였던 근로자는 어디에도 없게 된 결과를 낳으며 여전한 사각지대의 존재를 직면하게 됐고, 앞으로 발전해야 할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 서비스 전달 체계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더 많은 인력을 구성하고 촘촘한 산업보건 전달체계를 형성할 수 있는 지원이 이루어져 모든 근로자가 산업보건 서비스에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박민영 님은 직업환경의학전문의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 8월호에도 실립니다. 한노보연 후원 문의 : kilshlabor@gmail.com
#근로자건강센터 #간독성 #소규모사업장 #작은사업장 #작업환경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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