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외국인이 막걸리를 고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식품수출정보(KATI)에 따르면 지난해 막걸리 수출량은 1만5천396t(톤)으로 지난 2020년 1만2천556t과 비교해 22.6% 증가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2024년 세법개정안에서 탁주의 첨가원료로 인공적인 향료, 색소를 허용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오미자를 넣지 않은 오미자'향' 막걸리, 유자를 넣지 않은 유자'향' 막걸리가 가능해진다.
지금도 쌀, 물, 누룩 이외에 부가적인 재료를 쓰는 막걸리는 존재한다(인공감미료의 사용은 또 다른 이야기이고,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논점을 흐릴 우려가 있으니 논외로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천연 재료다.
진짜 오미자를 쓰지 않는 '오미자향 막걸리'는 현행 제도 아래에선 '막걸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주세법상 분류가 '막걸리'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탁주'가 아니라 '기타주류'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럴 경우, 우리의 전통주로 보호해야 하는 탁주의 범주를 벗어나게 되기 때문에 세율도 올라간다. 왜 인공 향료와 색소를 넣은 술이 꾸역꾸역 '막걸리'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술 업계는 물론, 우리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전체가 벌통을 건드린 것처럼 시끄럽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더운 여름에 이렇게 이글거리는 불덩이를 던져 넣은 소수의 사람들은 입을 닫고 말이 없다. 이번 정부 들어와서 몇 번이나 목격하게 되는 낯익은 풍경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쪽으로 일을 처리해 놓고, 당연히 이어지는 반발에 책임있는 사람들은 입을 닫는다. '너희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세상은 우리가 정하는 대로 흘러간다'는 식이다. 하지만 무릇 자신이 술꾼이라는 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같은 시도에 대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막걸리의 범주가 늘어나면 벌어질 일
혹자는 말한다. 막걸리에 색소와 인공향료를 허용하면 그만큼 젊은 층이 선호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어 매출이 증대되고, 외국 소비자들을 유인하기도 쉬워진다고. 그리고 어차피 향을 안 넣어서 선택을 못 받을 술이라면 그 자체가 맛이 없거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겠냐고. 향을 넣은 것과 안 넣은 것을 소비자들 손에 쥐어 주고, 그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해야 한다고.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설렁탕으로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이유로 우리 민족이 설렁탕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진한 국물을 우려내는 방법이 차츰 복원되었다고 치자. 이제 막 설렁탕 전문점들이 늘어 가고 있고, 사람들이 설렁탕의 맛을 알게 되려는 참이다. 그러다 보니, 기술적 발전도 이루어져 만두를 넣은 설렁탕, 마늘 양념을 넣은 매콤한 설렁탕 등 다양한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에서, '곰탕라면'도 '설렁탕'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나선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당연히 원가가 싸게 드는 라면스프가 들어간 곰탕라면을 가지고 설렁탕이라며 파는 업체들이 늘어날 것이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고기, 좋은 뼈와 센불을 써서 육수의 맛을 깊게 하는 쪽으로 연구를 거듭하던 사람들은 허탈함을 느끼는 것을 넘어 비즈니스의 존폐를 걱정하게 될 것이다.
설렁탕은 좋고, 곰탕라면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설렁탕은 설렁탕으로, 곰탕라면은 곰탕라면으로 존재하면 된다. 다만 그 벽을 허물어서,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모르게 뒤섞어서 짬뽕을 만들어 버리면 상대적으로 더 손이 많이 가고 돈이 많이 드는 쪽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설령 극소수의 설렁탕집이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일반 서민이 꿈도 꿀 수 없는 가격을 받아야 하는, 전혀 다른 성격의 비즈니스로 변해 버릴 것이다.